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전선 무너진다, 대구 대학병원 응급실 모두 폐쇄 "의료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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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2.20. 오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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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병원 등 응급실 폐쇄 해제까지 최소 3일 소요
전문가 “응급의료 최전선 붕괴…의료재난 수준”
대구시 “응급환자 발생시 종합, 일반병원 최대한 활용”
신종코로나 집중 의료기관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 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발생한 것으로 알려진 19일 오전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 응급실이 폐쇄됐다. [뉴시스]
19일 대구·경북 지역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18명 발생하면서 대구에 있는 대학병원(3차 병원) 4곳이 모두 폐쇄됐다. 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방문하지 않은 종합병원과 일반병원에서 감기 증세 환자를 꺼리거나 임시 휴업하는 사태가 이어지면서 대구 지역 의료 체계 마비가 우려된다.

대구에 소재한 대학병원 응급실은 경북대·영남대·계명대·대구가톨릭대 등 4곳이다. 지난 18일 오후 3시 계명대 동산병원을 시작으로 경북대·영남대·대구 가톨릭대가 차례로 폐쇄됐다. 영남대는 19일 오전 11시 폐쇄 조처를 해제했다가 이날 오후 3시 24분 또다시 폐쇄했다.

이날 오후 4시쯤 영남대 병원 응급실 앞에서는 직원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 앞에서 서류를 주고받았다. 보호자로 보이는 5명은 여기저기로 전화를 걸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응급실 폐쇄로 오도 가도 못해서였다. 영남대 병원 관계자는 “오전에 폐쇄했다가 다시 열었는데 확진자가 나오면서 다시 닫았다. 언제 열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남대병원에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가 다녀갔다는 사실이 확인되자 19일 오후 3시 24분부터 응급실이 폐쇄됐다. 신진호 기자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가 잇따르자 응급실 개방 여부를 묻는 문의 전화가 병원과 대구소방안전본부로 쏟아졌다. 대구소방본부 관계자는 “19일 오전부터 응급실 개방 여부를 묻는 전화가 쇄도해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응급의료포털(E-Gen) 사이트에서 응급실을 직접 찾는 게 더 정확하다”고 안내했다. 응급의료포털은 19일 오후 4시까지 접속이 가능했지만, 이후부터 사이트가 마비됐다.

신종 코로나 공포감이 대구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진료를 거부하거나 임시 휴업하는 종합병원과 일반병원이 속출하고 있다. 31번 환자가 예배를 본 대구 남구 ‘신천지대구교회’ 주변에는 문을 닫은 일반 병원이 눈에 띄었다. 대구 남구에 거주하는 신모(35)씨는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를 찾았는데 입구에 ‘감기 증상 환자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동네를 떠돌고 있다는 생각하니 섬뜩하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 조처가 해제되기까지는 최소 3일 이상 소요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북대병원 관계자는 “폐쇄하면 적어도 하루 정도의 방역을 거쳐야 한다”며 “의료진 일부를 격리하고, 기존 응급실 환자를 일반 병실로 분산 수용하는 등 후속 조처를 하다 보면 응급실 개방까지 최소 3일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대구 남구 '신천지대구교회' 주변에 있는 한 정형외과에 '감기 증상 환자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걸려 있다. 신진호 기자
응급실 폐쇄 조처가 장기화할 것으로 예상하자 응급 의료체계 마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부산대 응급의학과 조석주 교수는 “신종 코로나가 지역사회 감염 단계로 접어들었는데 응급의료 최전선인 대학병원 응급실이 모두 폐쇄됐다”며 “의료재난 수준이다”고 경고했다. 김동현 한국역학회장(한림의대 예방의학과 교수)은 “의심 증상이 있다고 함부로 민간 병·의원이나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는 안 된다”며 “만약 방문 환자가 신종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게 되면 해당 의료기관이 폐쇄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병·의원이 무방비로 뚫리게 되면 지역 진료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가 내놓은 대책은 종합병원과 일반병원 응급실을 최대한 활용한다는 게 전부다. 대구시 건강복지과 관계자는 “경북대 칠곡병원과 파티마병원 응급실은 이용할 수 있다. 병상 수가 모자라면 종합병원과 일반병원 응급실로 환자를 이송할 것”이라며 “응급 환자가 아니면 병원 이용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을 지속해서 시민들에게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만에 하나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교통사고 환자 등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제때 치료를 못 하는 응급의료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신종 코로나 의심 환자를 집중적으로 진료하는 의료기관을 지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동현 교수는 “정부는 민간 의료인을 대거 파견받아서 보건소의 진료 역량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며 "발열 등 신종 코로나 의심 증상이 있는 환자는 이곳으로 다 몰아서 진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질병관리본부가 마련한 ‘의심환자 확진 검사 의뢰 시 의료진과 환자 격리’ 지침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석주 교수는 “신종 코로나 감염을 의심한 의사가 환자에게 확진 검사 지시를 내리는 전제 조건이 의료진 및 환자의 격리다”며 “검사 결과가 나오는 하루 동안 의료진이 격리되는 ‘크나큰’ 결단이 없으면 확진 검사 지시를 내릴 수 없다. 격리대상 환자와 의료진 숫자가 제한된 선별진료소에는 적용 가능한 지침을 대학병원에도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결과가 나오기까지 응급실을 폐쇄하고 있다. 몇 안 되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장시간 폐쇄하면 지역 응급의료 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 소독은 필요하겠지만, 응급실 폐쇄 시간에 대한 합리적인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19일 오후 11시 기준 개금 백병원은 의심환자가 발생해 역학조사를 하면서 임시 폐쇄된 상태다. 부산 해운대 백병원 응급실은 이날 오전 11시 50분 폐쇄됐다가 이날 오후 8시 폐쇄 조치가 해제됐다. 양산부산대병원도 이날 오후 6시 20분부터 폐쇄됐다가 의심환자가 음성으로 검사결과가 나와 오후 10시 50분쯤 해제됐다.

대구=이은지·신진호·진창일 기자, 이에스더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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