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과 경합할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의 후보는?
구 외국어영화상 현 국제영화상. 오스카 시상식을 앞둔 <기생충>의 가장 유력한 수상이 점쳐지는 부문이다. 영화제 측이 봉준호의 뼈 때리는 "로컬 영화제" 발언을 얼마나 의식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기생충>은 국제영화상을 비롯한 총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는 <기생충>의 국제영화상 수상은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그날이 오기 전까진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어떤 영화들이 <기생충>과 경합을 벌이는지 후보에 오른 4편의 영화를 살펴보자.
문신을 한 신부님 / 폴란드
폴란드 영화 <문신을 한 신부님>은 사제가 된 죄수의 이야기를 한다. 절도, 마약, 과실치사 등의 죄목으로 소년원을 간 다니엘이 가석방되고, 신부 토마시의 도움으로 목공소에 일자리를 얻는다. 하지만 목공소로 향하던 중 소년원에서 몰래 훔친 사제복 때문에 얼결에 신부 행세를 하게 된다. 사제가 될 수 없음에 좌절하던 전과자 다니엘은 유혹을 참지 못하고 마을 성당의 신부가 되어 본다. '성인이 된 죄인'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은 뜻밖에도 실화다. 성직자의 무게를 실감하는 주인공 다니엘을 섬세하게 표현해 낸 배우 바르토시 비엘레니아의 놀라운 연기력이 눈에 띄는 작품.
얀 코마사 감독은 "믿음이 필요한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고 싶었다"면서 "선인과 악인 중 어느 쪽도 속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를 준 유일한 배우를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성체축일>이란 제목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으며, 종교적 채도를 다소 낮춘 제목 <문신을 한 신부님>으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첫 단편 영화 <만나서 반가워>를 통해 칸국제영화제에, 장편 데뷔작 <수어싸이드 룸>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기도 했던 유망한 감독 얀 코마사의 흥미로운 수작이다.
허니랜드 / 마케도니아
발칸반도 남부의 작은 국가 마케도니아에서 온 다큐멘터리 한 편. <허니랜드>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듯 벌꿀은 병든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는 50대 여성 하티드의 생계 수단이다. 하티드의 삶은 자연과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 몸을 보호할 변변한 장비 없이도 그는 비밀스러운 노래를 부르며 양봉을 한다. 자연을 착취하지 않고 공생하며 살아가는 하티드의 옆집에 어느 날 시끌벅적한 대가족이 이사를 온다. 하티드는 새로운 가족을 환영하지만 150마리의 소 떼를 이끌고 온 이웃으로 인해 이곳의 균형은 서서히 깨어져 간다.
지난해 열린 EBS 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자 선댄스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 다큐멘터리 대상을 품에 안은 작품이다. 대량생산과 기후변화, 농업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아우르며 인류의 미래를 근심하는 영화 <허니랜드>는 3년여에 걸친 끈질긴 촬영의 결과물이다. 극적인 순간을 제시하기보다는 명상적인 톤을 유지하는 이 작품은 느리고도 분명한 지구의 비극을 담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영화상뿐 아니라 장편다큐멘터리상 부문 후보에도 올랐다.
레미제라블 / 프랑스
지난해 칸영화제에서 <기생충>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 <레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서 보았던 장발장 이야기는 이 영화에 없다. 다만 영화는 현대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펼친다. 월드컵 우승의 분위기에 잔뜩 취한 프랑스. 파리 외곽의 몽페르메유에 새로 발령받은 경찰 스테판(다미앵 보나르)은 서커스단의 새끼 사자 도난 사건 수사에 착수한다.
'사자를 데리고 있는 아이를 보았다'는 제보에 따라 경찰들은 빈민가의 아이들을 불심검문하기 시작하는데, 부패한 권력은 아이들을 상대로 폭력의 수단을 동원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장면이 드론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에 고스란히 담기고 만다. 불행히도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폭력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폭력이 또 다른 폭력을 낳는 사회의 악순환을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 있는 묘사로 담아내 호평을 받은 <레미제라블>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돼 국내 영화팬들의 탄탄한 지지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페인 앤 글로리 / 스페인
스페인 시네마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페인 앤 글로리>는 그의 지난 인생에 관한 회고록과도 같은 영화다. 숱한 걸작들을 탄생시킨 저명한 영화감독 살바도르 말로(안토니오 반데라스)는 인생의 영광스러운 순간에서 벗어났다. 아픈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 그는 영화계를 은퇴해 살고 있다. 우연히 자신의 32년 전 작품을 다시 보게 된 말로는 촬영 이후 절연한 배우 알베르토의 연기에 뒤늦게 감동을 느낀다. 이를 계기로 말로는 자신의 과거와 차례로 대면하게 된다.
첫사랑, 욕망, 이별을 경유하는 이야기는 어느새 노년의 아티스트가 된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내밀한 고백을 듣는 듯한 기분에 빠지게 한다. 스페인의 오스카라 불리는 고야상 시상식에서 감독상, 각본상을 포함한 7개 부문을 휩쓸었고 각종 시상식의 외국어영화 부문에서 <기생충>과 경합해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작품. 트로피를 든 봉준호 감독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이름을 수상소감에서 언급하며 영광을 표현하기도 했다. 쟁쟁한 작품들을 후보로 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국제영화상 부문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남우주연상의 유력 후보에도 오른 <페인 앤 글로리>의 저력 역시 간과하기가 힘들다.
글 : 심미성(온라인뉴스2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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