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 제국 부활’ 노리는 터키… 해외 영향력 확대 본격화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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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 건국이념 ‘해외 불개입’ / 에르도안, 장기집권시대 열며 바꿔 / ‘아랍의 봄’·IS로 중동 정세 불안 틈 타 / 시리아·리비아 등서 군사 작전 펼쳐 / 소말리아 반도에 軍 캠프 차려 운영 / 美와 대립하며 러 방공시스템 도입 / 나토 회원국 지위 재고 지적도 나와

“터키는 터키보다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78만㎢(터키 면적)에 갇혀 있을 수 없다.”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2016년 케말 아타튀르크(투르크인의 아버지)의 추도식에서 한 말이다. 터키의 전신은 오스만제국이다. 1299년부터 1922년까지 북아프리카, 남유럽과 동유럽, 서아시아 3대륙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거느렸던 이슬람 국가다. 16세기 전성기를 누리던 오스만제국은 유럽 열강의 등장과 1차 세계대전 패배에 이어 다수의 소수민족이 독립하면서 와해 위기에 처했으나 ‘국부’ 아타튀르크의 지휘 아래 터키공화국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후 초대 대통령에 오른 아타튀르크는 터키가 적극적 위협에 놓이지 않는다면 해외에서의 개입을 삼간다는 것을 건국이념 중 하나로 삼는다.
그러나 에르도안(사진) 대통령은 2010년 튀니지에서부터 확산한 반정부 시위물결 ‘아랍의 봄’을 기점으로 이런 기조의 방향을 틀었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지난달 21일(현지시간) 지적했다. 에르도안 정부는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와 튀니지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형제단과 연계된 정당들을 지원했고, 내전이 격화된 시리아에서는 무장반군을 지원하며 해외 개입을 본격화했다.

특히 터키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 시리아 영토에서 이미 세 차례 군사작전을 펼쳤으며, 최근에는 ‘자위권’을 언급하며 시리아 북서부에 탱크와 장갑차 등 500대가 넘는 전투차량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초에는 역시 아랍의 봄의 영향을 받아 내전 중인 리비아에도 자국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터키가 해외에서의 영향력 확대에 부쩍 나서면서 과거 광활한 영토를 호령했던 오스만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일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

◆‘21세기 술탄’의 탄생

에르도안 대통령은 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 철권 리더십과 신권위주의를 앞세우는 ‘스트롱맨’으로 꼽힌다. 그는 ‘시황제’(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차르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처럼 ‘21세기 술탄 에르도안’으로 불린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위주의적이고 반서방적이며 이슬람주의를 강화하는 국수적 성향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954년 흑해 연안 도시 리제에서 태어나 최대도시 이스탄불의 빈민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어려웠던 성장기 경험은 보수 무슬림과 서민층의 정서에 효과적으로 파고들었고 그의 정치적 토양이 됐다. 그는 1994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이스탄불에서 시장에 당선되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2001년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해 당 대표가 된 에르도안 대통령은 2002년 총선에서 전체 의석의 66%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둔다. 공화국 건국 이후 첫 이슬람계 정당 단독 정부의 탄생이었다. 그는 이어 2007년, 2011년 총선에서도 잇따라 승리해 총리로 3연임했고, 총리직 4연임 금지 규정에 발목이 잡히자 201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는 등 권력을 놓지 않았다. 이후 그는 터키의 정치체제를 의원내각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전환하는 개헌을 추진해 가결시킨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지만, 그의 독재적 정치 스타일은 끊임없이 논란을 불렀다. “누가 반대하든 말든, 우리는 이스탄불 운하를 건설할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1일 재정 문제로 사업 진행에 난항을 겪고 있던 운하사업에 관해 한 말이다. 이스탄불 운하는 마르마라해와 흑해 사이에 총연장 45㎞, 폭 400m 규모로 인공수로를 만드는 약 160억달러(약 18조9000억원) 규모의 사업이다.

불공정 선거와 야권 탄압, 법치주의 약화와 언론 장악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2018년 대선 당시 제1야당 대선후보였던 무하렘 인제 의원은 결과를 수용한다고 밝히면서도, 일부 개표 부정 정황이 있었고 선거과정도 공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광역시장 선거에서 야권 후보가 승리하자 에르도안 정부는 권력을 총동원해 재선거를 강행해 비판받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영구집권 가능성도 제기된다. 개정된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 임기는 5년이며 중임할 수 있다. 또 중임 대통령이 임기 중 조기 선거를 시행해 당선되면 다시 5년을 재임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이 가능한 것이다. 그의 총리 재임 기간까지 합하면 30년 이상 1인자 자리를 유지하는 셈이다. 세계 헌법재판기관 협의체인 베니스위원회도 터키 개헌안에 대해 “터키의 입헌민주주의 전통을 거스르는 위험한 시도로, 전체주의와 1인지배에 이를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시리아 넘어 리비아로…서방과는 각 세우며 영향력 넓히는 터키

