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피신 연기하며 증조할아버지 고통 되새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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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4.03. 오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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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희망 승화시키는 ‘4·3교육’

제주여고 학생들 주도로

분향소 만들고 백비 써보고…

대정고 동아리 학생들도

4·3 소재 단편영화 만들며

평화·인권 소중함 새겨

풀어야할 과제들

국회 피해자 배상법 통과시켜

후유장애 생존자 우선 챙겨야

교황 4·3 추념식 메시지

“치유와 화해 정신 뿌리내리길”



2일 낮 제주시 제주여고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에 설치된 4·3 추모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2일 낮 제주시 제주여자고등학교 체육관 앞에는 점심을 먹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천막분향소를 찾았다. 제주4·3 70주년을 맞아 학교가 자체적으로 ‘4·3 추모 분향소’를 설치했다. 천막 안에는 ‘4·3 설명’과 ‘4·3문학관’이 학생들 손으로 만들어졌고 ‘백비’도 설치됐다.

이 학교 ‘4·3 추념일 추진위원회’ 소속 1학년들은 전날인 1일 일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교사들과 함께 나무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백비’를 만들었다. 김현주(17)양은 “4·3을 더 깊게 알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 활동에 참여하면서 더욱 평화와 인권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인혜(17)양도 “4·3 평화공원에 간 적이 있다. 할아버지가 중산간 마을에 살았는데 4·3 때 해안마을로 소개됐다는 이야기를 아버지한테서 들었다”고 했다. 강은진(17)양도 “4·3 때 많은 제주도민이 희생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주도에 사는 우리가 먼저 4·3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함께 페인트칠하던 송형일(34) 교사는 “학생들이 4·3을 실제로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분향소와 백비를 설치하게 됐다. 1학년을 대상으로 4·3추진위원회 20명을 모집했는데 60명이나 지원할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제주여고의 4·3 추모행사는 각별하다. 4·3 당시 도내 많은 학생들이 피해를 보았지만, 특히 제주고녀(제주여고의 전신) 학생들의 피해가 컸다. 제주여고 쪽은 2·3일 이틀 동안 학교 체육관 앞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백비’에 학생들이 생각하는 4·3의 의미를 직접 쓰는 활동을 하고 있다. 김기범(42) 1학년 부장교사는 “학교 생활 일상에서 4·3을 생각하고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목적이다. 작은 분향소이지만, 학생 스스로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 진순효 교감은 “3, 4월은 4·3 추모행사가 여럿 열리고 있다. 3월에는 전교생이 4·3 관련 책을 읽었고, 4월에는 분향소 설치와 4·3 영화 감상과 토론회가 예정돼 있다. 또 5개 연합 동아리가 4·3 유적지 등을 기행을 하고, 4월 마지막 주에는 4·3 엽서를 제작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2일 낮 제주시 제주여고 학생들이 학교에 설치된 분향소에서 ‘백비’에 들어갈 문구를 적고 매달고 있다.
■ 4·3교육 현장 서귀포시 대정읍 지역도 4·3 당시 피해가 컸던 곳이다. 이 지역 대정고등학교의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 소속 학생들은 4·3을 다룬 20분짜리 단편영화 <4월의 동백>을 만들었다.

2일 낮 제주시 제주여고 학생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학교에 설치된 4·3 추모 분향소에서 분향하고 있다.
이 학교 강익준(30) 교사는 “지난해 1, 2학년생 위주로 광주와 거제도 등 다크 투어리즘의 현장을 방문하면서 제주도에서 적용방안을 구상하게 됐다. 강 교사는 “4·3 하면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하는데 희생자의 아픔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4·3이 어떻게 전개돼 진행됐고,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미래에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4·3의 전개과정을 학생들이 이해했으면 좋겠다. 4·3이 과거의 역사에 머무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곳의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알고 잊지 않는 실천운동이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수범(18)군은 “동아리 회원 10명 가운데 9명이 기숙사 생활을 해 동아리 회원들끼리 밤새워 논의하기도 하면서 시나리오를 직접 짜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동아리 회원 10명이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하고, 인근 대정여고와 대정중, 대정초 학생까지 섭외해 모두 25명이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동아리 부장 2학년 이종찬(18)군은 “처음에는 유시시(UCC·사용자제작콘텐츠) 제작을 생각하다가 연극으로, 그다음엔 영화 제작으로 발전하면서 논의를 키웠다”고 말했다.

영화는 4·3 때 주민들의 피신처였던 큰넓궤와 예비검속 학살터였던 섯알오름, 백조일손지묘, 성읍민속촌, 학교 앞 등에서 촬영됐다. 집에서 감자를 자주 먹던 주인공 석민이가 이에 불만을 품고 가출했다가 초토화 시기를 만나 동굴 속으로 피신했고, 그 안에서 이웃이 건네준 감자를 먹으면서 운다. 이어서 이들과도 헤어져 해안마을로 내려갔다가 한국전쟁 때 예비검속돼 섯알오름에서 죽음을 맞는다는 게 영화 내용이다. 주인공 역할을 한 이석민(18)군은 “증조할아버지가 4·3 때 돌아가셨다. 어릴 때부터 집안에서 4·3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고 됐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떤 식으로 고통을 받았는지, 그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굴 안 연기를 할 때는 일부러 고추 연기를 동굴 안으로 태워 넣었는데 눈물을 쏙 뺐다”며 웃었다.

