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 “여성·남성 시대 없는 ‘사람의 시대’ 올 때까지 진행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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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6.04. 오후 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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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여성시대…> 20년 진행 가수 양희은
문화방송 ‘골든 마우스’ 9번째 주인공 영예

“암말기 엄마의 아들 생일 축하 편지 안잊혀져”
“사연들에 공감하며 용기낸 여성들 자랑스러워”


MBC 라디오 <여성시대> 진행 20년을 맞은 가수 양희은. 문화방송 제공.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4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MBC) 사옥. ‘아침 이슬’이 울려퍼지며 가수 양희은이 등장했다. 민주화를 염원하는 젊은이들을 어루만지던 목소리로 여성들을 보듬어 온 지 20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방송 활동을 20년 간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하하하.”

양희은은 1999년 6월7일부터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표준에프엠 매일 오전 9시 5분)를 진행해왔다. <여성시대…>는 1975년 임국희 진행의 <여성살롱>으로시작해, 1988년 지금의 <여성시대>로 프로그램명이 바뀌었다. 그는 이종환과 김기덕(1996년), 강석(2005년), 김혜영과 이문세(2007년), 배철수와 최유라(2010년), 임국희(2014년)에 이어 <문화방송> 라디오에서 20년 진행자에게 주는 ‘골든 마우스’의 아홉번째 주인공이 됐다. “처음에는 한 1, 2년 하다가 말거라고 생각했어요. 20년을 목표로 방송을 시작했다면 절대 못했어요. 사연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저도 갱년기라 견디기가 너무 힘들어서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나 그러면서 지나온 게 20년이 됐어요. 하루하루가 쌓인 것일 뿐이죠.”

<여성시대…>는 1975년 유엔에서 세계여성의 해를 선포한 것을 기념해 만들어졌다. 태생부터 ‘여성’이 중심이다. 장수의 힘도 여성들이 일상의 고민을 적어 보내는 사연들이다. 지금껏 모두 5만8000여통이 소개됐다. 과거에는 가정 폭력 등에 대한 내용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사연이 많았다면, 2004년 이후 이주 노동자, 또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편지 등이 많이 오는 등 사연은 당대의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여성시대>는 사람들이 사심이나 욕심을 갖고 글을 써서 보내는 곳이 아니에요. 가슴으로 쓰는 편지, 하소연 할 때가 없어서 자기를 한번 정리해보고 싶어서 보내주는 사연. <여성시대>의 모든 힘은 편지 써서 보내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온다고 믿어요.” “사연의 무게가 가볍지 않은 게 나를 제일 힘들게 했다”는데 ?20년을 하면서는 “유방암 말기 환자였던 희재 엄마가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보낸 사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문화방송 제공
타협 따위 없을 것 같은 단호한 목소리로 읽어내려가며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들게 때로는 내편처럼 든든하게 청취자들을 보듬는 목소리가 프로그램의 힘이다. “진행자로서 사연을 정확히 전달하려고 애쓰는 것 밖에 하는 게 없다”지만, 프로그램을 잘 빚으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게 해왔다. “사투리 들어간 사연을 종종 읽게 되니 안 보던 드라마에서 사투리 잘하는 배우가 있으면 유심히 듣죠.” 즐겨 듣는 라디오가 뭐냐는 질문에도 “적군을 살핀다”고 답하며 웃었다. “출근길에는 김영철을 듣고, 퇴근길에는 컬투를 들어요. 요즘에는 붐도 모니터 합니다.”

함께 진행하는 서경석은 “양희은 선생님은 시간 관리가 철저하다”고 했다. 양희은은 매일 5시30분에 일어난다. 저녁 약속도 하지 않는다. “결혼하고 원래 규칙적인 일상을 살았다”지만 <여성시대…>를 진행하면서 더 철저하게 지킨다. “일 외에는 외출도 잘 안해요. 어쩌다 잠이 모라자면 다음날 방송 때 혀가 꼬여 발음이 잘 안되더라고요. 이러면 안되겠다 싶었죠.” 딱 한번 눈이 많이 내려 교통대란으로 방송을 펑크낸 것이 20년동안 그가 기억하는 유일한 실수다.

그도 라디오를 들으며 자랐다. “한운사 선생님의 라디오 드라마를 너무 좋아했어요. 정보나 음악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라디오에서 배웠어요.” 하지만 볼 것 많은 시대, 라디오의 설 자리가 점점 줄고 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저기 있구나 할 때 자기 객관화가 가능해져요. 그래서 매맞는 아내는 쉼터로 아이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생기는 거고. 그만둬야지 그만둬야지 하면서도 어느날 느끼게 된 것은, 안보이는 연대와 어깨동무가 거대하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깨달음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안보이는 공간의 파도가 라디오가 갖는 힘, <여성시대>가 주는 위로가 아닐까요.”

앞으로 어떤 <여성시대>를 꾸리고 싶냐고 물으니, 그답게 말했다. “여성시대, 남성시대로 구분짓지 않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요. 사람의 시대로 만들고 싶어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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