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맨 레스토랑] 서울식 육수불고기 원조 `한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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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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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세월이 우려낸 육수에 쫄깃한 불고기



야들야들하고 뜨끈한 소불고기가 몸속 한기를 밀어낸다. 고기를 품은 육수는 담백하고 깊은 맛을 낸다. 1939년 설립된 '한일관'은 서울식 육수 불고기의 역사다. 1960년대 소고기를 얇게 저미는 슬라이스 기계를 일본에서 도입해 부드럽고 쫄깃한 불고기를 처음 판매했다.

불고기 양념은 자극적이지 않고 은근한 단맛이 난다. 설탕을 적게 넣고 사과와 배, 키위를 많이 사용한 덕분이다. 과일에 간장, 대파, 양파, 마늘, 생강 등을 넣고 팔팔 끓여 간장 특유 냄새를 없애 깔끔하다. 소고기 양지와 사태, 홍두깨살을 2시간 정도 우려낸 고기 육수는 잡내가 없고 구수하다. 또 다른 별미인 갈비탕은 고기 육수와 사골 육수를 반반 섞는다. 사골 육수는 12시간 물과 사골만 넣어 끓여낸다. 냉면은 고기 육수에 미량의 사골 육수를 배합한다.

육수의 농도는 78년 동안 축적한 비법이다. 그 맛의 역사를 시작한 한일관 창업주는 고 신우경 여사. 일제강점기에 서울 종로에 '화선옥'이라는 간판으로 식당 문을 열었다. 소고기가 귀했던 시절이어서 장국밥과 소 내장 양념구이로 손맛을 널리 알렸다. 1945년 광복 후 소고기 유통이 자유로워져 직화 소 양념구이 '궁불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지자 식당을 피란지 부산으로 옮겼으며 서울 수복 후 1957년 종로에 3층 규모 한식당을 열었다. 신 여사는 직원 박영태 씨와 한일관만의 풍로와 불고기판을 개발해 '육수불고기'를 팔기 시작했다. 여기에 냉면과 만두, 당면, 계란 등을 넣어 다양한 불고기 맛을 창조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던 맛에 식당은 늘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일관 불고기 인기는 조정래 소설 '한강'에서도 실감할 수 있다. "하이고, 반찬 참 많네. 한일관 불고기나 한번 배터지게 묵고 죽으면 내사 마 소원이 없겄다."

신 여사가 세상을 떠나자 장녀 길순정 씨가 대물림했으며 지금은 그의 딸 김은숙·김이숙 자매가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다. 한일관 육수 불고기 맛은 78년 동안 지켜온 전통과 장인 정신, 오랫동안 거래해온 믿을 만한 식자재 공급업체 등을 꼽을 수 있다.


우선 긴 세월 동고동락한 직원들의 손맛이 단골 고객들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 반찬 조리사 이경자 명예부장(77)은 1960년대 입사해 맛깔나고 다채로운 밑반찬을 조리해온 달인이다. 고문 김동월 씨(71), 관리부 최용환·김택수 씨 역시 1960년대부터 한일관을 지키고 있다. 육부장(육류 조달 부장) 조명수 씨, 곽명훈 전 조리실장 역시 오랜 세월 한일관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재준 조리부 실장(44)은 1999년 입사했으며, 이계순 지배인(54)은 1997년부터 한일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들이 장인 정신으로 만드는 육수 불고기는 국내산 육우 등심을 사용한다. 20년 가까이 거래해온 서울 마장동 육류 도매업체는 경기도와 강원도 산지를 다니면서 직접 구매한 소고기를 공급해준다. 야채와 참기름, 과일도 오랜 세월 신뢰를 쌓아 믿을 만한 거래처에서 제공받는다.

한일관의 매력은 맛이 뛰어나지만 그리 비싸지 않다는 데 있다. 점심 코스 메뉴는 2만9000원이다. '새 상차림'은 계절죽, 녹두빈대떡과 해물파전, 한일관 특선요리(낙지볶음, 황태구이, 구절판 중 택일), 전통 갈비 구이 한 대, 식사(우거지탕, 육개장, 버섯들깨탕, 된장찌개, 골동반, 만두탕, 냉면 중 택일)로 구성된다. '한일관 불고기 상차림'은 계절죽과 계절 샐러드, 녹두빈대떡과 해물파전, 등심불고기구이와 황태구이, 식사로 구성된다. 등심 불고기 1인분(200g)은 2만9000원, 전통 갈비 두 대(250~300g)는 3만7000원, 특선 한우 생등심(150g)과 묵은지는 4만3000원이다.

맛과 가격이 좋아 압구정 본점(360석)의 경우 하루 매출 5000만원을 올리기도 한다. 본점은 종로 피맛골 재개발로 2009년 압구정동으로 옮겼다.

부정청탁방지법(김영란법)의 타격을 받지 않고 1년 내내 성수기를 누리는 한일관의 자산은 단골 고객이다. 고 이승만·박정희·노무현 전 대통령, 이명박 전 대통령,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등이 있다. 정 명예회장은 휠체어를 타고 이북식 평양 냉면과 육수 불고기를 먹으러 왔으며 그 아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손자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자주 찾는다. 그들처럼 어릴 때 부모 손을 잡고 왔던 손님이 훗날 결혼 후 자녀를 데리고 오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손님이 늘 북적이는 덕분에 한일관은 압구정 본점을 비롯해 영등포 타임스퀘어점, 을지로 페럼타워, 경복궁 kTT, 서울역 연세빌딩, 하남스타필드 등 5개 지점으로 뻗어나갔다.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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