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양파 총리’에 대한 캐나다 시민들의 반응 [월드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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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47) 캐나다 총리의 약 20년 전 ‘블랙페이스’ 분장을 했던 사진이 잇달아 폭로되며 전 세계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지만, 정작 캐나다 시민들은 차분한 반응이다. 한 외신이 만난 시민들 반응은 “오래 전 일”(Long time ago)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영국 공영 BBC는 19일(현지시간) 캐나다에서 인종과 성별, 나이 등이 다른 다양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거리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기를 안고 인터뷰에 응한 젊은 흑인 여성은 “솔직히 이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한다. 2001년의 민감함은 지금과 다르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예민함의 촉을 갖고 있지 못했다”고 말했다. 토론도에 거주 중인 그는 “(트뤼도 총리의 행동은) 그저 디즈니 영화의 캐릭터를 흉내내는 놀이였을 거다. 별일(big deal)아니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중장년의 백인 남성은 “사람들은 성장한다. 그건 여러 해 전의 일이다”라며 “그가 변했다면, 그건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중장년의 백인 여성은 BBC에 트뤼도 총리에게 “매우 실망했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도 “동시에 나는 깨닫게 됐다. 우리, 특히 백인 중 많은 사람들은 과거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벌였을 인종차별적 행동을 심각하게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약 20년 전 피부색을 새까맣게 분장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촉발된 인종차별 논란과 관련해, BBC가 캐나다 시민들의 반응을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BBC캡쳐
블랙페이스가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현재 금기시되고 있는 만큼, 캐나다 미디어들은 총선을 한달 앞둔 시점에 이번 폭로가 최악의 스캔들로 비화할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또다른 백인 남성은 트뤼도 총리에 대한 입장이 바뀌었냐는 BBC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불행한(unfortunate) 일”이라면서도 “그가 20대였던 과거에 어땠는지보다 지금 그가 어떤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적 문제를 갖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아랍계의 젊은 남성은 “이 일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누구에게 투표할지, 내 (정치적) 선호는 어떤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거듭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시민들은 선거를 앞두고 터진 이번 블랙페이스 논란을 더 냉정하게 분석하려는 분위기다.

앞서 중장년의 백인 남성은 “그가 지금 무엇을 제안하는지가 그의 과거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단호하게 ‘실망했다’고 했던 여성은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봤다. 이 일로 생기는 정치적 이득은 무엇인가, 이 일로 누가 정치적 이득을 만들고자 하는가”라고 말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18일 트뤼도 총리가 29세이던 2001년 사립학교 교사로 일하던 때, 학교 파티에서 알라딘 복장을 하고 얼굴을 새까맣게 칠한 사진을 공개했다. 트뤼도 총리가 공식 사과했지만 바로 다음날 1990년대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시기, 아프로펌 머리 가발을 쓰고 얼굴을 새까맣게 칠한 채 폴짝폴짝 뛰고 있는 영상도 잇달아 폭로됐다. 고등학교 시절 얼굴을 검게 칠하고 자메이카 포크송을 부르고 있는 사진도 나왔다. ‘블랙페이스 전적’들이 나오고 또 나온 것이다. 트뤼도 총리는 그때마다 공식 사과를 하면서도 “얼마나 많이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트뤼도 총리는 “그때는 인종차별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더 잘 알았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절대 하지말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상황적 여건이나 맥락도 변명이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강조했다. 그는 “블랙페이스가 가진 인종주의적 역사 때문에, 맥락과 여건을 떠나, 언제나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가진 (백인이라는) 특권적 배경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깨닫는 일에 실패했다”고 자책했다.

트뤼도 총리는 남녀 동수로 내각을 꾸리고 이민자 및 소수자 포용 정책을 펴면서 캐나다 진보 정치를 진일보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국제사회에서는 차세대 젊은 리더 그룹의 한 명으로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언론들은 첫 폭로가 나오자 “누가 진짜 트뤼도인가”, “우리가 알던 그 트뤼도가 맞나”며 놀라움을 전했다. 또 다음달 21일 진행되는 캐나다 총선 판세가 팽팽한 가운데, “관용의 나라임을 자랑스러워하는 캐나다 시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던졌다. “트뤼도가 사회 정의와 포용성, 다양성의 챔피언을 자청했기에 더욱 당황스러운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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