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왜 배란을 몰래 할까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한겨레21] [책으로 배운 생물학, 몸으로 겪은 생물학]동네방네 소문내는 동식물과 달리 언제 하는지 알 수 없이 난자 배출하는 인간

언제 배란이 됐는지를 잘 알지 못하는 인간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사진은 임신테스트기. 김진수 기자
한때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지금은 더욱 그렇지만, 벌써 그때부터 학문으로서의 생물학은 직접 자연에 나가 생명체를 마주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실 의자에 앉아 두껍고 빽빽한 전공서적과 교수님의 강의 위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바닷가 마을에서 뛰어놀며 바위에 붙은 굴을 따고 물을 채운 논에서 개구리알을 주워서 올챙이로 키우던 어린 시절보다 오히려 생물 그 자체에선 멀어졌지요. 그 과정에서 내 몸에 대해서도 직접 몸으로 배우는 것보다 먼저 글로 더 많이 배웠습니다.

제가 교과서 속에서 배운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그렇게 살려낸 목숨을 후손을 남기는 데 아낌없이 내던지는 존재였습니다. 그건 때론 처절하고, 때론 숭고했지만, 태곳적 이래 이 지구상에서 수없이 반복돼온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대개의 생명체는 어떠한 망설임이나 후회 없이 짝을 짓고 새끼를 낳고 키우는 일을 반복했고, 더는 출산과 양육을 할 수 없게 된 이후에는 마치 무대에서 역할이 끝난 연극배우처럼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그걸 보며 막연한 미래를 떠올렸던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는 내게도 생물학적 재생산을 수행할 순간이 오겠지, 누군가와 짝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키우겠지. 다른 생명체들도 다 하는 일인데, 나도 그냥 하게 되겠지’라고 말이죠.

‘결혼해 잘 살았습니다’의 한 줄 뒤



그러나 대개 현실은 생각보다 지난하고 자질구레한 법입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는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한 줄짜리 문장 안에 얼마나 많은 지루한 반복과 귀찮은 잡일과 생각지 않은 우연과 생각지 못했던 상황이 씨줄과 날줄로 엮이는지는, 겪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종류의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결혼하면 저절로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지만, 그것부터 내 맘대로 되지 않더군요. 아이를 갖기 위해 수년의 시간과 엄청난 비용과 무거운 편견과 도구적 경험을 골고루 겪어야 했지요. 결국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서야 겨우 아이를 품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처절하게 배웠던 건 ‘자연적 속성’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지입니다. 모성과 부성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었고, 육아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과정이었으며, 아이를 향한 애정과 부부간의 믿음은 함께 부대끼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쌓아올리는 벽돌집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요.

저는 생물학을 전공했고, 연구원으로 일했으며, 지금은 쌍둥이 아이를 비롯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20대에 결혼하고, 30대에 아이를 낳고, 40대에는 그 아이들을 키우며 교과서와 논문에서 알려주지 않던 것들, 심지어 미리 겪어낸 이들조차 알려주지 않던 수많은 심각하면서도 사소한 사항들, 필요하면서도 구차한 경험을 매 순간 마주쳐야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몸에 관한 이야기가 그런 면이 없잖아 있습니다. 누구나 먹고 자고 배설하고 성적 욕구를 해소하지만, 이런 행위는 때와 장소와 상황과 사람을 가려야 하고, 후자 쪽으로 갈수록 사적인 공간에서 타인에게 내보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매일 겪으면서도 모두가 서툴게 시작하고, 다들 안다고 생각해 서로 오해하는 상황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몰랐던, 모르고 있었지만 다들 알고 있던 그런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로맨틱 드라마가 치정물로 변하는 순간



30대 후반의 전문직 여성이 있습니다, 일이 너무 바빠 몸의 변화를 미처 알아채지 못한. 달력을 보던 그녀는 문득 뭔가를 놓친 기분이 들었고 곧 그게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그런 그녀의 눈에 임신테스트기의 두 줄이 들어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란 것도 잠시, 곧 그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현실을 받아들입니다. 그녀의 연인 역시 약간의 고민 끝에(둘은 사귄 지 얼마 안 된 사이였거든요) 진심으로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기뻐하며 기꺼이 훌륭한 아빠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임신을 확인했음에도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가는 걸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죠. 사실 그녀는 오래전 아이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의 아기는 심각한 이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태어나도 살릴 수 없다는 판정을 받았죠. 임신 중 아이에게 치명적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저 임신을 중단할 것인지, 임신을 그대로 유지한 뒤 출산하고 보내줄 것인지 정도밖에는요. 그래서 그녀는 초음파 검사를 망설였던 겁니다. 그런 불행이 되풀이될 확률은 아주아주 낮지만, 다시 한번 그런 일을 겪으면 그땐 정말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요.

