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기술포비아'와 '자본포비아'
최근 우버와 테슬라의 자율주행차 사고는 세계적 뉴스였다. 4차 산업혁명기의 대표적 신기술이라는 자율주행 차량이 행인과 운전자를 숨지게 하는 사고를 잇달아 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더구나 자율주행 자동차는 상용화가 눈앞에 다가온 시점이다.

두 건의 자율주행차 사고를 어떻게 볼 것인가. 다른 통계에서 답을 찾아보자. 지난해 서울에서 교통사고로 숨진 사람은 336명이었다. 1970년 이후 가장 적었지만 그래도 매일 1명꼴이다. 전국으로는 지난해 4185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차량성능, 안전의식, 도로품질에서 앞섰다는 일본에서도 1년에 약 4000명이 교통사고로 숨진다. 일본도 교통사고로 한 해에 1만6785명(1970년)까지 숨졌으나 기술 발달로 사고는 줄어들고 있다. 중국에서는 이 숫자가 하루 평균 300명에 달한다.

자율주행 사고… 'AI 공포증' 경계

다른 기술 사고처럼 자율주행차 사고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기다렸다는 듯, 태동하는 신기술에 규제부터 가하고 족쇄를 채워선 안 된다. 결점은 파고들되 오히려 개발을 더 지원해야 한다. 1986년 우주선 챌린저가 발사 직후 폭발로 승무원 전원이 희생됐지만, 미국의 우주 탐사는 계속됐다는 사실을 봐야 한다. 신기술은 저절로 축적되고 완성되는 게 아니라 시행착오를 거치기 마련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완성도를 높일수록 미래의 교통사고 사망자는 거의 제로(0)에 수렴할 것이다.

신기술에 대한 인식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은 어디서나 흔한 일이다. 경계할 것은 혁신적 새 기술이 주는 놀라운 편리와 풍요를 보면서도 드러내는 집단적 공포와 거부감이다. 2년 전 알파고가 이세돌을 꺾었을 때를 돌아보면 한국은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비관이 심한 사회다. 당시 인공지능(AI)이 세상을 지배하기라도 할 것처럼 겁을 주고 공포를 조장한 논평과 전망이 한둘이 아니었다. 탈(脫)원전 그룹의 주장도 따지고 보면 이런 심리에 닿아 있다.

공포 조장이나 신기술에 대한 과도한 견제는 늘 휴머니즘을 앞세워 나온다. ‘사람이 먼저다’ 식의 감성 구호로 인간과 인간이 창조한 기술을 억지로 구별하고 대립 구도를 만든다.

기술·자본 결합, 시너지로 경제발전

사고 때문에 자율주행차를 규제부터 하자는 논의가 나올까 겁난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못될망정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라도 돼야 살아남는다. ‘신기술포비아(phobia·공포증)’를 극복할 때 사회는 발전한다. “로봇이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비관적 전망이 수도 없었지만 엊그제 OECD 보고서를 보면 이것도 지나친 기우다. 미국 내 일자리의 47%가 20년 내 없어진다며 로봇세까지 주창됐지만 선진국에서조차 대체될 일자리는 14%에 그친다는 게 보고서의 요지다.

우리 사회에서는 기술포비아보다 더 걱정스러운 게 자본 거부증, 달리 말해 ‘자본포비아’다.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이 최근 사례로는 대표적이다. 청년 창업가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위해 전국 250곳을 개발한다면서도 민간자본은 굳이 배제하겠다는 의지가 정책의 기저에 깔려 있다. 축적된 부(富), 자본이 인재와 기술을 효율적으로 결합시켜 성과를 낸다는 사실도, 그게 경제발전이라는 점도 외면하고 있다.

자본 없는 신기술은 연구실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투자할 데 없는 자본은 환영하는 곳으로 유출될 것이다. 기술과 자본은 결합될 때 시너지효과를 낸다. 기술포비아와 자본포비아라는 콤플렉스를 떨치지 못하면 성장도 진보도 없다. 국제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고, 좋은 일자리 창출도 어렵다. 도시 재개발에서도 배제할 것은 자본이나 이익구조가 아니라 규제와 간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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