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의문학의숨결을찾아] ‘생거진천’이라 조명희를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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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이란 각인이 그려낸 이상 체계 / 왜 이상을 위해 죽음마저 불사할까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나날이다. 이런 날에는 방콕이 제격이건만, 주말만이라도 다시 한 번 조명희를 찾아간다. 며칠 전 카프작가 이기영에 관한 긴 글을 읽었고 아주 인상적이었다. 여기에 이기영과 같은 세대 조명희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들어 있었다. 좋은 글은 불현듯 그들의 시대를 돌아보게 했다. 마침 볕이 따사롭다. ‘생거진천’이라, 진천행이 좋다.

조명희는 1894년 진천 벽암리 태생이다. 좋은 곳에서 났다. 그의 세대를 보면, 충남 아산 태생의 이기영은 1895년생이고 ‘무정’ 작가 이광수는 1892년생이다. 같은 시대에 났어도 앞의 두 사람은 민중적인 세계를 향해 나아갔고 뒷사람은 종교적 계몽주의를 택했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사상이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올바르기만 한 사상이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사상이란 어떤 시대에 각인이 자신이 최선을 다해 그려낸 이상의 체계일 뿐이다. 그것은 영원히 옳을 수 없고, 그 시대 안에서조차 완전히 옳을 수 없다.

조명희 시대는 3·1운동이 화두였다. 3·1운동은 시민운동이었을 뿐 아니라 학생운동이기도 했다. 경성의전 학생들이 주도한 시위에 중앙고보 다니던 조명희도 가담해서 체포되기까지 했다. 격렬한 시대였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다 박열의 흑도회에 참여하기도 했고 그후 문학으로 관심을 돌렸다.

서울로 돌아온 조명희는 희곡작가 김우진에게 돈을 빌려 팥죽장사를 한다. 가난한 사람 주느라 자기 생활도 이어가기 어려울 정도였다고도 한다. 그래도 이때 많은 문인들이 그의 집에 모였고, 이 사람들은 당대의 문학사조라 할 ‘무산자 문학’ 쪽으로 향했다. 김기진, 박영희가 주도하고 나중에 활약한 임화, 김남천 등의 카프(KAPF)문학에 조명희도 참여한다.

그 무렵 조명희는 단편소설 ‘낙동강’을 쓰는데, 첫 발표에서 주인공 박성운은 ‘나로드니키’처럼 설명되던 것이 카프가 이 작품을 이른바 ‘방향전환’을 알리는 작품으로 고평한 다음에는 창작집에 마르크시스트로 한 줄이 고쳐져 있음이 확인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상은 이상을 ‘번역한’ 것, 원본 그 자체와 같을 수 없다. 본디 아나키즘에 경사되었던 만큼 조명희는 앞에서 말한 김기진, 박영희 등과는 다른 맥락을 타고 프로문학 쪽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토요일이라도 조명희문학관은 열려 있으면 좋은데, 아뿔싸, 코로나19가 문학관 문들을 닫아버리게 할 줄이야. 수년 전보다 훨씬 안정되어 보이는 문학관 주변 경관과 건물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앙가슴 내밀고 있는 금빛 얼굴 조명희의 조각상을 아쉽게 바라본다.

혹시 2층 쪽에는 뭐가 없을까? 바깥으로 난 계단으로 윗층으로 올라가 본다. 뭔가 좋은 경험을 하는 데도 운이 필요한 모양이다. 뜻밖에 거기서 서로 연이 닿는 사람을 만나 아무도 찾지 않은 문학관 관내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몇 년 만에 다시 들어가 보는 조명희 문학관은 그 사이에 자료가 부쩍 늘고 짜임새가 좋아졌다. 그가 잘 알려진 ‘낙동강’을 쓰고 연해주로 ‘망명’을 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 이번에 살펴보는 문학관 안에는 그곳 연해주에서의 조명희의 삶이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렇다. 그는 1938년 하바롭스크의 KGB(국가보안위원회) 지하 감옥에서 일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총살되고 말았다. 앞에서 말한 이기영 글을 쓴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조명희는 당대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 국외로 망명한 것이었고, 일제 말기의 이기영은 ‘내부 망명’을 감행한 것이었다고. 자신의 이상을 지금, 이곳에서 찾을 수 없어 조선반도를 떠나 연해주로 망명을 떠난 조명희는 그 망명지에서 그만 무참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그냥 돌아서기에는 아쉬운 진천 길, 애써 생각해 낸 것이 문학관 근처의 ‘배티 성지’다. 두 번째 조선인 신부 최양업이 오래 머물며 구도적인 삶을 이어간 곳이다. 부모가 모두 순교한 뒤 최양업은 마카오까지 갔다 오며 새로운 종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그 그윽한 골짜기가 진천에서 안성으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에 숨어 있다.

사람은 어째서 자신의 이상을 위해 때로는 죽음마저 불사하는 것일까? 인간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을 존재라 할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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