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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대전

선사시대의대전

대전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한 분지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동·서·남쪽에서 산지가 현저히 발달해 있는데 동쪽 방면은 동구 식장산에서부터 고봉산, 함각산, 개머리산, 계족산 등의 줄기가 이어지며, 서북쪽으로는 금병산, 우산봉, 도덕봉, 백운봉 등 계룡산을 중심으로하여 형성된 산계가 논산시 두마면까지 이어지고 있고, 남쪽으로는 보문산이 주봉이 되어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이런 산지 사이를 유등천이나 대전천과 갑천이 흐르면서 북쪽의 금강으로 흘러 들어가는데 그 주변에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이처럼 강과 그 주변에 구릉성 산지를 기반으로 대전지방의 사람들은 선사시대부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삶을 이어왔다.

주먹도끼

우리나라의 구석기문화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을 통하여 약 27만년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전지방의 역사가 구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오를 가능성을 제시한 것은 바로 이웃한 공주 석장리 유적이다. 이 유적의 발굴 결과 12개의 문화층을 포함하고 있다. 그중 6층과 12층 에서 채집한 숯을 분석한 결과 30.690±3.000BP. 20.830±880BP의 절대연대가 나와 신빙성을 더해 주었다. 이로 해서 가까운 금강유역에 인간이 살았던 것을 확인하게 되었고, 대전에서는 2곳에서 유적의 징후가 나왔다.

대전지방의 구석기 유적은 구즉동의 오봉산 남쪽경사면 해발 60m되는 곳과 둔산동 유적이다. 이들 유적의 조사로 적어도 중기 구석기시대 말이나 후기 구석기 초기까지는 대전의 역사를 올려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 유적에서는 인공의 흔적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거나 유적의 성격이 확실하지 않은 약점은 있으나 지질시대로 3기 홍적세에 형성된 지층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그 시대에 인간이 대전에 살았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해 주는 현상이다.

기원전 1만년 경은 홍적세가 끝나고 충적세로 진입하는 시기이고, 세계적인 추세로 보면 구석기시대가 끝나고 중석기 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로 진입하는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6천년경 이전으로 소급된다. 신석기시대에는 인간의 거주가 주로 물과 관계있는 냇가나 강가, 호숫가, 바닷가에서 이루어졌는데 이례적으로 대전과 같은 내륙 지방에서 적지 않은 거주 흔적이 발견되어 주목된다. 둔산동의 유적은 신석기시대 후기(기원전2000∼1000)에 속하는 유적으로 농경과 고기잡이로 생활을 꾸려 나갔던 것을 알게 해준다. 문화 계통으로 보면 서해안 신석기 유적의 전통을 강하게 갖고 있으면서도 유물의 손잡이 꼭지라든가 일부 무늬 내는 솜씨를 보면 한반도의 동북계통과도 연관이 있어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돌칼

기원전 1000년경이 되면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무문토기문화가 시작된다. 이 무문토기 문화인들이 청동기를 사용하게 되어 청동기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청동기시대에 오면 좀 더 문화현상을 자세히 파악할 수 있다. 이 시기가 되면 대전지방에서는 전시대에 비하여 자료 가 훨씬 많아지고 그 내용도 풍부해져 비교적 자세히 그 문화양상을 알 수 있게 되는데,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집자리를 비롯해서 고인돌, 석관묘 유적이 있다.

괴정동 돌널무덤 출토 청동유물 및 청동검

대전지방의 청동기 유적으로는 둔산동 유적, 충남대 정문 서쪽의 궁동 유적, 괴정동(현 내동) 유적, 탄방동 세등선원 부지의 탄방동 유적, 유성구 원내동의 유적, 문화동 까치고개의 유적, 대청댐 수몰지역의 사성동 유적, 보문산 산정의 보문산 유적 등 그 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이 많은 유적 가운데 특히 괴정동(현 내동)의 청동기는 한반도에서 가장 빠른 단계의 한국식청동단검문화를 대표하는 유적이며 그 문화수준도 대단히 높은 단계이다. 이것은 충남지방, 나아가 대전지방이 청동기시대에는 청동기문화의 중심지 가운데 한 곳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청동기에 보이는 여러 현상은 이 단계의 문화가 요녕지방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므로 선사시대에 충남의 서해안과 요녕지방 사이에는 어느 정도 빈번한 교류가 있어 이 통로를 통해 청동기문화가 들어왔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팽이형 토기문화의 집자리도 발견되어 북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내려오는 문화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청동기시대와 백제시대를 잇는 초기철기시대의 유적으로 오정동과 구성동에서 원삼국시대 움집터, 송촌동과 대화동의 토광묘 유물 등이 발견되고 있으나 확실한 문화 양상은 앞으로 연구에 의하여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자료 : 최근묵(시사편찬위원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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