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마침내 찍은 쉼표 하나

입력
기사원문
김효정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러시아 상테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극장의 박춘모(왼쪽)·류환욱 부부. 류환욱 제공


인구 5000만 명 대한민국에서 한 해 1600만 명이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통계가 있다. 굳이 외국이 아니라도 좋다. 요즘엔 인근 지역의 호텔, 펜션에서 1박 하며 여행 분위기를 내는 이들도 많다. 누구에게나 떠나고 싶은 욕망은 있는 것 같다. 낯선 곳으로 가는 여행은 자신의 내면을 보는 방법이기도 하다. 여행을 통해 인생의 즐거움을 찾는 이들을 만나봤다.

#60대,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다

류환욱·박춘모 부부 “여행은 지혜를 얻는 시간”

“다른 나라 역사를 곁눈질해 보는 즐거움 크죠”

지난해 이선균, 김남길, 이상엽, 김민식, 고규필 등 남자배우 5인방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프로그램이 꽤 인기를 끌었다. 미남 배우들이 열차 내에서 친구를 만나고 열차가 정차하는 지역을 여행하는 모습이 굉장히 낭만적으로 다가왔다.

그 낭만은 과연 젊은이들만의 전유물일까.

류환욱(67), 박춘모(65) 부부는 지난해 7월 10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34일간 러시아와 북유럽을 여행했다. 바이칼 호수의 기점인 슬류단카와 이르쿠츠크, 예카테린부르크,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에스토니아 탈린을 거쳐 핀란드 헬싱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대장정이었다.

여행의 모든 일정을 직접 계획했고, 열차표 예약부터 숙소 예약, 여행지의 공연 예매까지 일일이 손품, 발품을 팔며 준비했다.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게 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해 대부분 숙소는 현지인 민박을 선택했다.

“50년 전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죠. 그 영화에서 눈 덮인 우랄산맥으로 열차가 기적 소리를 내며 달리는데 그 모습에 반했어요. 언젠가 꼭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죠.”

한창 바쁘게 살며 잊었던 소망을 이제는 가능하겠다 싶어 3년 전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러시아에 관한 공부가 첫 단추였다. 러시아 근·현대사를 비롯해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문학을 만났고, 림스키 코르사코프와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이해하려고 했다. 칸딘스키작품도 찾아보며 시베리아횡단열차의 거점인 러시아의 매력에 깊이 파고들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즐길 수 있다는 말이 맞았다. 오랜 준비 끝에 만난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은 놀라움의 연속이자 감동이었다. 열차 안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찐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바이칼을 찾아가는 동양인들로 열차 내에서 소문이 날 정도였다. 러시아를 지나 핀란드에선 대 건축가 알바알토와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흔적을 찾는 여행까지 하고 돌아왔다.

“색다른 음식, 풍속, 경치를 즐기며 다른 나라의 역사를 곁눈질해 보는 즐거움이 크죠. 이민족들이 영광스러운 역사만이 아니라 고통의 시간도 견뎌 왔다는 걸 깨닫는 거죠. 다름을 알고 기다림을 경험하고 호기심으로부터 나를 돌아보고 지혜를 얻는 시간이 여행입니다.”

이 부부가 전하는 여행의 즐거움이다. 부부의 시베리아횡단열차 여행기는 블로그(https://blog.naver.com/pogny91)에서 볼 수 있다.

#세 자매, 여행으로 힐링하다

김영선·김수재·김문준 씨 “여행은 일상 속 쉼표”

“앞으로 10년간 여행 계획들 이미 다 세웠어요”

김영선(71), 김수재(64), 김문준(56) 세 자매는 전문직 여성들로 여전히 왕성하게 일하는 현역들이다. 그렇게 바쁘게 사는 그녀들에게 잠깐씩 허락되는 쉼이 곧 여행이다.

“일에 쫓겨 바쁘게 사는 게 일상이죠. 그런데 낯선 환경에 나를 두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발견하는 게 여행인 것 같아요. 여행은 저희 자매들에게 힐링이죠. 나를 알게 되면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배려할 수 있게 되니까요. 가장 편한 관계인 자매이기에 그 여정에 기꺼이 함께 할 수 있는 거죠.”

