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그리던 예쁜 손녀를 오래 안아보지도 못하고 가신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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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형(1939∼2017)

저는 위로 누나와 형이 있는 2남 1녀 중 막내입니다. 누나는 형과 두 살 터울이고 형과 저는 연년생이라 부모님께서 저희 3남매를 키울 때 얼마나 힘들고 고생이 많으셨을지 감히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중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교직을 천직으로 아시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명감으로 일평생을 사셨지요.

아버지와 함께했던 시간은 유년시절의 기억과 특히 초등학교 시절의 추억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일곱 살 때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사주시고 그땐 도로에 자동차도 얼마 다니지 않던 시절이라 동네 찻길에서 온 가족이 자전거 배우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또 겨울이면 저희 3남매를 데리고 양지마을 스케이트장에 데리고 가셨지요. 비닐하우스로 만든 스케이트장에서 신나게 스케이트를 타고 나서 아버지가 사주신 떡볶이는 얼마나 맛있었는지 아직도 그때 그 식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제가 해달라고 한 웬만한 건 다 해주셨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철없이 용돈 적게 준다고 아버지를 원망하고 미워했던 저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인가 온 나라가 큰 홍수로 물난리 났을 때 형이랑 제가 멋모르고 아버지 허락도 없이 동네에 놀러 나갔다가 물에 빠져서 아버지를 걱정시켜드리고 형과 함께 크게 야단맞았던 기억도 납니다. 그땐 그렇게까지 화를 내시는 아버지가 어린 마음에 못내 서운했지만 금쪽같은 두 형제가 그 난리 통에 말도 없이 나갔다 큰일을 당할 뻔했으니 얼마나 걱정돼서 그러셨는지 자식을 낳고 지금에 와서야 그때 아버지의 심정이 이해가 됩니다.

아버지를 모시고 마지막으로 함께 갔었던 영종도 가족여행에서는 회를 드시고 그 맛을 그리 좋아하시며 잊지 못하셨던 아버지. 다시 한 번 모시고 가고 싶었는데 그것 하나 해드리지 못한 게 못내 마음이 아픕니다. 고관절 수술을 한 후 결국 못 일어나시고 요양병원에 계실 때 더 자주 찾아뵙고 더 가까이서 보살펴드렸어야 했는데 그것 또한 정말 후회스럽습니다. 정의로우면서 모질지 못한 성격으로 가끔 주변 사람들의 유혹에 휩쓸려 선의로 도와주다가 어머니를 힘들게 한 적도 종종 있으셨지만 전 그것 또한 가깝고 어려운 사람들을 쉽게 외면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선하신 성품 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3남매 중 유독 모든 면에서 아버지를 많이 닮아서 그런지 돌아가시고 나니 더욱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납니다. 아버지의 좋은 면을 더 많이 닮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병원에 계시면서는 제가 어렵게 가진 손녀딸 한번 마음 편히 안아보지 못하셨죠. 지금 여섯 살인 제 딸이 이다음에 크거든 딸 기억 속엔 없겠지만 너의 할아버지는 정말 멋지고 훌륭하신 분이셨다고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제 딸 은빈이가 결혼할 때까지만, 아니 더도 말고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만이라도 살아계셨으면 했는데, 무엇이 그리도 급하셔서 자식들한테 제대로 된 효도도 한번 못 받아 보시고 이리 일찍 먼 길을 떠나셨습니까?

아버지 성격이 원래 그리 살갑진 않으셨지만, 그 깊은 마음속엔 자식 사랑이 남다르셨다는 걸 제 나이 50이 다 돼가는 지금에 와서야 깊이 깨닫고 후회가 됩니다. 이제라도 철이 드니 마음이 좀 놓이시는지요?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더 잘돼서 아버지가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그 약속 지켜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이제 곧 아버지의 기일입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저희 가족을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래도 매년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면 항상 제가 먼저 가족들한테 아버지 뵈러 가자고 얘기합니다. 앞으로 어머니 잘 보필하고 살게요. 부디 좋은 곳에서 아무 걱정 마시고 편히 쉬세요.



막내아들 조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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