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산의 부장들’ 격동의 시대, 이인자 전쟁의 이면

입력2020.02.19. 오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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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이병헌과 다시 만났다. ‘내부자들’, ‘마약왕’에 이은 욕망 3부작 ‘남산의 부장들’로 또 다시 ‘권력과 그 주변에 있는 이들의 욕구’에 대한 심리 게임을 다룬 것. 모두가 다 아는 1979년 10월26일을 극적으로 재구성하며 과열된 충성 경쟁을 담담하게 좇는 카메라는 그날, 그 인물이 방아쇠를 당기기까지 달아오른 심리적 프로세스를 긴 호흡으로 비춘다. 그리하여 ‘10.26’이라는 짧은 단어로 압축된 그날이 한 음절, 한 음절 풀어헤쳐진다.

‘이병헌이 머리카락까지 연기한다’는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모두가 다 아는 ‘10.26’ 사건을 상업 영화의 스크린으로 가져왔다. 대통령에게 18년간 충성해 온 중앙정보부장은 왜 총성의 주인공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1979년 10월26일,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성민)’을 암살한다. 그리고 영화는 사건 40일 전으로 되돌아간다.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이 미국에서의 청문회를 통해 전 세계에 고문과 비리 등 당시 정권의 실체를 고발하자, 고백록 출간을 막기 위해 김규평과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이 나선다. 대통령 주변에는 충성 세력과 반대 세력들이 뒤섞이고, 대통령이 중앙정보부가 아닌 제3의 인물을 ‘이인자’로 곁에 두고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 김규평은 예전과는 다른 권력의 움직임을 포착한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기자 출신 김충식 작가가 신문사에 2년 이상 연재한 글을 모아 펴낸 책이 한일 양국에서 50만 부 이상 팔렸고, 영화는 이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삼았다.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을 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납치 실종 사건, “국민은 탱크로 깔아뭉개면 된다”고 했던 차지철 전 경호실장의 실제 이야기를 얼개로 삼되, 원작의 텍스트가 내포한 주인공들의 심리 묘사에 중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 5.16 군사 쿠데타, 부마 민주 항쟁, 10.26 등 많은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한 만큼 배우들 역시 애드리브를 최대한 줄이고 대본에 충실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김재규라는 인물을 미화하는 것 없이 인간적으로 묘사한 점 역시 돋보인다.

이 영화를 통해 “임자 옆에는 내가 있잖아”라는 대사를 유행시킨 이성민은 말투, 표정, 걸음걸이까지 박 대통령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냈는데, 거기에 늘 그랬듯이 ‘이성민’이라는 필터를 거쳐 나온 특유의 느낌을 더했다. 특히 18년 동안 철권 통치를 하다 정권의 끝자락에서 막판에 흐려지는 판단력, 흔들리는 주인공의 심리를 잘 표현해 냈다는 평가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검사, ‘변호인’의 경찰, ‘강철비’의 외교안보수석까지 엘리트 캐릭터에 있어서 독보적인 연기를 펼친 곽도원이 한국 정부의 비밀을 폭로하는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 역을 맡았다. 모든 사안을 합리적으로 처리하던 와중에 일인자의 관심이 옮겨 가자 흔들리는 심리를 표현해 낸 이병헌의 카리스마도 대단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남산의 부장들’에서 가장 강력한 신스틸러는 대통령 경호실장 곽상천 역을 소화하기 위해 25㎏이나 증량한 배우 이희준이다. 중앙정보부가 휘두르는 권력과 요직 인사들의 충성 경쟁을 못마땅해 하던 충성 경쟁 속에 혼자 엘리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김규평을 눈엣가시로 여기는 차지철 경호실장 역에 혼을 불어넣었다.

영화는 드라이하게 그날의 일을 주시하면서도 일인자의 관심을 얻기 위해 날뛰는 이인자들의 뜨거운 전쟁을 ‘연기신’들의 캐릭터로 되살려 냈다. 러닝 타임 114분.

[글 최재민 사진 ㈜쇼박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7호 (20.02.2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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