미루고 미루다 친구 손에 끌려 임신 중기가 넘어서야 검사를 받으러 간 그녀는 산부인과 의사에게서 뜻밖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이는 매우 건강하지만, 태아의 발달 정도로 보건대 그녀가 생각하는 임신 주수보다 몇 주 먼저 임신한 게 확실하다는 것이었죠. 이건 다른 의미로 그녀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단지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출산휴가를 신청해야 하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녀 옆에 있는 다정한 연인이, 아이의 아빠라고 생각했던 그는, 그 몇 주 전에는 연인이 아니었거든요!

로맨틱 드라마로 시작했다가 막장 치정물로 이어지는 전개에 놀라셨나요? 사실 이 스토리는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 나온 최근 에피소드입니다. 시즌이 진행 중이라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지만, 이 드라마에서 그녀가 난감한 상황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그녀는 자신이 임신한 날짜를 착각했을까요? 평소 그녀의 월경 주기는 매우 불규칙해서 한두 달 정도 건너뛰는 것은 예사였기에 정확한 가임 기간을 잘 알지 못했고, 이에 따라 피임에 소홀했던 것이 1차적 문제였죠. 하지만 그녀를 위해 약간의 변명을 보태자면 애초부터 인간 여성은 자신의 가임 기간을 스스로 감지하기 어려울 만큼 배란이 소리 소문 없이 일어난다는 것도 한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기를 쓰고 드러내거나 스스로도 모르거나



대부분의 생명체는 가임 시기를 숨기고 감추기는커녕 암수를 막론하고 대놓고 드러내곤 합니다. 발정기에 들어선 고양이는 아기 울음소리를 닮은 날카로운 소리를 내고, 매미는 귀청이 떨어질 만큼 큰 소리로 필사적으로 배를 울려댑니다. 수컷 가시고기는 알록달록한 혼인색으로 온몸을 물들이고 부지런히 둥지를 지으며, 실험실에서 키우던 생쥐 암컷은 발정기가 되면 생식기 주변이 불그스름하게 부풀어오르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요. 수컷 코끼리는 기름기 섞인 분비액을 얼굴에 발라 자신의 상태를 과시하고, 암컷 누에나방은 봄비콜이라는 페로몬을 분비해 자신의 존재감을 공기 중으로 알립니다. 자신의 몸으로 발산하는 신호만으로는 부족한지 자신이 번식 가능하다는 냄새가 나는 소변이나 분비액을 되도록 이곳저곳에 흩뿌리고 다니는 동물도 부기지수입니다. 그야말로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셈이죠.

식물도 이에 못지않습니다. 이들은 소리를 내지 못하는 대신 빛깔도 모양도 향기도 다양한 꽃을 피워내고 자신이 번식할 수 있음을 드러내며 벌과 나비를 불러들입니다. 유성생식을 하는 생명체의 경우 번식기가 아니라면 교미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많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애쓰는 거죠.

그러나 사람은 좀 다릅니다. 사람은 정해진 번식기가 없기에 일단 성적 성숙이 일어난 뒤에는 아무 때나 생물학적 재생산을 할 수 있습니다. 늘 재생산이 가능한 남성과는 달리, 여성의 가임 기간은 상대적으로 매우 짧고, 정해져 있습니다. 게다가 남성은 자신의 의지로 제어하거나 조절해 정자를 배출할 수 있지만, 여성은 자연적인 방법만으로는 난자를 원하는 시기에 배출할 수도 없고, 심지어 언제 자기 몸에서 배란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첫머리에서 언급한 그녀의 난감한 상황은 애초 여기서부터 시작한, 매우 근본적인 문제였던 것이죠.

