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자신을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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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물음이 ‘뇌과학’으로 집중되며 관련 도서 쏟아져
기억·의식·자아의 형성, 예술의 이해, 젠더 및 윤리문제까지 망라
뇌과학서 ‘봇물’…당신 뇌에 이 책



쏟아지는 과학책을 보면 욕망이 보인다. 강렬한 호기심을 채우고 싶은 인간의 욕망.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에서 살다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 존재와 공간의 좌표를 알고 싶은 이 욕망은 우주, 유전자, 진화 등과 관련된 서적으로 이어지다 최근엔 ‘뇌과학’ 도서로 폭발하고 있다. 온라인서점 예스24 쪽은 “뇌과학이 지닌 지적 권위가 커지면서 심리학·의학·인류학·철학 등 다양한 학문 분과들이 인간행동을 이해하는 근거로 뇌과학을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봇물처럼 쏟아지는 뇌과학 도서의 옥석을 가리기 위해 과학잡지 <에피>(이음) 편집위원들이 출동했다. 뇌과학의 중요한 주제 8개를 열쇳말 삼아 ‘양서’를 추천한다.





나는 뇌과학 초심자

이제 막 뇌과학의 바다에 발가락을 적시려는 이들은 <송민령의 뇌과학 연구소>(동아시아)로 방향을 잡아보자. 뇌 구조부터 자아·의식의 특성·인공신경망과 딥러닝 같은 기본개념과 최신정보를 탑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뇌과학이 왜 필요한지 일러준다. 저자는 뇌의 종합적인 네트워크 활동을 설명하면서 “‘뇌의 특정 부위와 특정한 기능이 일대일로 연결된다’는 오해에 따르면 뇌영상연구는 기술만 최첨단으로 바뀌었을 뿐 19세기에 유행했던 골상학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똑부러지게 비판한다. 뇌의 일반화·추상화 능력과 관련해선 “인공신경망에도 개 사진만 보여주면 개가 개인 줄을 모른다. 표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관계에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표상은 상대적이다. 나의 ‘이럼’은 너의 ‘그럼’ 덕분에 생겨난다”는 통찰을 제시한다. <더 브레인>(데이비드 이글먼, 해나무) 역시 기억의 오류 가능성, 의식과 실재의 개념, 사이보그 및 미래의 인간 전망 등 ‘기본’을 친절하게 짚는다.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가 집행한 강압적 임신강요정책 때문에 고아원에 유기된 많은 아이들이 충분한 사랑과 교육을 받지 못해 뇌 활동이 극적으로 감소한 사례 등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풍부하다.

기억이란? 의식이란? 나는 누구?

<의식은 언제 탄생하는가?>(마르첼로 마시미니·줄리오 토노니, 한언출판사)는 정보통합이론을 통해 의식을 정의하는 정통 뇌과학서다. ‘정보란 불확정성을 줄이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이 있다면 그곳엔 의식이 있다”고 규정한다. 뇌 신경세포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됐는지를 보여주느라 정보량 계산 모델을 끌어들이는 등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과알못’조차도 이해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할 정도로 설명이 명쾌하다. 간질 치료를 위한 뇌 절제 수술로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만들 수 없게 된 실존 인물, 헨리 몰레이슨의 삶은 개인에겐 비극이었으나 기억의 메커니즘을 밝히는 뇌과학 연구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영원한 현재 HM>(수잰 코킨, 알마)은 1분 전 나눈 대화조차 기억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뇌과학 연구에 헌신적으로 참여한 몰레이슨의 인간적 삶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기억 저장 능력을 잃은 몰레이슨과 아인슈타인의 뇌를 훔쳐 연구하는 편집증적 과학자가 등장하는 희곡 <인코그니토>(닉 페인, 알마)는 진리를 움켜쥐려고 해도 다가갈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짚은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감각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할까?

뇌의 복잡성을 깊이 있게 이해한다면 인간의 차이와 다양성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이 분야에서라면 ‘의학계의 계관시인’ 올리버 색스를 능가하기 어렵다. <목소리를 보았네>(알마)는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를 통해 지적인 능력을 폭발적으로 발달시키는 과정을 그리면서 비장애인들이 쓰는 음성 언어만큼 풍부하고 고급한 수어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설사 우리에게 취약한 부분들이 있다고 해도, 천성과 문화는 함께 힘을 모아서 생존과 초월을 위한 무한한 자원과 예상치도 못하는 힘을 주었다”는 색스의 통찰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혹독한 자연환경으로 인한 유전자 교배의 제약 때문에 선천성 색맹 인구 비율이 유달리 높은 미크로네시아 방문기 <색맹의 섬>(알마)도 추천한다. ‘컬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아는 명암과 농담의 범위는 흑백필름보다 더 넓다”고 말하는 장면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바탕으로 아름다움과 의미를 지닌 세계를 만들어가는” 인간(뇌)의 용기를 북돋운다. 더 나아가 <감각의 미래>(카라 플라토니, 흐름출판)는 트랜스휴먼, 사이보그를 제시하면서 “우리가 진화 과정에서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거나 아직 진화과정에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감각”을 전망한다.