일본 홋카이도를 여행하던 김문준, 김수재, 김영선 자매(왼쪽부터). 김문준 제공


우애가 좋았던 이들은 젊은 시절부터 국내 여기저기를 다녔고, 10여 년 전부터 외국으로도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 외국 여행은 경비가 들기 때문에 꾸준히 적금을 넣어 경제적인 부담을 줄이고 있다. 지금도 불쑥 주말에 의견이 맞으면 어디로든 떠난다. 숙소 예약을 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일정을 정하지도 않는다. 그저 어느 지역으로 가볼까만 정한다.

“주변에 보면 마치 숙제하듯 여행 일정을 정하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최대한 많이 다녀야 한다거나, 몇 곳은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는 거죠. 너무 얽매이지 말고 느슨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떠나는 길이 여행이고 즐거움이죠. 현지에 가서 물어보고 숙소를 찾아도 요즘에는 대부분 환경이 좋아요.”

모든 게 자유로운 일정이지만 이들 자매가 여행을 가면 꼭 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그 지역의 해설프로그램을 듣는 것. 숲 해설사, 문화해설사에게 듣는 지역의 삶과 역사는 여행이 주는 빛나는 선물처럼 느껴진단다. 최근 다녀온 곳 중에는 강천산과 익산이 너무 좋았다고 추천한다.

이들 자매는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일하고 여행 다니는 게 소망이란다. 당장 25일에 떠나는 이집트부터 앞으로 10년간의 여행계획들이 이미 다 세워져 있다. 그래서 오늘, 현재가 무척 즐겁다.

#두 번째 인생, 여행으로 열다

정년퇴직 앞둔 우승관 씨 “여행은 나를 위한 선물”

“여행지서 만난 자연, 마치 나를 돌봐 주는 기분 들어”

오는 6월 말 정년퇴직을 앞둔 우승관(61) 총경. 평생 경찰로 살며 나쁜 사람 잡는 것에 삶을 걸었던 우 총경은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 퇴임 다음 날인 7월 1일 차를 싣고 러시아로 갈 예정이다. 평생 준비했던 10년간의 세계 일주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퇴임을 앞두고 주변에 많은 이들이 심란해하더라고요. 저는 정년퇴임은 제게 주어진 선물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한 시대를 잘 살았고 하나의 세계가 아름답게 완성된 거죠. 그리고 내게 주어진 또 한 번의 인생을 시작하는 겁니다.”

전라남도 해남 땅끝마을에서 일몰을 보는 우승관 총경. 우승관 제공


우 총경은 원래 여행을 좋아했지만, 직업의 특성상 좋아하는 걸 미루고 살았다. 심지어 가족과 떠난 휴가 여행조차 급한 사건이 터져 중간에 복귀하기 일쑤였다. 8년 전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인생에서 처음으로 강제 쉼이 주어졌다. 그때 한 달간 제주도를 걸으며 나에 대해 생각했고 나를 돌보지 않았던 그동안의 삶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나를 위한 선물, 여행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이다.

이후 일하는 틈틈이 책도 많이 읽고 공연도 보고 국내 여행을 다녔다. 바쁜 와중에 나를 배려하는 방법이었다. 주말농장에서 밭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힐링하는 방법도 배웠다.

“불현듯, 홀연히, 아무렇지 않게 떠나는 거죠. 비범하게 말하는 여행의 평범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출발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겁니다. 여행지에서 만난 자연이 마치 나를 걱정하고 돌봐주는 기분이 들어요.”

앞으로 10년간 줄곧 길 위 지구별 여행자로 살아갈 우 총경의 여행 준비는 의외로 간단했다. 여행에서 읽을 책 100여 권과 여행을 기록할 노트북만 차에 싣고 떠난다. 우 총경은 새로운 인생을 앞두고 최근 몇 년의 여행과 삶을 기록한 에세이집 2권도 출간했다. ‘온통 행복으로 가득하길’이라는 책이다. 제목처럼 앞으로 펼쳐질 10년의 여행길이 그렇게 될 것 같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 네이버에서 부산일보 구독하기 클릭!
▶ '터치 부산' 앱 출시, 부산일보 지면을 내 손 안에!
▶ 부산일보 홈 바로가기

기자 프로필

사람과 세상에 대한 애정, 선한 영향력을 늘 생각합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