생물의 본능은 개체가 생존을 위해 애쓰고, 번식을 위해 노력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체는 생존 본능을 보입니다. 일단 살아 있어야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생식세포는 개체 내에서 이중적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식세포가 있건 없건 제대로 기능하건 아니건 간에 개체의 생존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습니다. 하지만 생식세포가 없거나 기능하지 못한다면 후손을 남길 수 없지요. 그런데 후손을 남기는 행위 자체는 개체의 생존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때로는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기도 합니다. 애초에 번식이란 게 생존에 필요한 자원과 에너지를 후손에게 나눠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밍크는 교미해야 배란을 하는 ‘깐깐한’ 녀석이다. 국립환경과학원 제공


탐정의 심정으로 알아내야 하는 배란기



여기서 생명체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내 것이 너무 아까워서 몸을 사리면, 개체는 죽고 그 안에 담긴 유전자도 고스란히 사라져버립니다. 그렇다고 후손에게 모든 걸 퍼주는 것도 능사는 아닙니다. 때로 갓난새끼는 단지 태어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미가 품어주고 아비가 거둬 먹여야만 생존하기에, 부모가 일찍 죽어버리면 이들도 살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명체는 이 딜레마를 명확한 번식기를 가지고, 이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번식하는 행태를 반복해 생존과 번식의 균형을 맞추곤 합니다. 심지어 토끼나 고양이, 밍크 같은 동물은 번식기에 들어섰더라도 실제 교미하지 않으면 난자가 아예 배출되지 않기도 합니다. 이를 ‘충격 배란’이라고 하는데, 애초 교미하지 않으면 임신이 불가능하기에 난자조차 내놓기를 허용치 않을 정도로 깐깐하게 구는 셈이죠.

그런데 인간 여성의 몸은 어찌 된 일인지, 연간 난자 10~20개를 배출하면서도 언제 나오는지 확실히 알려주지도 않는 매우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진화론적으로 다양한 이유가 제시됐지만 이유를 안다고 정착된 생체 시스템이 바뀌지는 않지요. 다시 말해 안다고 별 뾰족한 변화를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교과서에서는 여성이 배란기를 중심으로 기초체온이 올라가고 배란통이 있고 질 분비물, 피부와 가슴 등 신체의 변화와 성적 욕구 증가 등 심리적 변화를 겪기에 추정은 가능하다고 나옵니다. 하지만 막상 겪어보면 기초체온 상승은 변화가 너무 미묘하고(0.5℃ 내외), 배란통을 겪는 여성은 4분의 1에 불과하며(게다가 다른 종류의 복통과 구별하기도 쉽지 않음), 질 분비물의 변화는 워낙 다양한 변수가 있고, 피부와 가슴의 변화를 자각하는 것은 이미 배란이 지난 뒤인 경우가 많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신호가 애매하고 불확실해, 가능성 있는 ‘징조’일 뿐 확실한 ‘증거’로서의 기능은 떨어지지요. 배란기에 증가하는 여성호르몬을 소변으로 검출하는 배란 테스트기가 있지만, 이것도 매일매일 검사해서 오늘이 배란일인지 아닌지를 알려줄 뿐, 언제쯤 배란이 될지 예측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진화적 설명이 현재의 나를 설명할까



수렵과 채집을 하던 시절에는 배란이 숨겨져 있는 것이 인류라는 종의 존속에 어떻게든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가 살아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올 수 없었겠지요. 하지만 여성의 배란이 숨겨진 것에는 진화적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진화적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지금 현재 살아가는 ‘나’라는 존재의 피임에도 임신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진화해온 내 몸과 조상을 탓해서 무슨 상관이 있겠어요. 그러니 임신을 원한다면 배란 테스트기를 매일 사용해서 검사하는 것이 좋고, 원하지 않는다면 아예 배란이 되지 않도록 월경에 관련된 호르몬을 조절하는 경구용 피임약을 먹는 것이 가장 간편하고 효과도 확실합니다. 또한 아빠가 되길 원하는 남성이라면 그녀의 신호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럴 마음이 없다면 피임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것이 좋겠죠. 현대는 DNA 검사로 친자를 확인하는 것이 보편화됐기에 무조건 일이 커진 뒤 잡아뗀다고 능사는 아닐 테니까요.

이은희 과학 커뮤니케이터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후원 하기]
[▶정기구독 신청]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