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원과 '패떴'이 부른 '이 풍진 세상을'은 어떤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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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원 김호중 등 '패밀리가 떴다' 팀이 불러 화제
구슬픈 하모니로 전국 시청자들을 눈물바다로
원곡은 흑인들이 예배때 부르던 찬송가
100년간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지난 13일 밤 방송된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에서 초등학생 가수 정동원(13)이 앳된 입술을 달싹이며 ‘희망가’의 가사를 내뱉는 순간 방청객과 심사위원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얼굴로 열세 살 소년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이날 10대인 정군과 함께 팀 ‘패밀리가 떴다’를 꾸린 20대 이찬원, 30대 김호중, 40대 고재근은 ‘청춘’을 주제로 삼아 ‘백세인생’ ‘청춘’ ‘고장난 벽시계’ ‘다함께 차차차’ ‘젊은 그대’ 등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노래들로 최고 점수(976점)를 받으며 공동 1위로 올라섰다.

압권은 마지막에 부른 ‘희망가’였다. 지금은 다들 ‘희망가’라고 간추려 부르고 있지만 사실 이 노래는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히트곡으로 꼽힌다. 선율은 바다 건너 외국에서 따왔으나 절절한 노랫말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에서 싹이 튼, 무려 100년 동안 한국인이 사랑한 우리 노래다.

◇원곡은 미국 흑인들이 예배 때 부르던 성가(聖歌)

19세기에 미국에서 불리던 영가(靈歌)를 모아 소개하는 일을 하던 제레미아 인갈스(Ingalls)라는 사람이 1830년대 중반 남부 흑인들이 부르던 찬송가를 수집해 낸 악보집에서 ‘희망가’가 나왔다. 원곡은 거기에 수록돼 있던 ‘The Lord into His Garden Comes’라는 제목의 찬송가다. 1890년대에 일본에서 먼저 번안곡이 나왔다. 우리나라에는 1910년대에 흘러들어와 기독교 신자 임학천이 ‘이 풍진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1·2절 노랫말을 붙였고, 두 민요가수 박채선·이류색이 1920년대에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 당시 최고 인기 가수이던 채규엽이 불러 크게 유행했다.

1920년대 악보집과 음반에는 ‘이 풍진 세상’ ‘이 풍진 세상을’ ‘이 풍진 세월’ 등 가사 첫 부분을 딴 제목이 붙어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절은 1절이다.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에 침범하여/ 전정(前程) 사업을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반공 중에 둥근 달 아래서 갈 길 모르는 저 청년아/ 부패 사업을 개량토록 인도하소서”로 이어지는 2절은 청년들을 향해 주색잡기에 골몰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업을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시대마다, 가수마다 색다른 ‘희망가’

100년 동안 불린 만큼 이 노래는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됐다. 시대마다 창법과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졌다. 박채선과 이류색이 1920년대에 부른 노래는 자연발성에 가까운 경기민요 창법이어서 구슬픈 듯 청아하다. 특유의 경쾌하고 어깨춤 나오는 템포가 지금의 ‘희망가’와는 사뭇 다르다. 1960년대 이후 나온 신카나리아·고복수 등 원로 가수들의 노래는 흘러간 옛 트로트처럼 정통 창법을 고수한다. 1980년대 들어 한대수와 송창식, 이연실, 전인권 등이 선보인 ‘희망가’는 당시 청년들의 속마음을 대변한다. 가슴 뻥 뚫리는 성량의 이선희가 부르는 맑은 ‘희망가’, 기타 반주와 거친 목소리가 두드러지는 안치환의 ‘희망가’도 있다. 팝페라 테너 임형주는 지난해에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디지털 싱글로 이 노래를 녹음했다.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대금 명인 이생강의 ‘희망가’ 연주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 ‘군함도’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빠 이강옥(황정민)과 딸 소희(김수안)는 이 노래를 부른다. 드라마 ‘경성스캔들’에는 기생이던 차송주(한고은)가 어른이 되어 첫사랑과 씁쓸한 해후를 한 뒤에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효녀 가수’ 현숙은 이 노래만 들으면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지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린다고 했다. “12남매를 낳았지만 6남매를 잃었던 내 어머니는 가슴에 묻은 자식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하고 노래를 불렀다.”

/김경은 기자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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