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주 출범을 목표로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막바지 작업 중인 미래통합당은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에게 선대위원장직을 제안한 상태다. 김 전 대표는 지난 11일 “통합당에 공천 후유증이 있다.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의) ‘사천’ 논란을 해결해줘야 통합당에 갈 수 있다”고 조건을 내걸었다.
김형오 위원장이 13일 논란이 됐던 ‘강남병 김미균(시지온 대표) 공천’을 철회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일각에서는 김종인 전 대표가 선대위원장직 수락 조건으로 공관위 교체를 주장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총선을 33일 앞두고 김 전 대표가 통합당을 쥐고 흔드는 새 변수가 된 것이다.
김 전 대표는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의 친손자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내던 그는 전두환 정부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11대 국회에 입성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보건사회부 장관과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냈으며 14대 국회 때는 민주자유당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창당했던 새천년민주당에서 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으며 20대 국회 때는 민주당 소속이었다. 비례대표로만 5선 국회의원을 지낸 이례적인 인물이다.
특히 그는 여야를 아우르는 경제 전략가로 잘 알려져 있다. 군사정부 시절부터 주요 보직을 맡았던 그는 개혁적인 성향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민정당 국회의원이던 1987년 헌법 개정 때 헌법 제119조2항인 경제민주화 조항 입안을 주도했다.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던 이 조항은 이후 정부의 소득재분배, 재벌 시장지배력 남용 금지 정책 등의 근거가 됐다. 최근 여당에서 주장하고 있는 ‘토지공개념’도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김 전 대표가 있다. 보건사회부 장관과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을 당시 대기업들의 과다한 부동산 소유를 제한한 토지공개념 도입을 주창했다.
이런 그에게 ‘선거의 여왕’이라 불리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손을 내밀었다. 김 전 대표는 2012년 통합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 겸 경제민주화추진단장을 맡았다. 김 전 대표는 ‘박근혜 경제 과외교사’로 활동하며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사실상의 선대위원장 역할을 하며 19대 총선을 승리로 이끌었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까지 이어졌다.
이후 2016년 국민의당 분당 사태 등 위기를 맞은 더불어민주당이 김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민주당 대표의 요청으로 김 전 대표는 당 비대위 대표이자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민주당에서도 그는 경제민주화를 화두로 총선 전략을 짰으며 민주당의 20대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보수 정당에서 중도층 표심을 이끌었던 그의 경제민주화 전략이 진보·개혁 정당에서도 주효했던 것이다.
당시 새누리당은 민주당을 향하는 김 전 대표에 대해 “선거 때마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자신만이 최고 전문가인 듯 처신하는 일을 국민은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후로 4년 뒤 통합당은 다시 김 전 대표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통합당 한 관계자는 “지금 이 시점에서 김종인만한 선택지가 없는 게 사실이다. 특히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너무도 어려운 이 시점에서 경제전문가인 김종인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카드”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에 민주당에서 선거를 이끌었던 사람이 왔다는 것만으로도 상징성은 충분하다. 일반인들이 볼 때는 ‘민주당이 잘못을 많이 해서 다시 왔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 전문가인 김종인 전 대표가 오는 건 중도 표심에 긍정적인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통합당에서 영입하려는 것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정치 전문가들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김종인의 유통기한은 사실상 끝난 게 아닌가 싶다”며 “2016년 총선에는 1월 중순 민주당에 합류해 공천 전반 관리를 하면서 김종인 색깔이 많이 투입했다”며 “지금 상황에서 합류는 시간도 촉박하고 호박에 줄 그어 수박만 만드는 식의 효과를 낼 뿐이다”고 말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미래통합당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노회한 인물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플러스가 될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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