오스카 트로피 ‘나의 주인님은 기생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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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2.09. 오후 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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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운명의 날’
한국시각 10일 오전 10시부터 생중계
6개 부문 후보 오른 ‘기생충’ 수상 관심

작품상은 ‘1917’과 ‘기생충’ 양강 구도
감독상, 샘 멘데스 이어 봉준호 물망
두 가지 상 분리되면 봉 감독 가능성

국제영화상 수상 가능성 가장 커
각본상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
편집상은 ‘포드 V 페라리’와 호각세
아카데미 수상자에게 주는 오스카 트로피. 손에 긴 칼을 쥐고 필름 릴 위에 선 기사의 형상이다.


오는 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돌비극장에서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역대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이 가장 집중될 시상식이 될 것이 분명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편집상, 미술상, 국제영화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기 때문이다. 많은 이가 한국 시각으로 10일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시상식 생중계를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으로 지켜볼 듯하다. 시상식에는 봉 감독,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배우 송강호·조여정·이선균·장혜진·박소담·최우식·이정은·박명훈 등이 참석한다. 기대감이 증폭되고 있는 운명의 시간을 앞두고 시상식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 아카데미 시상식이란?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주최하는 미국 최대 영화상이다. 1929년 첫 시상식이 열린 이래 올해 92회를 맞는다. 아카데미상을 ‘오스카’라고도 하는데, 이는 트로피 이름이다. 손에 긴 칼을 쥐고 필름 릴 위에 선 기사 형상의 트로피가 오스카라는 별명을 얻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카데미협회 도서관 직원이 책상 위에 세워놓은 트로피를 보고 “우리 오스카 삼촌이랑 어쩜 이리 꼭 닮았을까”라고 말하는 걸 어느 기자가 듣고 신문 칼럼에 썼다는 얘기, 아카데미상을 두 차례나 받은 배우 베티 데이비스가 트로피 뒷모습이 자신의 첫 남편 해먼 오스카 넬슨과 꼭 닮았다며 오스카라 했다는 얘기, 어느 칼럼니스트가 시상식 관련 글을 쓰다가 지어냈다는 얘기 등이 떠돌지만, 사실로 확인된 건 없다. 다만 확실한 건 이제 아카데미상을 오스카상이라고 하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카데미상 선정은 제작자, 감독, 배우, 스태프 등 영화인들로 구성된 아카데미 회원의 투표로 이뤄진다. 기자나 평론가는 참여하지 않는다. 해당연도 1월1일~12월31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극장에서 일정 기준 이상 상영된 영화 가운데 후보작과 수상작을 선정한다.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아카데미 회원은 9537명이며, 이 가운데 일정 기준을 충족한 8469명이 투표권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난 4일(현지시각) 투표를 마쳤다. 투표 결과는 회계기업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보관돼 있다. 수상작을 적어 봉인한 봉투는 시상식 당일 현장에서 시상자가 공개한다.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백인 남성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아카데미는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층, 여성, 유색인종 신규 회원을 크게 늘리며 다양성에 부쩍 신경 쓰는 모습이다. 2015년부터 한국 영화인들도 신규 회원으로 위촉하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 임권택·봉준호·박찬욱·이창동·김기덕·홍상수·임순례 감독, 송강호·최민식·이병헌·배두나·하정우·조진웅·김민희 배우, 정정훈·홍경표 촬영감독, 이병우 음악감독, 정서경 작가, 이미경 씨제이그룹 부회장 등 30여 명이 회원으로 위촉됐다. 아카데미 회원의 다양성 증대는 <기생충>의 수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영화 <1917> 스틸컷. 스마일이엔티 제공


■ 작품상은 어디로?

작품상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이다. 이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발표한다. 후보도 다른 부문보다 훨씬 많은 9편에 이른다. <기생충>을 비롯해 <포드 V 페라리> <아이리시맨> <조조 래빗> <조커> <결혼 이야기> <1917>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작은 아씨들>이 이름을 올렸다. 후보가 발표된 이후 초반에는 <아이리시맨>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양강 구도로 예상됐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1917>과 <기생충>의 양강 구도로 바뀌었다. <1917>과 <기생충>이 각종 영화상을 휩쓸며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현지 매체들은 <1917>을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고 있다. 올해 초부터 골든글로브, 프로듀서조합,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잇따라 작품상을 받아서다. 전통적으로 인류애와 반전 메시지를 담은 전쟁 영화를 선호하는 아카데미 회원들의 성향이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플래툰> <잉글리쉬 페이션트> <허트 로커> <지상에서 영원으로> <패튼 대전차 군단> 등의 다수의 전쟁 영화들이 작품상을 받은 바 있다.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다.

