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어붙은 소비 심리…연초 경제위축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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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2. 오전 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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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공포…시장 삼키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경제 전망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월10일 오후 서울 명동거리가 한산하다. 중국 관광객의 발길이 줄어든 여파가 크다. 연합뉴스


공포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그것은 보통 두 개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집값이 오르면 더 많은 사람이 부동산에 투자한다. 지금 집을 사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다. 그러면 집값은 더 뛴다. 공포가 시장 과열을 부르는 경우다.

‘코로나19’는 반대다. 지난해 말 중국에서 발생한 이 신종 호흡기 감염 질환에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공장과 백화점, 상가가 문을 닫고 사람들은 외출을 꺼린다. 전염병 확산 공포가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키고 시장을 침체에 빠뜨리는 것이다.

전망이 틀렸다…전염병 중국 밖 확산

처음에 시장은 자신만만했다. 국내·외 금융기관은 코로나19가 경제에 단기 충격을 미치는 데 그칠 것으로 봤다. 2003년 발생한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가 근거다. 증권사들은 국내에서 첫 확진자가 나온 1월20일 이후 낸 보고서에서 “지금을 주식 저가 매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처럼 증시가 잠깐 주춤했다가 이내 회복하리라는 기대감에서다.

실제로 그럴 것 같았다. 국내 코스피 지수는 1월20일 2261포인트에서 2월4일 2121포인트로 저점을 다지고 곧 2200선을 회복했다. 코스닥 지수는 2월18일 691포인트를 기록하며 지난해 7월8일(692포인트) 뒤 7개월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미국 다우 지수는 중국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이전인 지난해 12월 2만8000포인트 선에 머무르다가 올해 2만9000포인트를 넘어섰다. 신동준 KB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전염병 확산 속도가 느려지며 시장도 최악 상황이 지났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악재를 가장 먼저 반영한다는 금융시장 예상은 빗나갔다. 중국 밖에서 바이러스 확산이 멈추지 않아서다.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2월24일 현재 763명으로 사스(3명), 메르스(186명) 당시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전염력이 강한 데다 한 종교 단체의 은밀한 종교 행사와 집단 전염이 확진자 증가의 기폭제가 됐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를 가리켜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가 아는 것을 무력화시켰다”고 했다. 중국을 포함한 전세계 확진자는 사스(8096명), 메르스(2499명) 때보다 수십 배 많은 8만 명(2월 24일 기준)에 육박한다. 글로벌 금융시장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커진 주식 대신 뒤늦게 국채, 달러 같은 안전한 자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수출·내수에도 타격 불가피

실물 경제에도 충격이 불가피해졌다. 한국은 수출과 내수가 안팎으로 타격을 받는다.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은 더는 ‘예전의 중국’이 아니다. ‘세계의 공장’이자 글로벌 소비 시장의 ‘큰 손’으로 성장했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사스가 발생한 2003년 4.3%에서 지난해 16.3%로 팽창했다.

예를 들어 국내 기업이 완제품을 만들기 위해 외국에서 수입하는 중간재 3분의1을 중국에서 생산한다. 중국 공장이 조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자 현대차와 기아차, 쌍용차, 르노삼성, 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업체가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것은 이런 협업 구조 때문이다.

반대로 우리나라가 외국으로 수출하는 중간재의 28%도 중국으로 가는 물량이다. 인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 공장에서 완성품을 조립하고 미국 등 주요 소비국으로 다시 수출하는 구조다. 화장품·옷 같은 소비재도 중국 소비자가 한국 수출 물량의 9%를 사준다. 중국에서 생산과 소비가 둔화하면 우리 수출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내수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3명 중 1명이 중국인이다.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쓰는 돈은 다른 외국인보다 1.4배나 많다. 서울 명동과 제주도 등 주요 관광지를 찾는 중국인이 줄면서 지역 상인은 물론 면세점, 영세 여행업체, 중소 항공사 등이 울상짓는 이유다.

