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진행자로 돌아온 한학수 PD "강박감 내려놓고 안타 쳐나갈 것"

노도현 기자
<PD수첩> 진행자로 복귀하는 한학수 PD가 2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PD수첩> 진행자로 복귀하는 한학수 PD가 2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MBC <PD수첩>은 한학수 PD(49)의 30대를 상징한다. 2005년 말 서른여섯 살 청년은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을 보도해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었다. 불행히도 그의 40대는 ‘귀양’의 세월이었다. 논문 조작 보도 이후 <MBC스페셜> <W> 등을 연출했던 그는 2010년 김재철 전 사장 시절 파업에 참여한 뒤 안광한, 김장겸 전 사장 때까지 비제작부서를 전전했다.

오는 9일 연출자이자 진행자로 <PD수첩>에 돌아오기까지 12년이 걸렸다. 홍보 영상에는 ‘오직 시청자의 편에 서서 MC로 돌아온 한학수 PD’라는 문구가 등장한다. 식상해보이지만 그에겐 특별한 의미가 있다. 지난 2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실력이 모자라서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 적은 많지만 압력 때문에 피해간 적은 없다. 시청자만을 두려워하는 방송, 그것은 여전히 PD수첩의 신념이다.’ <PD수첩> 15주년 특집 방송에서 최승호 PD의 클로징 멘트였다. 황우석 사태 제보자는 이 멘트를 듣고 제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내 인생을 바꾼 멘트다. 시청자만을 위한다는 것은 방송의 본질이다.”

지난해 12월 파업은 끝났고 해직 5년 만에 돌아온 강지웅 시사교양1부장을 중심으로 <PD수첩> ‘드림팀’을 꾸렸다. 언젠가 꼭 이 프로그램으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진행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 PD는 말했다. “<PD수첩>이 무엇을 지향하는가, 어떻게 변할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인물이 필요했던 것 같다. 황우석 보도와 그 뒤 탄압받았던 이미지가 중첩되면서 한학수가 ‘진실’을 잘 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하다.”

MBC ‘PD수첩’ 홍보 동영상.

MBC ‘PD수첩’ 홍보 동영상.

2010년 경인지사를 시작으로 신사업개발센터, 송출주조정실, 디지털포맷개발센터 등에서 40대를 보냈다. 그는 감옥과도 같던 송출주조정실 시절을 떠올렸다. “방송 잘 나가나 관리하는 게 송출주조정실 업무다. 다른 사람들은 망가진 뉴스를 안 보면 그만인데,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돌아온 탓에 올해 중학교에 가는 작은 아이는 아빠가 TV에 나오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빠가 방송에 나올 거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다큐멘터리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연출자가 됐다. 입사 20주년을 맞은 2017년은 잊을 수 없는 한 해였다. 광장의 촛불이 대통령을 물러나게 했다. <PD수첩>이 가장 먼저 제작거부를 선언하며 파업에 앞장섰다. 김장겸 전 사장이 물러나고 그 자리에 옛 동료인 최승호 사장이 취임했다. 한 PD는 “이런 드라마가 또 있을까 싶다”고 했다.

<PD수첩>에 몸담은 시간은 3년 뿐이다. 그런데도 이 프로그램은 그의 인생을 규정한다. 그는 “<MBC스페셜-아프리카의 눈물> 촬영하면서 고생했지만 <PD수첩>의 한학수가 더 유명하다. 떠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PD수첩> 진행자로 복귀하는 한학수 PD가 2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PD수첩> 진행자로 복귀하는 한학수 PD가 2일 서울 상암동 MBC사옥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그가 진행하는 <PD수첩> 첫 회는 세월호 참사의 축소판이라고 불리는 ‘스텔라 데이지호 침몰 사고’를 다룬다. 실종자를 구조하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그 다음주 방송은 국정원이 한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후퇴시켰는지 돌아본다. 한 PD는 “MBC가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했다. “첫술에 절대 배부르지 않을 거라고 본다. 생각보다 우리가 약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야성이 드러날 거라고 본다. 너무 조급하게 가지 않게, 천천히 가려고 한다.”

50대의 키워드는 ‘희망’이었으면 하는 소박하고도 절실한 바람이 있다. 그는 “지난 몇년간 제작 일선에서 배제되고 나서야 내 인생에서 프로그램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박한지를 느꼈다. 취재와 보도를 하지 못했을 때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경험했다. 요즘은 하루 12시간씩 일해도 스트레스 많이 안 받고 그저 즐겁다. 강박감을 조금 내려놓고 하나하나 안타를 쳐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Today`s HOT
러시아 미사일 공격에 연기 내뿜는 우크라 아파트 인도 44일 총선 시작 주유엔 대사와 회담하는 기시다 총리 뼈대만 남은 덴마크 옛 증권거래소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불법 집회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인도네시아 루앙 화산 폭발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전통 의상 입은 야지디 소녀들 시드니 쇼핑몰에 붙어있는 검은 리본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