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들과 토요봉사팀…스님이 수도·보일러 수리까지"

대웅전 요사채가 전부지만
백운산 전체 품어안은 도량

법진스님 부임 후 지역봉사
외부 활동하며 자긍심 생겨
스님 솔선하니 ‘신도 단합’

의왕 백운사는 법진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지역내 활발한 활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모범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주지 법진스님과 신도 봉사팀이 지역내 독거어르신을 찾아 돌보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왕 백운사는 법진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후 지역내 활발한 활동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모범사찰로 자리잡고 있다. 주지 법진스님과 신도 봉사팀이 지역내 독거어르신을 찾아 돌보미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백운사는 경기도 의왕시 백운산 중턱에 위치한 작으나 결코 작지 않은절이다. 전각으로는 대웅전과 공양간이 함께 있는 요사채 등이 전부다. 대웅전 옆으로 산어귀를 돌면 야외의 석조 관세음보살상과 산신상을 두어 백운산 전체를 도량으로 삼았다. 백운산이 백운사를 품은 것이 아니라 이를 뒤집어 삼라만상이 부처님 도량에 놓이게 만든 선사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주지 스님이 바뀌면 신도들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신도들의 변화가 긍정적인 것이라면 더욱 좋은 일이다. 의왕 백운사도 4년 전 이런 변화를 맞았다. 신임 주지 법진스님이 부임한 이후 백운사는 의왕시는 물론 인근 안양시, 군포시 지역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달라진 위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백운사 신도들이다.

백운사는 규모와 달리 외부 활동이 활발하다. 한동안 외부와 단절되다시피 지냈던 신도들은 주지 법진스님 부임 이후 신행이 사찰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2016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법진스님을 새 주지로 맞은 신도들은 안양 평촌 중앙공원에서 열리는 안양 군포 의왕 봉축행사에 참여했다. 이때만 해도 참여한 신도는 20여명 남짓이었다. 지역 사찰이 함께 봉축행사를 연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 신도들이 적지 않았다. 부스가 차려지고 한바탕 놀이마당이 펼쳐진 행사장, 연등법회와 제등행렬을 하며 하루종일 부처님오신날을 즐기는 광경은 신기하게 느껴졌다. 해를 더해갈수록 참여하는 신도가 늘었다. 입소문의 힘은 컸다.

백운사 신도라는 자긍심과 불자로서의 자긍심이 생겨났다. 외부활동이 일체 없을 때 절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이다. 더군다나 지역의 다른 사찰과 시민들에게 백운사를 알리는 효과도 있었다. 신도들은 절로 신이 났다.

백운사는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백운산의 전몰장병 위령재를 해마다 열고 있다. 이런 방식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되기도 한다.
백운사는 6.25전쟁 당시 격전지였던 백운산의 전몰장병 위령재를 해마다 열고 있다. 이런 방식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이 되기도 한다.

부처님오신날 봉축행사는 시작이었다. 주지 스님을 따라 의왕경찰서 경승실 법당과 서울구치소 법회를 다녀왔다. 전혀 새로운 경험이었고, 그럴수록 신도들은 더 많이 모였다. 정을 붙이지 못했던 신도들도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불사였다. 진용숙 신도회장은 부처님을 모시는 도량을 짓는 것만이 불사가 아니라 사찰의 모든 활동이 불사라는 것을 배웠다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신도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고, 주지 스님에 대한 신뢰가 더욱 깊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했다.

백운사에 없던 봉사팀이 생겼다. 지역내 독거어르신을 찾아 말벗이 되고 집안일을 돕는 팀이다. 처음엔 주지 법진스님이 이전의 사찰에서 봉사하던 평택의 독거어르신과 연을 맺었다. 법진스님은 첫 주지로 부임한 평택 약사사에서 지역의 독거 어르신을 찾아 나눔을 시작했다. 백운사로 사찰을 옮겨서도 이 활동은 계속됐다. 찾아오는 날이면 집앞에 나와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들을 사찰이 바뀌었다고 외면할 수는 없었다.

