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의 ‘로빈 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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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6. 오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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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

피터 케리 지음, 민승남 옮김/문학동네·1만6500원

오스트레일리아 소설가 피터 케리의 소설 <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2000)는 그에게 두 번째 부커상을 안긴 작품이다. 이 소설은 영국 식민 시절 오스트레일리아의 ‘산적’ 네드 켈리(1854~1880)의 실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재구성했다. 2000년 부커상 수상 당시,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이 되는 이언 매큐언의 소설 <속죄>를 따돌린 것으로 더 유명해졌다.

네드 켈리는 부유한 영국 출신 목장주의 가축을 약탈하고 정부 소유 은행을 털어 도피자금을 마련하는 한편 가난한 식민지 농부들에게 돈을 나눠 주는 로빈 후드 같은 면모로 민중의 지지를 얻었다. 수백명의 경찰과 마지막 결전을 앞두고 직접 제작한 철갑옷과 투구를 착용한 채 전투에 나섰던 그의 이야기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개막식 무대에서 재현되기도 했다.

교수형 집행 전날의 네드 켈리. ⓒNational Archives of Australia


소설 <켈리 갱…>은 네드 켈리가 어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신의 짧지만 강렬했던 삶을 회고하는 형태를 취했다. 구두점을 생략하고 교육받지 못한 네드의 거친 입말을 살린 문장은 “문학적 복화술의 역작”(<가디언>)이라는 평을 끌어냈다. 작가는 네드 켈리의 삶과 생각을 실감 나게 그렸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자연환경과 사회상 역시 다큐멘터리를 방불하게 되살렸다.

네드 켈리는 식민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체로 범죄자 출신이거나 그렇게 취급당하는 아일랜드계 이민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극심한 가난과 차별은 생존과 범죄의 구분이 불명확한 상황으로 그를 몰아간다. 열 살을 갓 넘긴 나이부터 남의 가축을 훔쳐다 식량으로 삼았고 아들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아버지는 감옥에서 당한 고문으로 네드가 열두살 때 숨을 거둔다. 어머니는 “일을 배우라고” 장남을 유명한 산적에게 보내고, 결국 노상강도죄로 체포된 열다섯살 나이부터 ‘범죄자’로서 그의 삶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감옥에 들어간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정해진 곳에 마침내 오게 됐다는 걸 나는 알았다”고 토로하는 장면은 당시 가난한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을 옥죄는 가혹한 운명을 단적으로 알게 한다.

“나는 그저 시민이 되길 바랐을 뿐이다 나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 개××들이 내 혀를 훔쳐갔다 나는 정의를 요구했지만 놈들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소설 말미에서, 공권력에 맞서 무장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이렇게 요약하게 되기까지 네드 켈리를 괴롭히고 몰아붙인 불의한 현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그려진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스스로 만든 철갑옷과 투구를 착용하고 경찰과 최후 결전을 벌이는 네드 켈리를 그린 그림. ⓒState Library of Vict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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