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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이슈] 진중권 왜 센가

노원명 기자
입력 : 
2020-01-31 10:33:13
수정 : 
2020-01-31 15: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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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객 진중권에 대해 '제1야당 같다'는 말이 나온다. 우스개가 아닌 것이 친문 진영이 '뻘짓'을 할 때마다 진중권이 상황을 실시간 정리해준다. 하루에만도 몇건씩이다. 언론은 자유한국당 논평은 싣지 않아도 진중권의 페북글은 바로바로 띄운다. 진중권 논평이 양과 질, 신속함, 대중 선호도에서 한국당 논평을 압도하므로 당연한 것이다.  진중권은 왜 센가. 첫째 그는 말로 싸울 줄 안다. 한국 사회에서 말싸움은 좌파가 절대 우위를 점하는 영역이다. 논리나 지성을 떠나 좌파는 목소리가 크고 절대 물러서는 법이 없다(다른 나라도 비슷한데 한국은 특히 그렇다). 이념적으로 전향한 적이 없는 진중권은 지금도 좌파다. 그 공격력이 어디 갈리가 없다. 한국 우파는 1998년 이후 야당을 꽤 오래 했는데도 이런 전투력을 기르지 못했다. 좌파의 유시민, 김어준 같은 '공격형 라디오'를 눈씻고 봐도 찾을수 없다. 우파가 기껏 소총이나 쏘아 대고 있는데 어느날 갑자기 진중권이라는 제3 진지에서 친문 진영을 향해 대전차포를 갈기기 시작했다. 그 화력이 대단해 보일 밖에. 한국 우파는 부끄럽게 생각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진중권을 보고 배워야 한다.

 둘째 진중권은 지식인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의 말이 대중의 귀에 쏙쏙 꽂히는 것은 언어구사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진영의 벽을 허물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그렇게 한 좌파 지식인이 없었는데 진중권이 하니까 대단해 보이는거다. 그 결과 좌파 세계에서 진중권은 사문난적이 됐다. 그럼에도 우파로 전향할 생각은 전혀 없어보인다. 진중권은 남은 여생을 무소속으로, 경계인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그가 이런 '불편'을 감수하며 나선 것은 지식인의 천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식인은 남이 잘못하는 것을 그냥 보아넘기지 못하는 존재다. 지적질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다만 대다수 지식인들은 정치력이 뛰어나서, 혹은 그냥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자기가 속한 진영의 잘못에는 슬쩍 눈감는데 익숙하다. 조국 사태때 참여연대가 침묵하는 것을 보고 "조국펀드에 한마디 못하는게 무슨 시민단체냐"며 뛰쳐나온 김경률은 얼마전 새보수당 강연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가만 보면 박근혜 탄핵때 찬성할 수 있었던 보수 진영 사람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그냥 덕담이었겠지만 일말의 진실은 내포하고 있다. 한국 우파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팩트앞에 승복하는 미덕은 있다. 이 정권에서 이념보다 팩트를 중시하는 좌파 지식인은 내가 알기로는 진중권과 김경률 뿐이다. 사람들은 진중권이 쏟아내는 비판을 들으며 "그래도 저런 지식인이 한명은 있구나"하고 작은 안도를 느낀다. 그게 진중권의 힘이다.

 셋째, 그러나 진중권에 너무 '감동 먹을' 이유는 없다. 나는 그가 아주 영리한 지식 비즈니스를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자리에 대한 욕심, 당장 생계에 대한 걱정만 털어내면 진중권처럼 사는게 최고다. 지방대 교수에서 일약 전국구 지식인이 됐다. 그 정도 지명도면 먹고 살 방편은 어떻게든 생겨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지식인 진중권에게는 이 정권이 '노다지'처럼 보일 것이다. 지식인은 남 지적질 할때가 제일 신나는 법인데 잘못하는 상대가 심지어 부조리하거나 모순되는 면모까지 보인다면 그보다 더 신날수가 없다. 자신들이 야당시절 했던 말을 정확히 반대로 비틀거나 뒤집는 정권만큼 부조리의 노다지가 어디 있겠나. 이 부조리를 진중권은 잘 가공해서 파는 것이다. 진중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뭔가 쏟아내고 있을텐데 힘에 부칠지도 모르겠다. 꺼리가 너무 많아서. '어용 지식인'을 자처한 유시민은 이 정권들어 재미가 없어졌다. 지식인은 어용이 되면 안 팔린다는 사실을 똑똑하다는 그가 몰랐을까. 대중 지식인 왕좌를 진중권에게 물려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어쩌면 진즉에 넘어갔을지도.

[노원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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