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 빈부 격차의 쓰라림, 외면하거나 당의정 입히고 싶지 않아”
‘기생충’ OST 중 ‘믿음의 벨트’(정재일 작곡)와 함께 봉준호 감독, 송강호, 이정은, 장혜진, 조여정, 이선균, 박소담, 박명훈 등 배우진이 등장하자, 카메라 플래쉬가 폭발한다. 기자회견장에는 감독과 배우진 외에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 한진원 작가,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부문에 처음 노미네이트된 양진모 편집감독과 이하준 미술감독 등도 참석했다. 관심을 증명하듯 수백 명의 내외신 기자가 참석한 이날 회견에서는 최근 개봉한 ‘기생충: 흑백판’과 ‘기생충’ 드라마 제작 이야기도 오갔다. 간담회 현장에서 오간 문답을 정리해본다.
▶송강호 “칸에서 봉 감독 너무 껴안아 갈비뼈에 실금…오스카에선 자제”
Q. ‘기생충’으로 수개월간 오스카 캠페인(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홍보기간)에 참여했는데 소회가 있다면? (봉준호)넷플릭스 같은 다른 거대 스튜디오가 LA 시내에 거대한 광고판과 TV와 잡지 전면 광고 등 물량 공세를 할 때 중소 신생 배급사인 네온과 우리는 턱없이 적은 예산으로 SNS나 인터넷 마케팅 아이디어로써 대항했다. 600개 이상의 인터뷰, 100회 이상의 GV(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했는데 저랑 강호 선배가 코피를 흘릴 일이 많았다(송강호 배우는 실제로 쌍코피를 흘렸다). 처음엔 토드 필립스, 샘 멘데스 같은 작가주의 감독이 상업적인 홍보에 나서고, 스튜디오가 어마어마한 거기 거대한 예산을 쓰는 것이 낯설었지만 그만큼 영화를 깊이 있고 밀도 있게 검증하는, 오랜 전통의 캠페인이었다. (송강호)아무 생각 없이 갔는데 6개월 동안 최고의 예술가들과 같이 호흡하고 관심을 받다 보니 타인들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점점 알아갔다. 상을 위해서라기보단, 세계 영화인들과 어떻게 호흡하고 소통하고 공감하는지를 배웠다. 6개월이 지나니 내 자신이 굉장히 작아지더라.
Q. 아카데미 수상 순간 소회가 어땠나? (송강호)칸에서 내가 봉 감독을 너무 심하게 끌어안아서 갈비뼈에서 실금이 갔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번엔 얼굴 위주로 뺨, 뒷목을 잡으며 굉장히 자제했다(웃음). (이선균)“우리가 선을 넘은 줄 알았는데 오스카가 선을 넘은 것 같다”고 회견장에서 밝혔는데, 사람이 벅찰 때 눈물이 날 수도 있구나 싶었다. 4개 상을 수상하고 보니, 아카데미가 큰 선을 넘은 것 같다. (조여정)타지에서 온 우리 팀 전체가 무대에 올라가 있는걸 보고 ‘영화의 힘은 대단하구나, 영화가 전 세계 공통의 언어’라는 게 체감이 됐다. (박명훈)맡은 캐릭터의 스포 가능성 때문에 개봉 시에도 국내에서 홍보 활동을 못했다. 아카데미에서도 극중과 워낙 모습이 달라서 그런지 아무도 몰라보더라. 다들 ‘스태프 중에 한 명이구나’ 하더라(웃음). 영화처럼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Q. ‘기생충’ 배우들도 아카데미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 반응이 어떤가. ‘오리지날 하우스 키퍼(문광)가 늦은 밤 벨을 누르는 순간 영화의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는 평을 들었다. SAG(미국배우조합상) 시상식장 들어갈 때도 톰 행크스가 아주 반가워하면서 이정은 배우에 대한 질문을 많이 했었다. LA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쿠엔틴 타란티노는 “온종일 ‘연교(조여정)’ 캐릭터와 연기에 대한 생각을 했다”며 내리 10분 동안 조여정 배우를 칭찬했다. 비영어 영화 최초로 받은 SAG 앙상블 상에서 입증됐듯이 누구 하나 빠진 것 없이 미국 배우들의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 받게 해준 일등공신이 극중 배우들의 앙상블을 높게 평가한 미국배우조합 배우들이 아닌가.
▶봉준호 “오스카 캠페인 돌며 송강호 코피 흘려…마틴 스콜세지 감독 편지에 감동”
Q. 수상소감이 많은 패러디를 낳고 있는데, 모두 계획이 있던 건가?
(봉준호) (패러디를 한)유세윤 씨 참 천재적인 것 같다. 문세윤 씨도. 존경한다(웃음). 최고의 엔터테이너인 것 같다. 오늘 아침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님이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와서 불과 몇 시간 전에 읽고 왔는데, 영광이었다. 마지막 문장에 ‘그동안 수고했고 좀 쉬어라, 대신 조금만 쉬라’고 되어 있었다(웃음). 다들 차기작을 기다리니까 조금만 쉬고 빨리 일하라고 편지를 보내주셨는데, 기쁘고 힘이 났다.
