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스트리트] 텍사스 전기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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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를 정복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에 등장한 '텍사스 전기톱'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상단을 차지하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봉 감독은 감독상 수상자로 무대에 올라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다섯 개로 나누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해 시상식장을 환호와 박수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왜 다섯 토막이며, 또 텍사스 전기톱일까. 다섯 토막은 봉 감독과 함께 감독상 후보에 오른 마틴 스코세이지(아이리시맨), 쿠엔틴 타란티노(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샘 멘데스(1917), 토드 필립스(조커) 감독에게 보내는 찬사이다. 다섯 조각 중 한 조각에 만족한다는 봉 감독의 즉흥적인 재치와 겸손이 상을 받지 못한 거장들의 기립박수를 이끌어냈고, 중계를 지켜본 지구촌을 감동시켰다.

텍사스 전기톱이라는 표현은 1974년에 나온 B급 호러무비의 대부 토브 후퍼 감독(1943~2017년)의 데뷔작 '텍사스 전기톱 학살'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외딴곳으로 여행을 떠난 하이틴 일행이 살인마에게 습격을 당한다는 공식을 낳은 호러영화의 원조이다. 이전에 다큐멘터리를 몇 편 찍은 후퍼 감독은 혐오감이 들 정도로 실감나게 영화를 찍었다. 살인마의 리얼리티를 살리려고 마스크를 쓰게 했고, 살인무기는 전기톱으로 설정해 보는 사람들의 오금을 저리게 했다.

이후 수많은 공포 영화에 영감과 모티브를 제공하며 숭배받기에 이른다. '진주만'을 연출한 마이클 베이 감독이 제작하고 마커스 니스펠이 감독한 2005년 작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리메이크 작품이다. '아이즈 와이드 샷'의 스탠리 큐브릭이나 봉 감독도 숭배자 중 한 명이다.

봉 감독은 이날 그냥 전기톱이 아니라 '텍사스' 전기톱이라고 미국 내 지명을 특정했다. 이것은 '공포 영화의 바이블'에 바친 단순한 익살이라기보다 영화계 변방에서 온 이방인 감독에게 큰 상을 안겨준 8400명의 미국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보내는 헌정이라고도 해석하고 싶다.

joo@fnnews.com 노주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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