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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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악의 연대기', '끝까지 간다'라는 교본에 부쳐…

김지혜 기자 작성 2015.05.07 11:13 조회 3,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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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연대기

[SBS연예뉴스 | 김지혜 기자] 한국영화 카피에 있어 제작진을 강조하는 경우는 드물다. 대게 배우나 감독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가장 전통적이면서 효과적인 홍보 전략이다.  

'악의 연대기'는 마케팅 초반부터 '끝까지 간다' 제작진이 만든 신작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끝까지 간다'(감독 김성훈)는 지난해 5월 개봉해 전국 340만 관객을 동원한 히트작. 2014년 개봉한 상업영화 중 가장 잘 만든 작품으로 꼽힐 만큼 수준급의 재미와 완성도를 자랑한다.

'끝까지 간다'는 김성훈 감독의 역량만큼이나 장원석 프로듀서의 기획력과 추진력이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영화 '최종병기 활','의형제',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 '내가 살인범이다' 등을 만든 장원석 프로듀서는 데뷔작의 실패로 8년간 기회를 얻지 못했던 김성훈 감독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뢰하고 지지했으며, 영화에 대한 남다른 감각으로 매끈한 상업영화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악의 연대기'는 장원석 프로듀서가 만든 비에이 엔터테인먼트의 창립작. 이번에도 첫 영화('튜브'(2003))를 실패한 전례가 있는 백운학 감독과 손을 잡고 절치부심의 홈런을 노린다.

악의 연대기

특급 승진을 앞둔 최창식 반장(손현주)은 회식 후 의문의 괴한에게 납치당한다. 위기를 모면하려던 최반장은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승진을 위해 사건을 은폐하기로 한다.

이튿날 아침, 최반장이 처리한 시체가 경찰서 앞 공사장 크레인에 매달린 채 공개되고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힌다. 자신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담당하게 된 최반장은 좁혀오는 수사망에 불안감을 느낀다.

최반장은 자신의 실수를 덮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재구성한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서로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한 남자가 자신이 진범이라며 경찰서에 나타난다. 

'악의 연대기'는 '끝까지 간다'와 마찬가지로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 형사의 우발적 선택으로부터 사건이 꼬이기 시작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또 남다른 속도감으로 보는 이를 극에 몰입하게 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연출 전략을 취한다.

거기까지다. 두 영화는 엇비슷해보이지만 다르다. 상업적 지향점은 오히려 '악의 연대기'가 또렷해 보인다. '끝까지 간다'가 상업영화의 클리셰와 사족들을 배제하는 실험을 통해 참신한 이야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면, '악의 연대기'는 클리셰를 끌어안으며 재밌는 장르 영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의도는 연속된 사건의 등장으로 속도감을 더하면서 호기심을 배가시키는 형태로 보여준다. 

악의 연대기

스릴러 영화에 있어 반전이 필요조건은 아니다. 관객 대부분이 반전을 예상하며 보기에 기발한 트릭이 아니고서는 큰 효과를 발하기 어렵다. 이 영화가 내세운 반전은 핵심 인물로부터 기인하지만, 유기적인 설계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반전을 위한 도구로만 소비되는 면이 강하다. 

'악의 연대기'의 강점은 인물에 대한 심리묘사다. 손에 쥔 두 패가 상이한 결과를 가져올 것을 알고 있고, 반드시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맞닥뜨린 인간의 딜레마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더불어 선과 악의 대립을 통해 '악이 반드시 나쁘다'라는 결론을 내는 것이 아니라 '악은 어떻게 태어났는가'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이와 함께 공권력의 오용, 시스템의 안일함, 권력을 향한 욕망에 대한 문제의식도 드러낸다.

'숨바꼭질'로 흥행배우 대열에 오른 손현주는 '악의 연대기'에서 보다 깊이 있는 연기로 신뢰감을 높인다. 출세를 향한 욕망과 윤리의식 사이에서 갈등하는 최창식 반장의 내면을 흔들리는 눈빛만으로 연기해낸 것을 보노라면, 남다른 연기 내공이 느껴진다. 

'악의 연대기'가 가야 할 노선은 '끝까지 간다'가 아니다. 외려 '끝까지 간다'를 생각하고 온 관객에게 다른 방식으로 한 방 날리는 작품이다. 그 한 방에 대한 평가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다.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02분, 5월 14일 개봉.

ebad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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