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9일(현지 시간) 열린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봉준호 감독(51)은 함께 후보에 오른 거장들의 이름을 나열했다. 각본상, 국제영화상에 이어 감독상까지 거머쥔 봉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아이리시맨’),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샘 멘데스(‘1917’), 토드 필립스(‘조커’)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각본상과 국제영화상 수상 때 담담한 표정으로 무대에 올랐던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자로 호명된 직후 무대에서 연신 머리를 쓸어 올리고 이마를 만지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봉 감독은 영감을 준 거장 감독들에 대한 고마움을 곡진하게 표현하는 한편으로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폭소를 이끌어내고 세련된 매너로 시상식장을 쥐락펴락했다.
봉 감독은 “마틴 스코세이지의 영화를 보며 공부했던 사람이다. 같이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영광인데 상을 받을지 정말 몰랐다”고 했다. 두 손을 모으며 감사를 표하던 스코세이지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관객은 모두 기립해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감격한 듯한 스코세이지는 무대에 있던 봉 감독에게 엄지손가락을 높이 치켜들었다.
미국에서 유명한 스릴러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을 인용해 거장들에 대한 존경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도 화제가 됐다. 봉 감독은 감독상을 수상한 뒤 “같이 후보에 오른 토드, 샘도 존경하는 멋진 감독들인데,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 나누고 싶은 심정입니다”라고 하자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후보에 오른 네 감독 모두 박수를 치며 박장대소했다.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 올린 국제영화상 수상 후 봉 감독은 “I am ready to drink tonight until next morning(오늘 밤부터 내일 아침까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습니다)”이라고 직접 영어로 말해 폭소가 터져 나왔다.
국제영화상을 받은 뒤 봉 감독은 “이 부문 이름이 ‘Foreign’(외국어영화상)에서 ‘International’(국제영화상)로 바뀌었다. 바뀐 첫 번째 상을 받게 돼 더욱 의미가 깊다. 그 이름이 상징하는 바가 있다. 오스카가 추구하는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미국과 백인 중심의 시상으로 비판받았던 아카데미 시상식이 ‘자막이라는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으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을 지지하는 목소리였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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