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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도 아닌데 1년에 100명이 넘게 죽는 곳이 군대다.(사진은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의 한 장면)
 전시도 아닌데 1년에 100명이 넘게 죽는 곳이 군대다.(사진은 영화 '밴드 오브 브라더스'(2001)의 한 장면)
ⓒ 밴드오브브라더스(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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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모병제'는 공공부문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이다. 63만 대군을 30만으로 줄이는 대신, 그 중 사병에게 9급 공무원 초봉 수준인 200만 원쯤 월급을 주겠다는 제안이다. 9급 공무원 인기가 유시진(드라마 <태양의 후예> 주인공) 대위 못지 않은 나라에서 솔깃한 제안이다.

2년 미만 비정규직 수십 만이 최악의 저임금을 받으며 학대당하는 곳, 만약 회사가 이랬다면 진즉 간판 내렸다. 사람도 많이 죽는다.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1년에 100명이 넘게 죽는 곳이 군대다. 현대중공업은 산재사업장으로 명성이 높다. 4만 명 정도가 일하는 이곳에서 올해에만 9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영국, 호주처럼 기업살인법이 있는 나라였다면 최고 경영자는 구속이다. 같은 법을 국방부에 적용한다면, 국방부 장관은 무기징역감이다.

이러니 군을 이대로 두는 건 양심의 문제다. 모병제는 부조리 덩어리 군대를 손보는 첫 단계로 나쁘지 않다. 적당한 임금에, 자발적으로 모인 병사들이, 의욕과 자부심을 가지고 복무하는 군대. 괜찮은 그림이다.

환상은 금물

다만 환상을 가질 필요까진 없다.

모병제가 되면 흙수저만 군대 간다는 걱정은 일리가 있다. 이 걱정을 기우로 만들려면 군대를 좋은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달랑 월급만 올려줄 게 아니라, 군대 민주화도 필요하다. 인권 문제 개선을 위한 획기적 조치가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병제라도 사람은 죽어 나갈 것이다. 그런 직장은 인기 금방 떨어진다. 지원자 모집이 어려울 거라던 반대편 논리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다시 징병제로 유턴이다.

그러니 그동안 거론됐던 군 인권보장을 위한 각종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군인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이나, 군 인권 고충 처리 기관을 국회 산하에 두는 등의 조치 말이다. 이 두 가지는 지난 총선 때 정의당 공약이었다.

이렇게만 된다면 군대는 적지 않은 월급에, 직장 분위기 좋겠다, 잠재워주고, 삼시 세끼 밥도 줘서 매달 200만 원 꼬박꼬박 저축할 수 있는 직장이 된다. 이때부터는 경쟁률 1:1 이상이다.

남 지사 역할은 '종북 공세 차단', 딱 거기까지

요즘 모병제 논의가 다행인 건 종북 소리가 별로 안 나온다는 점이다. 이건 남경필 지사의 공이다. 진보정당이 모병제 얘기를 한 건 10년도 넘었다. 그러나 이슈는 현직 도지사에 집권 여당 잠룡쯤이 되어야 만든다. 보수의 아이돌 남경필 지사가 운을 띄우니 북핵 5차 실험까지 있은 마당인데도 색깔공세가 거의 없다.

그런데 남경필 지사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모병제는 군대 구조조정 계획이다. 사람은 줄이고, 생산성은 높이자는 취지다. 남경필 지사는 작지만 강한 군대라고 말하고, 김두관 의원은 정예강군이라고 표현한다. 깔끔한 논리다. 요즘 전쟁은 첨단무기로 하는 것이니 삽질하는 다수보단, 숙련된 소수가 군사력 강화의 핵심이라는 얘기다. 틀린 말이 아니다. 덩치 큰 허약체질보다야, 작아도 몸집 단단하면 싸움에 강하다.

그런데 남경필 지사는 사드찬성론자다. 평택이나 오산에 사드가 배치돼도 찬성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니까 남 지사의 군대 구조조정 계획은 확실히 강한 군대를 만드는 것이다. 60만 병사가 죄다 소총으로 응사를 해도 무수단 미사일을 막을 순 없다. 이럴 땐 사드가 제격이다.

이것이 모병제에 대해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는 두 번째 이유다. 보수의 모병제는 수준이 딱 이렇다. 그러므로 남경필 지사의 역할은 종북공세 차단까지다.

병사의 손에 삽 대신 첨단 살상무기를!