평택의 독거어르신 3명 가운데 2명은 이제 유명을 달리했다. 법진스님은 무연고어르신의 49재와 매일 사후 축원을 올리고 있다. 백운사가 속한 고천동주민센터의 도움으로 지역내 독거어르신에게도 새로 봉사를 시작했다. 자식은 있지만 왕래가 없거나 왕래가 있더라도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어르신들이다.

지금 봉사를 다니는 어르신 중에는 부부가 있다. 할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있고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하다. 법진스님은 전기, 수도, 보일러를 직접 손보고, 봉사팀은 청소, 미용, 설거지 온갖 허드렛일과 말벗을 도맡는다. 한달에 한번 찾아가는 건데도 할아버지는 눈에 띄게 밝아졌다. 말동무가 된 봉사팀과 있을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나는 것을 봉사팀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웃음을 몇 년만에 보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지었다. 모두가 함께 울었다. 매월 셋째주 토요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봉사팀이 출동하는 날이다.

백운사는 6.25전쟁 전몰장병을 위한 위령재도 열고 있다. 격전지였던 백운산과 모락산에서 희생된 이들의 후손이 아직도 이 지역에 많이 남아 있다. 의왕시청이 보관하고 있던 전몰장병 위패 300여위도 이때 영단에 모신다. 위령재가 열린 이듬해 유해발굴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오랫동안 유해를 발굴하려 했지만 예산배정이 이뤄지지 않아 번번이 좌절됐었다. 위령재를 열어준 백운사 덕분인 것 같다며 김상돈 의왕시장과 윤미근 군의회의장은 백운사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신도들은 지역사회 장학금과 자비의 쌀을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불자로서의 자긍심도 높이고 있다.
신도들은 지역사회 장학금과 자비의 쌀을 기부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불자로서의 자긍심도 높이고 있다.

자비의 쌀 나눔과 장학금 전달도 이제는 낯선 일이 아니다. 정월 삼재풀이의 물품은 지역 장애인복지관에 기부하고, 부처님오신날에는 지역 청소년과 신도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위령재에 모인 공양미는 지역 보훈단체 몫이다. 큰 재가 있거나 불공이 있는 날이면 떡과 과일도 관내 경로당과 복지관으로 배달한다. 매년 연말 자비의 쌀 1080kg 전달식도 하고 있다. 이런 나눔은 지역사회와의 소통의 방식들이다. 법진스님은 부처님오신날이나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크고작은 도움을 받거나 꾸준히 인연을 맺고 있는 이들이 백운사를 찾아오기 때문에 매번 도량이 북적거린다고 했다.

지역사회와 소통에 힘쓰는 만큼 신도들의 신행과 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초하루법회 외에도 월1회 불교입문 교육이 이뤄지는 법회로 기초교리와 상식을 익힐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저 절이 좋아서 오던 신도들도 하나씩 익혀가는 재미에 빠졌다. 시간이 길어지긴 했지만 우리말의식도 제법 정착했다. 너무 오래 걸린다고 불평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집전 때문에 이제는 모두가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매달 이어지고 있는 관음도량 순례와 나한도량 순례는 늘 만원이다. 처음엔 20명 수준에서 이제는 버스 한 대를 채우고 늘 순번을 대기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성지순례는 사경과 기도로 순례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한달 전에는 거사회를 창립했다. 거사회를 별도로 조직할 수 있을 만큼 인원이 늘었다. 4년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주지 법진스님은 공찰의 신도들은 주지 스님은 때 되면 어차피 갈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조직화하고 뜻을 모으는게 쉽지 않은게 현실이지만, 주지가 먼저 나서서 일하고 열심히 살다보니 신도들이 함께 하는 것 같다신도들이 열심히 신행활동과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자 늘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운사는 정월 삼재풀이의 공양품은 지역 장애인복지관에 기부하고 부처님오신날에는 지역 청소년과 신도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백운사는 정월 삼재풀이의 공양품은 지역 장애인복지관에 기부하고 부처님오신날에는 지역 청소년과 신도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한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