이들 학교 이외에도 제주시 애월고 미술디자인반 학생들은 4·3 배지를 제작하는 등 제주도 내 초·중·고교들이 자체적으로 4·3 책 읽기, 동백꽃 배지 달기, 티셔츠 제작, 4·3평화공원 및 유적지 답사 등 각종 4·3 관련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4·3의 진실을 알리고 교훈을 얻기 위한 미래세대의 4·3 교육은 70년을 맞은 4·3의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달 19일부터 오는 8일까지를 ‘4·3 교육주간’으로 정해 운영하고 있다.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은 “아름다운 제주의 풍광 속에 새겨진 곳곳의 상처투성이에 새살이 돋게 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몫이다. 4·3을 70년 전의 역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이자 희망의 미래로 승화시켜야 하고 그 중심에 4·3 평화 인권교육이 있다”고 말고 할 정도로 4·3 교육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귀포시 대정읍 대정고등학교 자율동아리 ‘4·3을 기억해’ 회원들이 학교 앞 일제 강점기 군사시설 앞에서 강익준 지도교사로부터 4·3 이야기를 듣고 있다.
■ 남은 과제들 제주4·3이 일어난 지 70년이 됐다. 1948년 10살이었던 제주도민들은 이제 80살이 됐다.1987년 6월 항쟁 이후 금지된 역사의 빗장도 조금씩 풀려갔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들도 많다. 2만5천~3만여명으로 추정되는 희생자 추가 진상규명, 고문과 연좌제로 인한 피해 규명, 당시 수감생활을 했던 이른바 ‘4·3 수형인’의 ‘형식적’ 재판, 마을과 물적 파괴 진상규명, 미국의 직간접적 개입 조사 등도 필요하다. 피해자 배상·보상,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군사재판의 무효화, 수형인 명예회복 등의 내용이 담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피해자 배상·보상을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고 있다. 피해자 배상·보상은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제주 지역의 대선 공약이었다. 다른 후보들도 배·보상을 약속한 바 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배·보상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국가가 국가폭력에 대해 사과했음에도 사후조치가 없는 것은 모순이다. 문재인 정부가 민주정부 3기로서 가장 중요한 적폐청산은 공권력의 오·남용으로 빚어진 문제이다. 4·3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보상은 문재인 정부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종민 전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도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뤄진 시점에서, 정의 구현의 마지막 순서는 피해 배상이다”라고 말했다.

천주교 제주교구 강우일 주교는 “4·3을 단순히 한국 현대사의 한 귀퉁이에서 일어난 일시적인 비극으로 보고, 그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하고 사회적 책임 규명을 하는데 그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70년이 지나 책임자의 사법처리와 처벌까지는 갈 수 없다고 해도 진정한 과거 상처의 치유와 해결을 위해선 진실을 감추지 말고 올바로 밝히며 원인, 과정과 책임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뿌리의 치료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안 행방불명인 표지석에 까마귀들이 모여들었다.
제주4·3의 미래를 인권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헌준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4·3의 진실에는 4·3사건 자체와 학살만이 아닌 70년간 정부의 극심한 탄압, 치열한 진상규명 운동, 최근에 전개된 억압과 이에 대한 저항 등 모든 것을 포함해야 한다”며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해야 한다. 제주4·3 시기 학살이 가장 많이 일어난 1948년 11, 12월은 아이러니하게도 세계인권선언이 나온 때”라고 말했다. 박찬식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 운영위원장도 “최소한의 인권 기준을 세울 때 4·3은 중요한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국제적인 인권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을 실행뿐 아니라 제도나 의식 등의 면에서도 지속해서 아픈 과거를 되돌아보며 우리의 인권 기준을 높여나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4·3 논문을 쓴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동북아실장은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해야 한다. 이는 비극적인 과거사 한 페이지의 전환점이 되는 것이며, 협력과 평화 구축, 발전의 새로운 경로를 여는 길이 될 것이다. 제주도는 어떻게 이런 비극적인 역사를 극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복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4·3으로 고통받았던 제주가 외부로부터의 사과 없이 안으로부터 화해와 상생을 도모해온 점을 배워야 한다. 여기에 남남갈등과 남북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있다. 미국이 4·3에 대해 진솔하게 사과하고 위로하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 교수는 제도화와 일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중앙정부·지방정부의 교체에 따라 4·3에 대한 평가나 지원 기준, 유족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 안 된다. 4·3을 대하는 공동지표를 합의해서 누가 집권하더라도 꼭 추진하겠다는 사회협약이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3 생존희생자 등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도 필요하다며 가까운 과제부터 해결해 나가자는 지적도 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은 “더는 혼자서 고통을 겪는 이들이 없어야 한다. 4·3 때 다쳐 평생 후유장애를 앓고 있어도 후유장애 불인정자가 된 이들도 있고, 4·3으로 어쩔 수 없이 성씨가 달라진 상태로 살다가 이를 바로잡으려고 해도 바로잡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소외의 그늘 속에 사는 4·3 생존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4월 출범한 제주4·3 제70주년 범국민위원회는 △정부 차원의 추가 진상조사 실시 △희생자와 유족, 공동체의 피해 회복 제도화 △불법재판 수형인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법제화 △유적지 보존·관리 체계화 △희생자 및 유족 신고 상설화 △행방불명인 유해 발굴 △4·3 트라우마 치유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4·3 왜곡 방지 및 명예훼손 처벌 법제화 △미국의 책임에 대한 규명과 국제적 해결방안 추진 △4·3의 제 이름 찾기(정명) 등 10대 과제와 요구사항을 선정했다.

한편, 이날 교황청 국무원 총리 피에트로 파롤린 추기경이 편지를 보내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4월3일 제주에서 열리는 4·3 70주년 추념식에 대해 잘 알게 됐다. 교황께서는 이번 추념을 계기로 남녀노소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치유와 화해의 정신이 뿌리내리기를 기원하신다”는 교황의 메시지를 전했다. <끝>

제주/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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