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아리랑》으로 민족의 설움을 달랜 예술가 나운규
1910년 강제로 우리나라를 병합한 일제는 총칼로 우리 민족을 다스렸다. 나라를 빼앗긴 어두운 시절, 우리 민족의 고통과 설움을 달래 준 것은 당시 유행한 연극과 노래, 영화 같은 대중 예술이었다. 우리 민족은 주인공의 몸짓 하나, 노래 가사 하나에 울고 웃으며 고단한 삶을 위로받았다. 특히 영화는 우리 민족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때로는 일제에 저항하는 마음을 하나로 엮는 소리 없는 무기가 되기도 했다. 그 시절 민족 영화의 신호탄을 올린 작품이 바로 나운규의 《아리랑》이다.
나운규는 1902년 국경 도시 회령에서 태어났다. 성정이 호방한 데다 꼬마 대장으로 유명 짜할 만큼 배포도 두둑했다. 감수성도 빼어나 동네 아이들에게 잡지에 실린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기도 했고, ‘회청동우회’라는 연극 동아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첫사랑 윤마리아와의 안타까운 인연으로 말미암아 고향땅을 떠나 만주 북간도로 가게 되고, 거기에서 독립운동에 몸담게 되었다. 독립운동을 하던 나운규는 고민 끝에, 공부를 열심히 해 나라와 겨레에 힘이 되는 큰일을 하겠다 마음먹고 북간도를 떠나 서울로 온다. 하지만 이런 나운규의 꿈은 일본 경찰의 모진 고문과 감옥살이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2년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운규는 연극 공연을 보며 어린 시절 꾸었던 꿈을 되살린다. 연극 무대가 주는 매력에 푹 빠진 나운규는 배우가 되겠다고 마음먹는다. ‘조선키네마주식회사’에 들어간 나운규는 배우로 한발 내딛게 된다. 하지만 작달막한 키, 똥똥한 몸집, 시커멓고 우락부락한 얼굴로 배우는 어림없다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들어야 했다. 그래도 나운규는 포기하지 않았다. 연기를 제대로 배워 본 적도 없었지만 외국 영화의 유명한 배우들을 보며 연기를 익혔고, 대본과 연출까지 홀로 공부했다. 무엇보다 영화 속에 민족정신을 녹여 사람들을 일깨우고 용기를 북돋울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1926년, 나운규는 마침내 영화 《아리랑》으로 당대 최고의 영화인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과 믿음, 우리 민족이 처한 참혹한 현실과 바람을 《아리랑》에 모두 담아낸 것이다.
나운규는 민족정신과 자유로운 예술혼을 지닌 우리나라 최초의 각본가이자 감독, 배우였으며, 초창기 우리나라의 영화를 이끈 선구자였다. 영화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는 사람도 영화로 가는 길을 알려 주는 사람도 없던 그 시절, 오로지 영화를 향한 열정 하나로 불꽃 같은 삶을 산 나운규. 나운규의 혼이 담긴 영화 《아리랑》의 필름은 사라졌지만 《아리랑》과 나운규는 전설로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
역사를 만든 인간의 기록 《아이세움 역사 인물》
《아이세움 역사 인물》은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국내외 인물의 행적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인물 이야기이다. 각 시대와 분야에서 불멸의 정신적ㆍ물질적 가치를 일구고 발전시켜, 역사의 밑그림을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조종하고, 역사를 완성한 인물들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소개한다. 인물의 일대기를 이야기로 구성하지 않고 역사적 사실과 정보를 바탕으로 인물의 삶을 들여다보기 때문에, 역사를 지배한 인물들의 삶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의 흐름도 함께 읽을 수 있다. 특히 ‘박스 정보’, ‘역사 마주보기’, ‘세계사 연표’ 등의 코너를 구성하여 인물에 대한 지식만큼이나 세계의 역사적 사건과 시대상을 풍부하게 담았다. 이를 통해 인물의 행적을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물의 삶과 세계 역사를 한눈에 꿸 수 있다.
또한 《아이세움 역사 인물》은 텍스트 중심의 읽는 인물전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 자료를 활용한 비주얼 인물전으로, 인물과 관련된 명화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사료들이 많이 담겨 있다. 다양하면서도 흥미로운 시각 자료가 어린이 독자들이 인물과 역사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접할 수 있게 도와주며, 그림 자료를 눈으로 감상하는 즐거움도 크다.
르네상스 시대와 근현대사를 이끈 세계 인물들로 시작한 《아이세움 역사 인물》은 조선 문예 부흥기를 주도한 실학자 정약용을 필두로 한국 역사를 빛낸 국내 인물들의 삶도 조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