에르도안의 터키가 시리아 국경을 넘어 군사작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모두 정부의 ‘불안 요소’가 될 수 있는 쿠르드 세력을 막기 위해서였다. 2016년 8월에는 시리아 북서부에서 ‘유프라테스 방패’작전을 벌여 알밥·다비끄·자라불루스 등을 점령하고 쿠르드 세력의 서진을 차단했다.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국제동맹군과 함께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전에 나서며 시리아 북부에서 쿠르드의 장악력이 강화되자, 터키는 2018년 1월 또다시 시리아 국경을 넘어 쿠르드가 점령하고 있던 북서부 도시 아프린으로 향했다. 아프린의 상징이자 평화를 상징하는 이 ‘올리브 가지’작전을 통해 두 달 뒤인 3월, 터키는 시리아 내전의 혼돈 속에 쿠르드족을 몰아내고 아프린 지역을 점령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쿠르드족이 통제하고 있는 시리아 북동부 국경도시에 대한 ‘평화의 샘’ 지상작전을 개시했다. 이후 길이 480㎞, 폭 30㎞에 이르는 시리아 북동부 쿠르드 지역에 있던 쿠르드족을 몰아낸 뒤 해당 지역을 ‘안전지대’로 지정했고, 주택 20만채를 건설하고 자국 내 시리아 난민 100만명 이상을 이곳에 이주시킬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가 쿠르드족을 극도로 경계하는 이유는 분리주의 때문이다. 터키는 자국의 분리주의 무장단체 ‘쿠르드노동자당’(PKK)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인식해 왔으며 쿠르드 민병대 YPG를 PKK의 분파 테러조직으로 여긴다. 터키가 시리아 국경을 넘어 펼쳐온 군사작전에 ‘평화’, ‘올리브 가지’ 등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붙여온 이유도 ‘YPG 격퇴’라는 속내를 감추고 IS 등 ‘테러조직 소탕’이라는 명분을 강조하려는 의도라는 평가다.
터키군의 탱크와 장갑차 등이 지난 8일(현지 시각)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주 비니시 마을을 통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시리아 반군의 최대 지원세력인 터키는 시리아 내전에도 적극 개입해 왔다. 반정부 시위물결인 ‘아랍의 봄’에 영향을 받은 시리아 내전은 아사드 집안의 장기 집권과 당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폭정에 맞서 2011년 시작됐다. 터키는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2018년 9월 이들립 일대에서의 휴전에 합의하지만, 정부군이 지난해 공격을 재개하며 반군을 터키 국경 쪽으로 몰아붙여 왔다.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마지막 거점인 북서부 이들립주로 진격하자 터키 정부는 급기야 “자위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고, 타스통신에 따르면 지난 2일 200여대에 이어 9일에도 장갑차와 탱크 등 약 300대의 터키 전투차량이 북서부 지역 국경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예루살렘포스트는 시리아 내에서 터키의 진짜 목표는 자국의 분리주의 무장단체 PKK를 타도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터키는 동북부 본거지에서 쫓겨난 수십만의 쿠르드족이 있는 서북부 아프린 등지에서 싸우기 위해 이들립 출신 시리아인들을 영입해 왔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초에는 터키가 내전 중인 리비아에도 자국군 파병을 결정하며 국제사회에 파문이 일었다. 터키, 카타르 등 친(親)무슬림형제단 국가들은 이슬람 원리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형제단계 인사가 주축인 통합정부를 지지해 왔다. 터키의 파병 결정을 두고 터키가 중동뿐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는 것과, 에너지 자원이 가득한 동지중해를 놓고 그리스·키프로스와의 갈등이 심화하자 동지중해 영향력 확대의 배후지로 리비아를 택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터키는 ‘아프리카의 뿔’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소말리아 반도에 대한 영향력도 넓히고 있다. 터키는 2011년 대기근이 닥친 소말리아에 대규모 원조물자를 보낸 것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터키 해외 군사기지 중 최대 규모인 캠프 투르크솜의 운영을 소말리아에서 시작했다. 리비아와 소말리아의 사례에서처럼 에르도안 대통령 치하에서 터키의 해외 영향력은 오스만제국 붕괴 이래 가장 높은 수준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더타임스는 지적했다.

이에 더해 터키는 최근 러시아제 S-400 방공미사일 시스템 도입을 강행하며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 오던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등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터키의 이러한 돌출행동을 두고 터키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지위를 재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 외교협회(CFR)의 외교안보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WP)와 CNN의 외교·안보 기고자이기도 한 맥스 부트는 터키가 지금 나토 가입을 신청한다면 시장경제를 제외하고 정치체제와 민주주의 등 다른 모든 기준에서 미달한다고 꼬집었다.

터키가 지난해 10월 쿠르드족이 장악한 시리아 북동부에서 군사작전을 감행하고 키프로스 인근에서 불법적 천연가스 시추활동을 한 데 대한 대응으로 유럽연합(EU)은 올해 터키에 지원할 계획이었던 EU 가입 후보국 지원금을 75% 삭감하기로 했다고 dpa통신이 지난달 18일 보도했다.

임국정 기자 24hou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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