군인 숫자는 줄이되 무기를 늘리면 그건 군비증강이다.(사진은 영화 무수단(2015) 중 한 장면)
 군인 숫자는 줄이되 무기를 늘리면 그건 군비증강이다.(사진은 영화 무수단(2015) 중 한 장면)
ⓒ 무수단(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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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병제는 군사력 강화를 위한 효율화 계획일 수도 있고, 평화군축 계획일 수도 있다. 군인을 줄이고 무기도 줄이면 평화를 위한 군비축소다. 군인 숫자는 줄이되 무기를 늘리면 그건 군비증강이다. 확고한 평화의지 없는 모병제는 정예 30만 병력의 손에 삽 대신, 첨단 살상 무기를 쥐어주는 계기일 뿐이다. 이게 구조조정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려고 하는 보수적 모병제의 목표다. 참고로 가장 생산성이 높은 무기는 핵무기다.

그래서 송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 같은 사람도 모병제에 찬성이다. 색깔론 공격이 없는 이유는 남경필 지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모병제가 군비증강에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보수언론은 모병제 반대 주장의 근거로 무기 고도화에 돈이 더 든다는 이유를 들기도 한다. 찬성이나 반대나 무기 구입비용이 더 들 거라는 속생각은 같다.

요즘이야 안 그렇지만 1960년대부터 북한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남북한 상호 군축을 제안했었다. 그때마다 남측의 반응은 무기 도입은 계속하면서 병력 축소를 제안하는 건 기만책이라는 식이었다. 탁견이다. 지금 모병제 논의에 딱 맞는 평가다.

모병제 논의 평화군축과 함께 가야

그러므로 이왕 시작한 모병제 논의,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우선 큰 계획이 필요하다. 한반도 전체를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 큰 계획 말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이 구상은 더 없이 절실하다. 대화 말고 방법이 없다는 걸 청와대만 모른다. 적대 관계 해소 없이 군대만 줄이자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한반도 비핵화, 북미 수교 달성을 추동할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런 방향을 전제로 과감하고 선제적인 군축 구상이 요구된다. 이건 우리 헌법 정신과도 어울린다. 헌법 5조에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돼 있다. 어디 쳐들어갈 생각 안 한다는 뜻이다. 그럼 군대는 왜 있나? 혹시 누가 공격해오면 방어는 해야 하니까 있다.

방어능력은 보유하되 공격 능력은 보유하지 않겠다는 깊은 철학이 기반이다. 탁구에도 공격형 선수가 있고, 방어형 선수가 있듯이 말이다. 대만이 이렇게 하고 있고, 일본도 원래는 그랬었다.

작전계획 5029라고 있다. 북한급변사태 발생 시 북으로 군을 진입시키겠다는 요지의 계획이다. 참여정부는 미국이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으로 바꾸는 데 강력히 반대했었다. 개념계획에다 구체적인 부대배치 계획 등을 더 넣으면 작전계획이 된다.

참여정부는 헌법정신을 지키려는 최소한의 노력을 했다. 개념개획이 작전계획으로 바뀐 건 '무개념' 이명박 정부 때다. 이런 식으로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는 헌법정신은 계속 부인되어 왔다.

공격형 안보가 아니라 방어형 안보

헌법에 주먹이 있다면 청와대를 한 방 갈겨야 할 때다. 정부는 명백히 공격형 안보에 몰두하고 있다. 2014년에 발표된 국방개혁 기본계획에는 그 전 계획에 있던 '적극적 억제와 공세적 방위'개념이 '능동적 억제와 공세적 방위'로 수정됐었다.

핵심은 전면전 징후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되면 '선제적 대응조치' 즉 대북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먼저 선빵 날리겠다는 거다. 이때 전면전 징후가 임박했는지 판단은 물론 정부가 한다. 박근혜 정부의 판단력은 믿을 만 할까? 생각 있는 정부라면 달리 했을 것이다. '최후의 순간까지 전쟁 억제' 이런 식으로 말이다.

어쨌거나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구상과 방어형 안보라는 철학을 전제로 GDP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비율을 줄여 나가야 한다. 군부인사들이야 GDP대비 국방비 비율이 매년 조금씩 낮아지고 있다고 앙탈이지만, 그 중엔 자기 먹을 것 줄어들어 불만인 자들이 꽤 있다. 국방비 절대 액수는 오히려 늘고 있으니 밥그릇 크기가 주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선제적 군축 수단으로서의 모병제

한국 정도 규모 국가에서 병사는 30만 가량이 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주장이다.(사진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 중 한 장면)
 한국 정도 규모 국가에서 병사는 30만 가량이 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주장이다.(사진은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2004) 중 한 장면)
ⓒ '태극기 휘날리며'(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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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줄여야 할까. 선진국은 GDP대비 1%가량이 국방비다. 한국 정도 규모의 국가에서 병사는 30만가량이 적당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주장이다.