뇌는 어떻게 예술에 기여하나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알마)는 ‘번개를 맞은 뒤 피아노와 사랑에 빠진 남자’ ‘청각을 잃었는데 음악 환청에 시달리는 부인’ ‘노래 기능만이 살아 있는 전측두엽 치매 환자’ ‘놀라운 음악성을 지닌 윌리엄스 증후군 환자’ 같은 흥미로운 사례를 통해 뇌가 인간의 예술 행위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설명한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뇌가 크게 손상된 사람일지라도 음악을 알아보고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치매에 걸린 환자에게도 음악만을 통해 불러올 수 있는 자아가 아직 남아 있다”는 그의 분석은 인간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예술의 힘을 웅변한다. 기억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노벨상(2000년)을 수상한 애릭 켄델의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프시케의숲)는 실제의 모습을 재현한 구상화뿐 아니라 오직 색채와 선으로 이뤄진 추상화를 보면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뇌는 배움과 기억을 활용하는 고도의 기능을 발전시켜 왔고 과학자들은 여기에 작용하는 요소를 분석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 왔다. 캔델은 과학자들의 방법론을 추상화가에도 적용시킴으로써 “노련한 몇번의 붓질로 실제 사람보다 훨씬 더 압도적인 느낌을 주는 개인의 초상화가 그려질 수 있는지, 왜 특정한 색깔의 조합이 평온함, 불안, 고양 같은 감정을 환기시킬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공지능은 인간 뇌의 모사일까?

뛰어난 인공지능을 만들고, 그 특성을 예측하려면 먼저 지능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지능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온갖 생명체들로부터 왔다. <지능의 탄생>(이대열, 바다출판사)은 지능을 “생명체가 생존과 번식을 위해 다양한 환경에서 의사결정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정의하고, 단백질합성과정·자기복제·돌연변이 등 지능의 진화 과정을 소상히 설명하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이 왜 막연한 기우인지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범죄는 ‘뇌 탓’일까?

최근 법정에서 벌어지는 첨예한 논란은 뇌과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자제력과 관련 깊은 전두엽이 성숙하지 못한 시기의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성인과 똑같은 양형을 선고하는 게 맞을까? 뇌 영상자료가 피고인의 정신질환을 입증하는 유력한 근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2009년부터 시작된 신경인문학 연구회의 <뇌과학, 경계를 넘다>(바다출판사)는 뇌과학이 철학적, 윤리적 주제와 맞닿는 지점을 탐색한다. 법적 책임문제를 비롯해 식물인간의 의료적 판정, 이른바 ‘영어뇌’를 내세우며 조기영어교육을 부채질하는 현상, 과학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상충 문제 등을 두루 짚었다.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른가?

여성 과학저술가 코델리아 파인의 <테스토스테론 렉스>(딜라일라북스)는 남성성 신화를 시원하게 격파한다. ‘종의 번식을 위해 수컷의 성적 문란함은 당연하다’는 식의 성선택이론이나, 남성에게서 많이 분비되는 테스토스테론이 남녀 뇌의 차이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뒤집는 통계적·과학적 근거를 들이민다. 그는 “성별의 영향이 뇌에 차이를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이 생식 체계를 결정할 때처럼 뇌의 발달에 근본적이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단언한다. “남성뇌와 여성뇌는 분류되지 않으며 특징들의 독특한 ‘모자이크’가 뇌를 이룬다.”

왜 불안하지?

우울증 기제를 이해하고 도움을 받기 위해 뇌과학서를 참조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뇌과학서에서 강조하는 운동과 명상 등 실용적 지침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신경증의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불안>(조지프 르두, 인벤션)에 도전하자.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영화 <이터널 선샤인>처럼 과연 우리는 불안과 공포의 원천인 부정적 기억을 아예 지울 수 있을까’ 같은 흥미로운 질문이 책에서 눈길을 못 떼게 만든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도움말 주신 <에피> 편집위원들

김초엽 작가

송민령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박사과정

전치형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최형섭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주일우(발행인·이음출판사 대표)

윤자형·박우진(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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