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톱으로 다섯 등분해 (후보에 오른 다른 감독들과)나누고 싶습니다”
봉준호(사진) 감독이 10일(한국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하자 객석에선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날 최고상인 작품상을 비롯해 4개 부문을 수상한 봉 감독의 재치 있는 화법이 눈길을 끌었다.
“내일 아침까지 술 마실 준비”
봉준호 감독 재치 있는 화법 화제
봉준호 감독은 이날 4차례 무대에 올라 톡톡 튀는 수상 소감을 남겼다. 각본상을 받고 “한국이 받은 최초의 오스카상”이라고 말한 봉 감독은 국제장편극영화상에 호명된 뒤 “내일 아침까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환호를 받았다. 감독상 트로피를 안고는 함께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등을 언급한 뒤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 빗대 “트로피를 톱으로 다섯 등분해 나눠 갖고 싶다”고 밝혀 기립 박수를 받았다. 영어와 한국어를 오가며 유머러스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발언으로 객석의 박수와 열띤 호응을 얻었다.
봉준호식 화법은 지난달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과 오스카 캠페인 기간에도 연일 화제였다. 그는 당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자막)을 뛰어넘으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우리는 영화라는 단 하나의 언어를 쓴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고, 아카데미 후보 지명 소감으로 “영화 ‘인셉션’ 같다. 곧 깨어나서 이 모든 것이 꿈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지난해 미국 매체 ‘벌처’와 인터뷰에서 한국 영화가 그동안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는 질문에 “별로 큰일은 아니다. 오스카상은 국제영화제가 아닌 ‘로컬’일 뿐”이라는 촌철살인 대답으로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 ‘지리멸렬’(1994)을 선보인 뒤 상업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로 충무로에 입성했다. 이후 ‘살인의 추억’ ‘마더’ ‘설국열차’ ‘옥자’ 등 20여 년간 영화 7편을 통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탄탄히 구축해 왔다. 이 가운데 ‘살인의 추억’은 이번 아카데미상 작품·각색·편집상 등에 후보로 올랐던 ‘조조 래빗’의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이 “내 인생 영화”라고 할 정도로 북미 평단에서 꼭 언급되는 작품이다. ‘마더’ 역시 ‘살인의 추억’과 함께 높이 평가받는다.
이번 오스카상 수상으로 세계 영화계는 봉 감독의 차기 작품에도 주목하고 있다. 봉 감독은 앞선 인터뷰에서 “차기작으로 한국어 영화와 영어 영화 2가지를 준비 중”이라며 “둘 다 실화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혔다. 봉 감독은 “한국어 영화는 서울에서 재난이 발생하는 호러 액션”이라며 “영어 영화는 2016년 본 CNN 뉴스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전했다. 남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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