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인숙의 단 하나의 뮤즈,
고양이와 나누는 진심 어린 교감이
또 한 번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들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웃의 마음으로 고양이의 삶을 바라보다
‘고양이 시인’으로 잘 알려진 황인숙이 6년째 동고동락하고 있는 세 마리 고양이들과의 에피소드를 담은 산문집 《우다다 삼냥이》를 출간했다. 고양이처럼 완벽하고 황홀한 피조물은 없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고양이는 끊임없이 영감을 주는 뮤즈이다. 최근 고양이를 소재로 한 작품을 잇달아 펴낸 그녀는 이번 산문집에서 황인숙표 고양이 문학에 정점을 찍었다. 시인의 위트는 한층 풍부해졌고,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는 마치 고양이의 몸짓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시종일관 발랄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책을 읽으며 독자들은 고양이와 시인 황인숙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것이다.
특별히 이 책의 그림은 화가 염성순이 맡았다. 수채화, 콜라쥬, 유화 등 다양한 기법을 구사하여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해낸 염성순의 그림은, 자신 또한 고양이를 키우는 캣맘으로서 반려묘를 향한 애틋함과 길고양이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일러스트가 아닌 예술가의 감성으로 탄생한 고양이들의 모습은 독자들에게 신선함과 색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잃어버린 휴머니즘을 되찾다
이 책은 각자 독특한 개성을 지닌 ‘란아, 보꼬, 명랑’이라는 이름의 세 고양이와 시인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로 출발한다. 박스를 좋아해서 택배가 오면 주인보다 더 반기는 보꼬, 목 밑을 긁어주면 고로롱 소리로 화답하는 명랑이, 앙골라 셔츠에 온몸을 비비며 행복해하는 란아는 이처럼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며 시인과 알콩달콩 지낸다. 첫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이들은 곧 하나의 ‘가족’을 이루게 되었고, 서로에게 무한 애정을 쏟으며 여느 가정과 다름없는 단란한 삶을 누리고 있다. 자기 자식한테 정을 담뿍 담아 욕을 하는 엄마들 심정이 이제는 이해된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고양이는 친구이자 자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고양이를 향한 시인의 사랑은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길고양이들에게 매일 밥을 먹이는 모습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동안 길고양이들의 끼니를 챙기느라 사료비도 많이 들었고 좋아하던 여행도 마음 놓고 갈 수 없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살피는 것만큼이나 힘없는 길고양이를 보살피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인에게 그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갈 데 없는 고양이들을 거두는 그녀의 손길에는 진심으로 그들과 교감을 나누려는 의지가 어려 있다. 한층 더 깊어진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린 휴머니즘을 되찾게 될 것이다.
고양이를 통해 우리의 현실을 조명하다
이 책의 진짜 매력은 고양이를 통해 시인이 느낀 현실에 대한 상념을 맞닥뜨렸을 때 비로소 느끼게 된다. ‘장애가 있는 줄 알았던 명랑이의 눈은 눈약을 사흘 넣자 반짝 떠졌다. 집집마다 유통기한을 넘기고 서랍 속에 뒹구는 소염제가 최빈국에서 얼마나 소중히 쓰일지 절감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운명이 오직 제 손끝에 달린 작은 생명을 저버릴 수 있는 사람은 무슨 일에 있어서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이다’라고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은 그 자체로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어쩌면 시인은 아흔아홉을 가지고도 하나를 더 갖지 못해 안달하고, 친자식을 버리고도 죄책감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비 오는 날 생이별 하게 된 어미가 그리워 비만 오면 문밖에 나가 우는 고양이가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우다다 삼냥이》는 보호받지 못하는 길고양이뿐만 아니라 소외받는 우리 이웃의 삶을 조명해보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준다. 또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지키고 살아야 할 최소한의 미덕이라도 갖추기를 바라며, 고양이가 인간의 병든 마음을 치유해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변화는 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거리의 불청객들을 향한 불쾌한 시선을 거두는 것에서 시작된 변화는 더 나아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미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냉담한 이 사회에 시인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