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공포에 휩싸인 주식시장에서 연기금이 코스피지수 1900선을 방어하는 지지선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미·중 무역분쟁 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당시 구원투수로 나섰던 연기금이 이번 폭락장에서도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전망이다.
"사수하라 1900" 구원투수 나선 연기금
‘구원투수’ 연기금의 등판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5일부터 국민연금·우정사업본부 같은 대형 기관이 포함된 연기금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4거래일 연속 순매수를 이어가며 9391억원어치를 사들였다. 같은 기간 개인(3조1556억원 순매수)과 손잡고 외국인의 순매도(3조3395억원)에 맞선 모양새다. 연기금은 코스피지수가 4.19% 폭락한 9일에는 올 들어 가장 많은 3985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시장 떠받치기에 나섰다.

지난해 8월 미·중 무역갈등이 정점에 달했을 때 연기금 등이 구원투수로 나서서 1900선을 지켜낸 것과 같은 흐름이다. 연기금 등은 코스피지수가 지난해 8월 7일 1909.71까지 떨어지자 8~9월 두 달간 유가증권·코스닥시장을 합쳐 5조278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3조6258억원어치를 판 외국인에 맞서며 코스피지수 하방을 지지했다. ‘2000 밑에서 사모은다’는 연기금의 저가 매수 전략은 수익률 측면에서도 성공적이었다는 게 증권업계의 평가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지난해 미·중 무역갈등이 격화했을 때나 한·일 무역갈등이 심해져 주가가 흔들렸을 때도 연기금이 주가 하방을 지지하는 역할을 했다”며 “이번에도 연기금이 외국인의 순매도를 흡수하는 모양새”라고 말했다.

연기금은 하락장에서 시가총액이 큰 종목을 주로 담았다. 지수를 추종하면서도 반도체·정보기술(IT)·바이오 등 성장성을 갖춘 종목에 집중했다는 분석이다. 이달 5~10일 연기금이 가장 많이 사들인 종목은 삼성전자로 3392억원어치를 순매수했다. SK하이닉스(1315억원), 네이버(339억원), SK(287억원), 삼성바이오로직스(259억원) 등이 뒤를 이었다.

국내 주식 가운데 20% 이상을 삼성전자로 채우고 있는 연기금은 3월 들어 삼성전자를 721만9376주 더 사들였다.

추가 매수 여력은

당분간 변동성이 큰 장이 이어지더라도 연기금의 코스피지수 1900선 방어력은 견고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아직 국민연금의 매수 여력이 남았다는 계산에 근거해서다.

국민연금은 코스피지수가 오르면 보유주식 평가액 규모가 커져 매도를 하게 된다. 반면 주가 하락시엔 보유 평가액이 쪼그라들어 추가 매수 여력이 생긴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보유액은 132조3000억원으로 비중 목표인 18%를 채웠다. 올해는 비중 목표가 17.3%로 0.7%포인트 줄어든다. 다만 전체 적립금 규모가 늘어나 총액 변화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올 들어 코스피지수가 10.68% 떨어지면서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평가액도 최소 10조원 이상 줄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연기금은 총 8960억원어치를 순매수한 만큼 아직 최소 9조원 이상의 ‘실탄’이 남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정 센터장은 “코스피지수가 1900에 가까워질수록 연기금은 펀더멘털에 대비해 낙폭이 과도하다고 보고 매수세를 강화한다”며 “이번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연기금이 1900선을 지지하는 방어선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경기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최악의 복합 불황으로 치달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원화가치 하락과 맞물려 외국인의 이탈이 장기간 이어지면 연기금의 방어력이 얼마나 효과를 낼지 미지수란 얘기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