불안과 혼란을 부추기는 ‘인포데믹(정보 전염병)’은 국내 거주자의 일상 경제 활동까지 위축시키고 있다. 인포데믹은 정보와 전염병을 합친 말로 허위정보와 가짜 뉴스가 전염병처럼 빠른 속도로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언론 보도뿐 아니라 진위를 알 수 없는 각종 정보가 소셜미디어를 타고 확산하면서 마치 ‘팬데믹’(세계적인 질병 대유행)이 온 것 같은 공포와 내수 소비 위축을 초래하는 것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유튜브 등 인터넷과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너무 많은 정보가 여과 없이 빠르게 유통되다 보니 사람들 불안감도 과거 메르스 사태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커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만으로 대형할인점과 백화점·영화관 등이 전면 휴업에 들어가는 것은 과거엔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온라인 쇼핑과 배달업 성행도 두려움이 만들어낸 풍경이다.

2월11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 소하리 기아자동차 공장이 한산하다. 기아차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산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겨 일부 공장 가동을 일시 중단했다. 연합뉴스


확진자 낙인 대신 사회적 신뢰 유지 필요

정부는 2월23일 감염병 위기 경보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높였다. 감염병 경보를 심각 단계로 격상한 것은 2009년 신종플루 사태 뒤 11년 만이다. 신종플루는 국내 감염자 수가 약 70만 명으로 코로나19보다 훨씬 많았다. 하지만 치사율이 낮고 당시엔 무엇보다 ‘타미플루’ 같은 백신과 치료제가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는 예방 단계를 지나 지역 사회의 대처와 사후 처리를 준비해야 하는 단계로 넘어갔다. 경제의 측면에서는 감염병이 가져올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금융기관은 올해 한국 경제 성장률이 2%에도 못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9년(0.8%) 이후 11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리라는 것이다. 성장률 하락은 일자리·소득이 감소하고 경제의 풍요로움이 후퇴한다는 의미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는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각각 1.9%, 1.6%로 하향 조정했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올해 성장 전망(2.3~2.4%)에서 새롭게 제시된 전망치를 뺀 수치가 지금 계산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경제적 손실이다.

연초 한국 경제의 마이너스(-) 성장은 기정사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4분기(10~12월)에는 직전 분기보다 1.2% 증가했던 생산과 소득이 뒷걸음질하리라는 것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우리 경제가 많이 가라앉아있는 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외부 충격이 오면 그 강도가 훨씬 강하게 느껴질 수 있다”며 “정부가 전염병 확산을 철저하게 통제하면서 중국과의 교류 둔화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국내 영세 자영업자를 재정 등을 통해 직접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규모 전염병은 경제에 단기 충격을 미치는 것을 넘어 중장기적으로 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후유증 때문이다. 1918년 발생해 세계 인구의 3% 이상이 목숨을 잃은 스페인 독감이 대표적인 사례다. 경제 학계 연구를 보면 당시 스웨덴에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중장기적으로 자본 소득이 10% 감소하고, 빈곤에 빠질 확률은 거꾸로 1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 재난이 벌어진 시기에 태어난 사람의 미래 소득과 교육 수준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뒤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코로나19 확진자 신상을 공개하고 비판하는 ‘낙인효과’보다 포용하고 지원하는 정책이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다. 신뢰를 유지하는 것도 경제 회복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갈등 확산은 서로를 향한 신뢰를 갉아먹어 결과적으로 경제 활동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과거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차지하기 위한 종족 분쟁이 잦고 갈등이 극심한 지역일수록 현재 경제 성장률이 낮고, 반대로 사회적 신뢰가 높은 지역의 성장률이 높다는 역사적 분석이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다. 정부 책임론과 정치적 공방을 벌이기보다 전염병 실체를 분석하고 극복을 위해 공동 대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경제를 위해서도 나은 선택이라는 얘기다.

박종오 <이데일리> 기자 pjo22@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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