반면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을 전망하는 매체도 있다. 최근 영화배우조합과 작가조합에서 수상한 일이 기대를 낳고 있다. 영화배우조합과 작가조합의 조합원들은 상당수가 아카데미 회원과 겹친다. 특히 영화배우조합원은 아카데미 회원 중 가장 많은 인원을 차지한다. 미국 영화사이트 로튼토마토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을 것이고, 또 받아야 한다. 내부 토론 결과 <1917>이 안정적인 선택이긴 하지만 시상식 시즌 동안 모든 사람이 <기생충>에 대해 얘기했고, 로튼토마토 사이트에서 지난해 내내 <기생충>이 큰 차이로 1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평론가 저스틴 창도 <기생충>의 수상을 전망했다.

할리우드 전문가와 이용자 의견을 모아 시상식을 예측하는 사이트 골드더비를 보면, <1917>이 작품상을 받을 확률(16.2%)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 <기생충>이 14.9%로 2위를 기록 중이다. 3위는 12.5%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4위는 10.4%의 <조조 래빗>이다.

영화 <기생충> 스틸컷.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 감독상은 누구에게?

작품상 다음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상은 감독상이다. 봉 감독을 비롯해 <아이리시맨>의 마틴 스코세이지, <조커>의 토드 필립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1917>의 샘 멘데스가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현지에선 샘 멘데스의 수상이 유력한 분위기다. 그가 최근 감독조합이 주는 영화감독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상을 받은 감독이 같은 해 아카데미 감독상이나 작품상을 받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해 이 상을 받은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도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샘 멘데스는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도 감독상을 받았다. 골드더비를 보면 샘 멘데스가 23.6% 확률로 1위, 봉 감독이 20.9% 확률로 뒤를 바짝 쫓고 있다.

<1917>이 작품상과 감독상을 모두 가져갈 가능성이 크지만, 두 상의 수상작이 분리될 경우 봉 감독에게 감독상이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최근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이 각기 다른 영화에 돌아가는 사례가 늘었다. 최근 7년간 작품상·감독상을 다 가져간 영화는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와 2015년 <버드맨> 단 두 편뿐이다. 지난 10년간 감독상 수상자 10명 중 미국 출신은 2명에 불과했다는 점도 봉 감독의 수상 가능성을 밝힌다. 지난해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은 알폰소 쿠아론은 멕시코 출신이다. 동양인으로는 대만 출신의 리안 감독이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두 차례 감독상을 받은 적이 있다. 다만 두 영화 모두 할리우드 제작 영화였다. 봉 감독이 한국 영화로 감독상을 받는다면 새 역사를 쓰는 셈이다.

영화 <포드 V 페라리>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 <기생충>이 품을 트로피는?

<기생충>의 수상 가능성이 가장 높은 부문은 국제영화상이다. 경쟁작은 <문신을 한 신부님>(폴란드), <허니랜드>(북마케도니아), <레미제라블>(프랑스),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다. <기생충>은 골든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에서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바 있다. 현지 매체들은 압도적으로 <기생충>의 수상을 예측하고 있다. 골드더비를 봐도 <기생충>(24.5%)이 1위다. 2위는 20.4%의 <페인 앤 글로리>다.

각본상도 수상 가능성이 높은 부문이다. 지극히 한국적인 이야기로 전 세계에 통하는 자본주의와 계급 문제를 풍자한 <기생충>의 각본은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기생충>은 지난 2일(현지시각) 영국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깜짝 수상하며 아카데미 판도를 흔들었다. 이전까지 우세하다고 점쳐지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를 제친 것이다. 작가조합에서 각본상을 받은 것도 전망을 밝게 한다. 골드더비에서도 1위 <기생충>(22.9%), 2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1.6%) 순이다.

편집상은 <포드 V 페라리>와 <기생충>의 대결로 좁혀지는 분위기다. 골드더비 예측에서 1위는 <포드 V 페라리>(22.4%)이지만, 2위인 <기생충>(21.6%)이 근소한 차로 뒤쫓고 있다. 지난달 열린 편집자조합상은 <기생충>이 받았지만, 지난 2일 영국 아카데미에선 <포드 V 페라리>가 받아 호각세다.

미술상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우세가 점쳐진다. 골드더비 예측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23.1%), <1917>(20.8%), <기생충>(19.5%) 순이다. 지난 2일 열린 미술감독조합상에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시대극 부문에서, <기생충>이 현대극 부문에서 수상했다. 같은 날 열린 영국 아카데미에선 <1917>이 미술상 트로피를 가져갔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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