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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소유예와 실형

마석우 기자
입력 : 
2019-11-27 06:01:03
수정 : 
2019-11-27 07: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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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마석우 변호사의 법률 이야기-126] 동일한 성폭력 사안에 대해 하나는 기소유예의 선처를 받았고, 1심에서 실형 판결받은 것을 수임해 2심에서 갖은 노력을 기울였던 다른 건은 실형 판결이 유지되고 말았다. 동일한 죄명일지라도 양형이야 사안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맞긴 맞는다. 그러나 기소유예와 실형은 하늘과 땅 차이다. 기소유예는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을 살펴 기소하지 않겠다는 검사의 처분이고, 실형은 성폭력 범죄를 저질렀다는 공소 내용을 인정하고 징역형을 선고하면서 집행유예라는 단서를 붙이지 않아 그야말로 교도소에서 징역형을 그대로 살아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이다. 신상정보 등록이나 취업 제한과 같은 불이익까지 부과되고 성폭력 전과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된다.

이런 차이를 갖게 된 결정적 차이는 피해자와 합의 유무였다.

첫 번째 사건이나 두 번째 사건이나 '강'자 계통의 가장 형이 무거운 성폭력범죄라는 공통점이 있었으나 하나는 수사 단계에서 합의가 되었고 다른 하나는 2심 판결 선고 시까지도 피해자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첫 번째 사건도 애초에 합의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지만 피의자와 부모들 노력에 더하여 여러 상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거의 합의금도 치르지 않고 합의가 이루어졌다. 경찰 수사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조사를 원하는 부분을 지적하며 추가 진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요청을 했고, 범행 당일에 무작정 부인했던 조서를 있는 그대로의 내용대로 변경할 수 있었다. 최초 조사 시에 전면 부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도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는 사정을 밝혔음은 물론이다. 죄명이야 무시무시했지만 다행히 사건 내용이 큰 것은 아닌 데다 우발적인 측면도 큰 범행이어서였는지 다행히 피해자와 관계도 수사 과정에서 회복되었다. 피해 여성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해줘서 피의자가 식사를 같이 하며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오해했던 부분은 풀 수가 있었다. 천운이 아닐 수 없었다.

예상보다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최근에 교육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가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은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아 법정 구속된 상태에서 사건을 맡아 2심 재판 과정에 관여한 사건이다. 경찰과 검찰 수사 과정에서는 물론이고 1심에서도 계속해서 공소사실을 부인하였는데 피해자 진술이나 증언을 채택하고 피고인 주장을 배척함으로써 실형까지 받게 되었다. 1심에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청하여 증언을 받는 과정에서 피해자에게 추가적인 피해가 발생하였던 듯싶다. 피해자는 피해자 국선 변호사를 통해 피고인에 대한 처벌 의사를 강력히 요구하는 서면까지 제출했다.

피고인 부모들은 1심 결과가 나오고 겨우 이 사건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부모 모두가 2심에서 동일하게 공소사실을 부인할 수 없고 오로지 방향은 '피고인의 진지한 반성'과 '피해자와 합의'에 있음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피고인의 진정성 있는 반성문, 피고인 가족들과 그 주변 사람들의 탄원서, 1심에서 소홀했던 정상 관계 자료를 착실히 준비하여 재판부에 제출하였다.

이와 병행하여 피해자와 합의 절차를 진행하였다. 피해자와 직접 접촉하는 것은 금물이고, 피고인이 반성하는 마음과 용서를 구하는 간절한 마음을 전달하는 유일한 통로는 오로지 피해자 국선 변호사라는 창구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구치소에 있는 피고인을 대신하여 피고인 부모가 직접 변호사를 면담하며 합의 의사를 전달해 달라고 간청하기도 하고, 변호인인 나도 두 차례 찾아가기도 했다.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들 서신을 피해자 국선 변호사를 통해 전달하기도 했지만 변호사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가 합의할 의사가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공판기일에 그간 피고인 태도 변화와 피해자에게 용서를 구하기 위한 과정을 소상히 밝혔고 피고인은 후회와 반성의 마음을 눈물로 호소하고 선고기일을 받았다. 선고기일까지 계속해서 합의를 모색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한 채 선고 당일이 되었다. 그런데 재판부에서는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한 달간 추가로 합의하는 데 필요한 기간을 주겠다고 하면서 선고기일을 연기해 주었다. 이것이 한 달 전 일이다.

지난 한 달간 피고인과 그 가족들의 노력이 참으로 눈물겨웠다. 피해자와 직접 연락하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한 상태에서 피해자 국선 변화사와 연락하는 것 역시 너무 연락을 하면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하며 때로는 찾아가 보기도 하고 때로는 문자나 서신을 통해 간절한 마음을 전달했다. 1주에 1주가 지나고 다시 지정된 선고기일에 가까워 오며 통화할 때 피고인 부의 목소리 속에 떨림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합의서와 처벌불원서를 준비할 수 없었고 마침내 다가온 선고기일엔 "피고인의 항소를 기각한다"는 게 법원의 답변이었다.

[마석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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