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하얀 쥐띠의 해라고들 한다. 하얀 쥐라고 하면, 동물실험실 내 케이지(cage)에서 사육되는 쥐를 먼저 떠올리게 된다. 쥐는 사람과 같은 포유류이면서, 몸집이 작아 다루기 쉽고 세대 기간이 짧으므로 신약개발 등 여러 분야에서 대표적인 실험동물로 활용되고 있다. 쥐 외에도 생쥐, 햄스터, 토끼, 원숭이, 개, 돼지 등이 여러 분야의 동물실험에 활용되고 있다. 이들은 실험이 끝나면 생명을 잃기 때문에 연구윤리와 관련된 문제가 따르며, 동물기관윤리심의위원회의 허가를 받아 일정한 조건으로만 실험이 가능하다.
그런데, 필자의 대학원 생활과 함께한 실험동물은 쥐가 아니라 초파리였다.
일반인들에게는 포도 껍질이 있을 때 자주 출몰하는 성가신 곤충으로 잘 알려졌지만, 유전학 분야에서 초파리는 대표적인 실험대상이다.
초파리는 개체의 크기가 작아 작은 유리로 된 주스 병 안에 평균 15마리 정도를 넣고 사육할 수 있다. 먹이는 옥수수가루와 한천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실험용이기에 다른 개체, 곰팡이 등이 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먹이에 방부 처리는 해야 한다.
실험용 쥐는 성체가 되는 데 3개월 정도 걸리는 반면 초파리는 7일 전후로 상대적으로 짧고 번식력도 좋아 실험을 한 뒤 다음 세대의 현상을 관찰하기 위해 긴 시간이 필요 없다.
초파리의 침샘에 들어 있는 DNA는 세포분열 없이도 증식을 반복하기 때문에 염색체의 크기가 다른 염색체의 1000배나 되어서 현미경으로 관찰하기도 용이하다.
이런 장점을 가지고 1900년도부터 우연히 실험 대상이 된 초파리는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성 후 초파리 게놈도 밝혀지며 인간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23쌍의 염색체를 가진 인간에 비해 매우 단순한 4쌍의 염색체를 가진 초파리지만, 전체 DNA가 인간과 60% 일치한다.
특히 인간 유전병에 관련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는 초파리의 유전체 데이터베이스와 약 75%의 높은 유사성을 보였다.
이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이 질병과 관련된 인체의 기전을 알기 위하여 초파리를 대상으로 많은 연구를 하고 있다.
한 예로 인간에게서 질환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유전자를 초파리에게 주입하여 기능적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이 있다.
필자는 사람에게서 신경-근육이 약화하는 유전 질환과 관련된 유전자를 초파리에게 발현시켜 초파리의 날개의 모양, 머리의 크기, 그리고 다른 하위 유전자 등에 이상이 발생한 것을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하며 해당 유전자의 질병 관련 기전을 연구했다.
이처럼 초파리의 연구를 통해 인간 생체시계, 암, 당뇨병, 자폐, 노화, 약물중독 등의 비밀이 풀리고 있다.
또한 초파리도 어느 정도의 학습능력이 있다는 것이 확인되어서, 유전과 지능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에 활용되기도 한다.
컴퓨터 하드웨어의 발전과 정보학의 발달로 인해서 전체 게놈 정보를 탐색하는 연구가 가능해졌다.
그 결과로 최근에는 초파리의 게놈을 탐색하여 자기장을 인지하는 단백질을 발견하기도 했는데, 조류의 망막에도 유사한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동물들이 지구 자기장을 통해 방향을 인지하는 원리가 밝혀지고 있다.
이렇듯 초파리는 유전자, 행동성향 등 인간을 포함한 다른 동물들이 하는 것을 다 하지만 경비가 훨씬 덜 들고 빠르게 한다는 장점을 최대한 살려 앞으로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연구에 더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초파리들이여! 기초의학의 발전과 인류에 대한 공헌을 위해 더욱 힘써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동안 공헌한 숭고한 초파리에게 삼가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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