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사려고 줄서기 2시간, 이러다 감염될까 겁났다" [마스크 구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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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1. 오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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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전 청주시 청원구 하나로마트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삼일절 오전 9시, 휴일치고는 이른 시간에 아내가 농협에 간다며 집을 나섭니다. 찬거리 몇 가지를 구입하고, ‘공적 마스크’ 판매 물량과 시간도 알아볼 요량이었다고 합니다.

농협에 도착한 아내는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인 ‘농협몰’ 등에서 공적 마스크를 이날 오후 2시부터 판매한다고 공지했는데, 아내가 찾은 제 주변 농협은 오전 11시부터 판매를 시작한다고 안내했기 때문입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늘 많은 사람을 만나는지라 아내도 마스크가 필요해 부랴부랴 줄을 섰다고 합니다. 9시30분쯤부터 줄에 합류했는데, 이미 아내 앞에는 먼저 온 시민들이 100명가량 있었다고 합니다. 대략 판매 2시간 전부터 줄을 선 것이지요.

9시50분쯤,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얼떨결에 줄을 서게 됐는데, 좀 쌀쌀하니 패딩을 가져다 달라는 겁니다. 옷을 들고 집에서 나간 시간은 9시55분, 아내에게 옷을 건넨 뒤 저도 마스크가 필요해 후미로 가 줄을 섰습니다. 오전 10시였습니다.

20분쯤 지나자 제 뒤로도 100명 가량 줄을 선 게 보였습니다. 마스크 판매대에서 제 위치까지 대략 100m, 제 뒤쪽으로도 100m쯤 줄이 이어진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날 제 거주지인 경기도 모지역 농협에서는 마스크 3개가 포장된 것 600매, 1개가 들어있는 제품 700매를 판매했습니다. 1인당 3개 든 제품은 2매, 1개가 든 제품은 5매를 판매했으니 모두 440명이 마스크를 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줄을 서있는 동안 과연 저한테도 마스크가 돌아올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뒷줄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불안했던지 자리를 부탁하고는 자기 순서가 몇번째인지 확인하고 오더군요. 그 아주머니는 자신은 구입할 수 있는 순번이 된다며 안심하는 눈치였습니다. 그 아주머니 보다 앞인 제게도 마스크가 돌아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스크 판매는 오전 11시부터 시작됐는데, 저는 11시40분쯤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10시부터 줄을 서서 1시간40분 만에 마스크 6장을 살 수 있었던 거죠.

마스크 판매는 농협 내부가 아닌 현관에 주차한 봉고차 적재함에서 이뤄졌습니다. 7명 안팎의 농협 직원이 근무했는데, 현금과 카드를 모두 받았습니다. 직원이 잔돈을 미리 준비해 현금으로 계산하면 돈을 낸 뒤 10초쯤 뒤면 마스크를 손에 쥐게 됩니다. 카드를 이용해도 카드 리더기 조작을 거치면 30초쯤 이면 구매가 가능했습니다.

판매하는 농협 직원들은 친절했고, 시민들도 큰 동요없이 차분히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2시간 정도 서있으면서 마스크 판매와 관련해 공적 판매처나 우리 시민들이 고치거나 지양해야 할 것들 몇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첫째는 정확한 판매 시간을 정부나 지자체, 농협 등 공적 판매처에서 발표해야 합니다. 또 공적 판매처는 공지한 시간에 정확히 판매를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농협몰과 일부 뉴스를 철석같이 믿은 분들은 제 거주지 주변 농협에서는 이날 마스크를 못샀을 테니까요. 저도 우연히 아내가 찬거리 장만하러 농협에 들른 덕분에 마스크를 손에 넣었고요.

줄을 섰음에도 순번이 돌아오지 않아 마스크를 사지 못한 한 50대 남성은 왜 오후 2시부터 판매한다고 발표하고는 오전 11시부터 개시했느냐고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제가 선 줄의 후미 50명 가량은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1일 오전 청주시 청원구 하나로마트에 시민들이 마스크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오후 1시부터 판매한다고 안내돼있다. 연합뉴스

둘째는 일부 시민들의 ‘비매너’가 조금은 거슬렸습니다. 가족 한 명이 먼저 줄을 서고는 30분~40분 뒤에 다른 가족 두세 명이 와서 앞에 있는 가족에 합류하는 사례가 꽤 있었습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당신의 순서가 150번째였는데, 170번째 언저리로 밀렸다고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일부 시민들의 태도도 아쉬웠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침이 튀면서 다른 사람에 전파되는데, 서있는 내내 주변 사람에게 말을 거는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마스크를 벗고 큰 소리로 앞에 있는 지인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려 마스크를 사려는데, 마스크 사다 감염될 수도 있겠다는 걱정도 솔직히 약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라도 마스크를 쓰고 말을 하면 침이 튀지 않아 주변 사람에 대한 감염 가능성은 낮을 것입니다. 하지만 감염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 상황인 만큼 마스크를 벗고 떠들거나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는 태도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무엇보다 충분한 마스크 물량을 정부가 책임지고 확보해 조속히 시민들에게 공급해야 하겠습니다. 줄을 서고도 마스크를 구입하지 못해 돌아가는 시민들의 허탈한 모습은 오늘 이후로는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김준 선임기자 j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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