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예방법 강제 규정 있지만, 실효성 떨어져… 연쇄 감염 못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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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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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망 왜 뚫렸나

불안한 대구시민 19일 오후 대구 동구 신암동 동대구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무더기로 발생했다는 소식을 알리는 뉴스특보를 보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대구·경북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가 무더기로 나온 것은 우리 방역체계의 허술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대구 지역 내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슈퍼 전파자’ 가능성이 제기되는 31번 환자(61·여·한국)는 입원 중 의료진으로부터 두 차례 코로나19 검사를 권유받았지만 모두 거절한 것으로 드러났다. 19일 오후 4시 기준 확진자 15명이 31번 환자와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의심 증세를 보이는 사람에 대해 일선 의료기관이 코로나19 검사를 적극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 본부장은 31번 환자 관련해 “병원에서 이분에게 검사를 권유했는데, 이 환자분이 해외를 다녀오지 않았고 증상이 상당히 가볍다 보니 코로나19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보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19일 오후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에서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및 확진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대본과 대구시 등에 따르면 31번 환자는 대구 소재 ‘새로난한방병원’에 입원 중인 지난 8일 인후통, 오한 등 증세를 보여 병원 측이 코로나19 검사를 권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지난 15일에도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에서 폐렴 증상이 확인돼 검사를 권유받았으나 거부했고, 17일에야 퇴원해 수성구보건소에서 검사받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31번 환자가 의사의 권유대로 검사를 받아서 조기에 발견, 격리됐다면 연쇄 감염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오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병원 권유에 따라 31번 환자가 검사를 받고 양성판정을 받았더라면 호텔 방문과 교회 예배 참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환자는 지난 15일 대구 퀸벨호텔을, 9일과 16일에는 남구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다대오지파대구교회 예배에 참석했다. 중대본은 “추가 확진자 15명이 31번 환자와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다른 확진자도 관련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 15명 중 14명이 31번 환자가 입원 중 출입한 교회에 다닌 사람들로 확인됐다. 추가 감염이 잇따를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 교회 건물은 9층짜리며, 소속된 신도는 9000명가량이다. 31번 환자가 참석한 16일 교회 예배 참석 인원은 460여명으로 조사됐다.
의심 환자에게 코로나19 검사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2조에 따르면 1급 감염병이나 전염력이 높은 감염병이 의심되는 경우 보건복지부 장관이나 시·도지사, 시·군·구청장이 공무원으로 하여금 감염병 환자 등에 조사·진찰을 받게 할 수 있다. 이를 거부할 땐 300만원 이하의 벌금도 물릴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환자로 의심할 근거가 명확해야 하는 데다 검사를 강제할 권한이 일선에서 의심 환자를 만나는 의료진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있는 탓에 실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정 본부장은 “31번 환자의 경우 본인이 중국에 다녀왔거나 확진자를 접촉했거나 하는, 코로나19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판단하고 있기에, 이 강제처분조항을 적용할 수는 없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수 나온 19일 오후 대구시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에 긴급 이송된 코로나19 의심 환자가 도착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같은 한계로 인한 추가 감염은 이날 확진 판정을 받은 32번 환자(11·여·한국) 사례에서 보듯 장기간 계속될 수밖에 없다. 32번 환자는 모친인 20번 환자(42·한국)의 접촉자로 자가격리 중 증상이 나타났다. 20번 환자는 지난 1일 형부인 15번 환자(43·남·한국)와 함께 식사를 했다가 감염됐다. 이 15번 환자는 당시 자가격리 중이었다. 질본의 자가격리 생활수칙에 따르면 자가격리 대상자는 혼자서 식사해야 한다. 15번 환자가 이 수칙을 지켰다면 20, 32번 환자에 대한 추가 감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15번 환자의 수칙 위반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가격리 관리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질본 측은 “15번 환자의 경우 자가격리 생활수칙 위반이 맞고 지자체 등과 논의해 경찰 고발 여부 등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19일 오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비상체제로 전환된 대구시청을 방문해 권영진 대구시장으로부터 대구 지역의 확진자 발생 상황과 방역 대책 등에 대해 보고 받고 있다. 연합뉴스
▲“원인불명 폐렴 증상 보일 땐 해외 여행력 관계없이 검사”

감염 경로가 불분명한 코로나19 환자가 늘어나면서 정부가 원인불명의 폐렴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해외여행력과 관계없이 진단 검사 대상에 적극적으로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대응지침을 개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다시 한 번 방역의 고삐를 죄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은 19일 충북 오송 질병관리본부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대응지침을 개정(6판)해 20일부터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개정된 대응지침은 원인불명의 폐렴 증상이 나타날 경우 해외 여행력과 관계 없이 음압병실 또는 1인실에 격리해 코로나19 검사를 수행하도록 했다. 정 본부장은 “대응지침 6판은 (앞서 정부가 밝힌) 폐렴 전수조사 계획과 동일한 개념”이라면서도 “모든 폐렴환자를 의무적으로 검사한다기 보단 흡인성·세균성 등 폐렴 종류에 따라 의사가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이 코로나19 국내 발생현황 및 확진환자 중간조사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또 접촉자 관리기준을 강화해, 의료인·간병인·동거인·역학조사관 등 밀접 접촉자는 필요성이 인정되면 격리 13일째 진단 검사를 시행해 ‘음성’ 결과를 확인한 뒤 격리해제하도록 했다.

정 본부장은 “(6판은) 중국인 입국자와 접촉이 잦고 입원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의 폐렴 증상이 나타난 분도 모두 검사를 받을 수 있게끔 사례정의를 확대했다”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주재하면서 방역망 확충을 약속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후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대구를 찾아 현장을 점검한 뒤, 적극적으로 행·재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확진자 격리 치료를 위해) 공공 및 민간병원 확보가 시급해 보인다”며 “우선 인근 자치단체와 협조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돕겠다”고 말했다.
대학병원 응급실 출입금지 음압병상에 입원 중인 환자 가운데 코로나19 양성반응이 나오면서 19일 오전 폐쇄된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 병원 응급실 현관 앞에 출입 금지를 알리는 테이프가 설치돼 있다. 대구=뉴시스
한편 지역 대학병원 응급실 폐쇄도 잇따르고 있다. 경북대병원은 전날 오후 11시 15분부터 응급실을 폐쇄했다. 이날 오전 한 차례 응급실을 폐쇄한 대구 영남대병원은 추가로 입원한 의심 증상자가 47번 환자로 판정되면서 다시 문을 닫게 됐다. 계명대 동산병원도 지난 17일 오후 10시 이송된 37세 여성이 폐렴 증세를 보여 음압병동에 격리 조치하고 응급실을 폐쇄했다. 경북도와 영천시는 영천영남대병원 응급실과 지역 의원 4곳을 폐쇄했다.

잇따른 응급실 폐쇄로 중증환자들이 필요한 응급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정 본부장은 “빠른 시일 내에 정상화하겠다”면서도 “경증 환자가 상급종합병원을 방문하면 중증환자가 많은 병원이 위험에 노출될 우려가 있으니 (증상에 따라) 적절한 의료기관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했다.

김승환 기자, 대구·경북=김덕용·전주식 기자, 이동수·최형창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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