Q. 모두들 봉하이브(봉준호+Hive: 봉감독에게 벌떼처럼 몰려든다는 뜻)에 열광하는데. ‘기생충’ 인기 요인이 있다면? (이정은)오스카 캠페인 기간 내내 봉준호, 송강호 두 분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 입을 헤 벌리고 쫓아다녔다. 평소의 봉 감독처럼, 늘 유머를 잃지 않았던 것이 수상소감에서도 묻어났기 때문에 다들 좋아한 듯 하다. 미국과 유럽의 실업 문제 등 현시대를 짚는 영화들이 영화제에서 드물었는데 ‘기생충’은 동시대적인 문제를 굉장히 재미있고 심도 있게 표현했다. 선과 악의 이분법이 없다는 점, 예상할 수 없는 스토리 등이 ‘기생충’의 인기 요인 같다. (한진원)아주 잔혹한 악당도, 확실한 선악도 없다. 각자만의 드라마, 캐릭터, 이유가 있어서, 모두에게 연민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이 즐거움 아니었을까.
Q. 앞으로도 계속 계급 문제를 다룰 것인가? (봉준호)‘괴물’, ‘설국열차’에서는 계급 문제를 괴수물과 SF로 다뤘다면 ‘기생충’은 현실에 기반한 동시대 이야기, 우리 이웃에게 볼 수 있을 법한 계급 이야기로 다뤘다. 지금 두 편의 작품도 몇 년 전부터 준비하던 것이라 평소 하던 대로 될 것 같다. ‘기생충’도 뭔가 특정한 목표가 있던 것은 아니다.
Q. ‘1인치의 장벽’이라던 자막의 벽은 어떻게 허물었나? (봉준호)번역을 맡은 달시 파켓과는 ‘플란다스의 개’ 때부터 꾸준히 함께 작업해왔다. 그는 이미 ‘살인의 추억’ 속 “밥은 먹고 다니냐” 번역이라는 인류 최대 난제를 이미 해결한 사람이다. 한국말을 잘하는 미국인 남편인 달시, 영어를 잘하는 그의 한국인 부인의 호흡 덕이다. ‘대만 카스텔라’를 즉각적으로 알아들을 수 있도록 번역한 것이나, ‘짜파구리’를 ‘RAMDONG(라면+우동)’으로 번역하는 등 맥락과 드라마 상 숨겨진 의미들을 잘 찾아냈다.
▶봉준호 “‘옥자’ 때 이미 번아웃 진단받아”
“동상 건립? 나 죽은 뒤 얘기하라”
Q. ‘플란다스의 개’(1999) 같은 영화는 지금은 만들지 못했을 것 같다. (봉준호)해외에서 많이 받은 질문이다. ‘플란다스의 개’는 지금이라면 제작이 안될 거다. 고민이 된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을 찍을 2000년대 초반까지도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좋은 교감이랄까, 다이내믹한 상호 충돌이 남아 있었다. 젊은 감독들이 이상하고 모험적인 시도를 하는 것은 20년이 흐르면서 좀 어려워졌다. 198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의 쇠퇴를 생각해보라. 한국 영화 산업은 좀 더 모험을 해야 한다. 여러 도전적인 영화들을 껴안아야 한다. 그렇지만 최근의 훌륭한 독립영화들을 보면 여러 재능이 꽃피고 있기 때문에, 좋은 충돌이 일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Q. ‘기생충: 흑백판’ 기획 의도는? (봉준호)‘마더’ 때도 흑백판을 만들었다. 다들 고전영화, 흑백영화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은가. 세상 모든 영화가 흑백영화였던 시절이 있었고. 1930년대에 살았다면 내가 영화를 어떻게 찍었을까 궁금했다. 컬러가 사라진 것 외에 내용은 똑같지만 이런 저런 다른 느낌이 있다. 로테르담영화제에서 어떤 관객분이 “흑백으로 보니까 화면에서 더 냄새가 나는 것 같다”라고 하더라. ‘마더’때도 그랬지만 컬러가 사라지니까 눈빛, 배우분들의 미세한 표정이 연기, 섬세한 디테일과 뉘앙스들을 더 느낄 수 있었다.
Q. 틸다 스윈튼 캐스팅 소식 등이 전해졌는데 ‘기생충’ 드라마 제작 현황은? ‘빅쇼트’와 ‘바이스’를 연출한 아담 맥케이(작가, 감독)과 이야기 나누고 있다. 블랙코미디와 범죄드라마 형식의 리미티드 시리즈로 깊게 파고 들어갈 듯 하다. HBO ‘체르노빌’처럼 5~6개의 에피소드 밀도로 갈 것 같다. 틸다 스윈튼, 마크 러팔로 출연에 대한 언급이 나왔는데 공식적 사안은 아니다. 금년 5월에 선보이는 ‘설국열차’ TV시리즈도 4~5년 전에 기획했으니 그만큼 걸리지 않겠나.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봉준호)수상 자체가 영화사적 사건처럼 기억될 수 밖에 없는 면도 있지만 ‘기생충’이 영화 자체로 기억이 됐으면 한다. (송강호)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스콜세지 감독에 바치는 수상소감이 화제가 됐는데, 나는 배우이다 보니 가장 창의적인 것이 가장 대중적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정진하고 싶다. (이정은)영화가 한 편 만들어질 때 정말 수고스로움이 많다. 이 자리에서 그런 분들을 대변해 인사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 (장혜진)저라는 낯선 배우를 믿고 쓰신 감독님과 곽신애 대표님, 낯설지 않게 봐준 관객들께도 감사한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꿈이었는데, 앞으로가 걱정이다. 꿈같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내일은 또 내일을 살겠다.
[글과 사진 박찬은 기자 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바른손이앤에이, 트위터]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19호 (20.03.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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