다만, 국방비의 합리적 수준에 대해 우리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논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논의하자. 어느 정도 크기의 군대가 적정할지 사회적 논의기구를 통해 결정하면 된다. 대통령 직속으로 국가군비통제국 같은 걸 신설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것도 지난 총선 정의당 공약이다.

이렇게 한 다음에 군축을 실시하자. 선제적 공격 말고 선제적 군축을 하자. 이걸 제일 잘 했던 건 뜬금없지만 노태우 대통령이다. 노태우 대통령 물로 보면 안 된다. 취임 직후 남북교역 문호개방, 남북 동포 상호교류 등을 공세적으로 제안한 게 노태우다. 그 후 북한 비방방송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것도, 미국이 한반도에 몰래 배치했던 전술 핵무기를 철수할 때 적극적으로 호응한 것도 노태우다.

초반엔 의지표명 수준에서 적절히 하면 된다. 이때 모병제는 군축 1단계로 꽤 괜찮은 카드다. 모병제는 제도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단계적으로 실시할 수 있는데, 이걸 군축프로그램과 연결하면 된다. 선제적 군축 다음엔? 그 다음부터는 남북한이 군축 주고받기 하면 된다. 오고가는 군축 속에 평화가 싹튼다. 게다가 이것이 북의 군사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군 기득권 세력이 가장 큰 걸림돌

이렇게 하는 데 큰 걸림돌이 있다. 군 내부의 기득권 세력이다. 이들은 사실 평화군축을 전제로 하지 않은 모병제조차도 반대한다. 이들 중에는 모병제는 동의하지만 시기상조라고 얘기하는 자도 있는데, 자기가 기득권을 내려놓기는 시기상조라는 뜻이다.

새로운 집권 세력이 모병제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집권 초기에 전광석화처럼 밀어붙여야 한다. 안 그러면 보수적 모병제조차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 밀어붙이기 분야의 최고권위자는 YS다. YS가 임기 시작 전 무기도입 사업이었던 율곡사업 비리를 수사해서 전 현직 장성들을 구속시키고, 하나회를 척결했던 것이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4년에 '국방개혁기본계획2030'을 발표하면서 현재 국군 63만 명을 2030년까지 52만여 명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2020년까지 군을 50만으로 줄이자는 계획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들어와서 이 계획은 2022년으로 미뤄졌었다. 이게 현 정부 들어 2030년으로 또 연기된 것이다.

YS때 국방부 산하에 '21세기 국방연구위원회'라고 있었다. 나중에 유야무야됐지만, 여기서 한국군의 군축 및 감군에 대한 주요한 기획이 야심차게 진행됐었다. 이때 처음, 병력을 50만으로 줄이자고 했었다. 그때 목표연도는 2002년이었다. 이게 지금은 2030년이 되었다. 집권세력의 확고한 의지가 없으면 감군 계획 30년쯤 후퇴는 식은 죽 먹기다.

모병제 도입은 육군과의 전쟁

군대에서는 숫자 줄이기가 이렇게 어렵다.

국군의 '주류 계파'는 육군이다. 어떤 국회의원들은 국방부를 육방부라 부른다. 또 어떤 이들은 육사부라고도 한다.

어딜 가나 육사 출신들이 다 해 먹는 구조고, 육군이 죄다 차지하는 구조다. 병력수도 63만 중 육군이 49만이다. 미국 육군은 45만가량이다. 장군 숫자는 440명이고, 이 숫자도 한참 동안 변함이 없는데, 이 중 육군이 300명이 넘는다. 예비역 대장이 국방부 장관하는 게 관례처럼 되어 있는 한국에서, 그동안 공군과 해군 출신 국방부 장관은 각각 1명 씩 뿐이었다.

그러니까 모병제 도입은 육군과의 전쟁이다. 육군은 북한보다도 모병제 주창 세력과 더 싸우려 들지 모른다.

모병제를 한다는 건 이처럼 한반도 평화 체제를 위한 장대한 구상을 세우는 일이고, 안보전략을 헌법정신에 맞게 바꾸는 일이며, 군내 기득권 세력 특히 육군과 한바탕 일전을 벌여야 하는 일이다. 대통령의 깊은 철학과 절대의지가 없는 한 할 수 없는 일이다.

남경필 지사의 주장이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이 정부여당 쪽에서 나온다. 내용 없는 모병제 주장은 인기끌기용 포퓰리즘이 맞다.

덧붙이는 글 | 강상구 기자는 정의당 전 대변인입니다.



태그:#모병제, #남경필, #사드, #김두관, #북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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