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恨과 興 뒤섞인 유일한 장르… ‘꺾기’ 기술 · 편곡 진화하며 재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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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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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미스트롯’에서 시작된 트로트 신드롬이 ‘내일은 미스터트롯’과 ‘트롯신이 떴다’로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은 트로트의 음악성과 표현력에 새삼 놀라고, 트로트가 주는 따뜻한 위로에 감동하며 트로트 가수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있다. 왼쪽부터 ‘트롯신이 떴다’의 설운도, 김연자, 남진, 주현미, 장윤정, 진성. ‘내일은 미스터트롯’ 결승전에 진출한 김호중, 임영웅, 장민호. SBS·TV조선 제공


■ ‘트로트 열풍’ 왜 지금일까

일제강점기 ‘엔카’에 영향받아 ‘왜색가요’ 논란… 창법·리듬·화성 변화주며 최근 고난도 댄스 등 ‘품격’ 높여

수십년 아이돌 K-팝 쏠림현상에 피로감… 솔직한 가사에 갈증 풀며 ‘힐링’


트로트 열풍이 식을 줄 모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불안과 우려 속에서도 TV조선 ‘내일은 미스터트롯’의 시청률이 매회 최고를 경신하고 있다. 마지막 결승전 방송(12일)을 앞둔 지난 회 시청률은 무려 33.8%.0 지난 2011년 종합편성채널 출범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이다. 트로트가 되니 다른 방송국에서도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을 쏟아내고 있다. MBN ‘트로트 퀸’, MBC에브리원 ‘나는 트로트 가수다’, SBS ‘트롯신이 떴다’ 등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그 매력을 거부할 수 없는 걸까. ‘트롯신이 떴다’의 시청률은 첫 회 14.9%에서 11일에도 비슷하게 14.7%를 유지했다. 남진, 김연자, 주현미, 설운도, 진성, 장윤정 등 내로라하는 트로트 가수들이 신인처럼 긴장한 표정으로 베트남 길거리 무대에서 즉석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다. 왜 지금 트로트에 이처럼 열광하는 걸까.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한 트로트

사실 트로트 열풍의 뿌리는 매우 깊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트로트는 일본에서 건너온 ‘신유행가’였다. 서양음악이 밀려들면서 일본의 전통적 ‘요나누키(四七拔き)’ 단음계(라시도미파)에 2박자 리듬을 더한 대중가요 ‘엔카(演歌)’가 만들어졌고, 엔카가 일제강점기 조선으로 전파돼 트로트로 재탄생했다. 해방과 6·25전쟁 이후 1950년대의 트로트는 단순한 오락거리 이상의 의미였다. 현인의 ‘신라의 달밤’(1947),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1953),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고개’(1955)는 전쟁의 상처와 서민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했다.

1960년대는 ‘정통파’의 시기였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1964)·‘섬마을 선생님’(1967),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1964) 등이 큰 인기를 누렸다.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된 1970년대는 정통과 크로스오버가 공존했다. 남진이 록이나 스탠더드 팝이 가미된 ‘임과 함께’(1972)로 변화를 꾀했다면, 나훈아는 기존의 정통 리듬을 심화시킨 ‘고향역’(1972)으로 맞불을 놓았다.

1980년대는 트로트의 변화가 더욱 거세졌다. 1984년 일본문화 개방 논쟁과 그에 따른 트로트 왜색(倭色) 논쟁이 배경이 됐다. 그 영향으로 창법과 리듬, 화성(和聲)에서 변화를 준 노래들이 등장했다.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1988)·‘짝사랑’(1989), 현철의 ‘봉선화 연정’(1988) 등이 그것이다. 무엇보다 노랫말의 변화가 컸다. 음악적 혼종과 자본주의적 소비문화의 영향이었다.

민주화와 개방이 본격화하던 1990년대부터는 침체기를 맞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1992년 전후로 대중가요 전반은 엄청난 황금기를 이룬 것으로 평가되지만 트로트는 오히려 뒷걸음질쳤다. 서태지의 힙합,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와 아이돌, 발라드와 댄스음악의 활황 속에 10∼20대 신세대들에게 트로트는 한물간 ‘옛노래’ 취급을 받았다.

그러다가 아이돌처럼 예쁘고 젊은 신세대 트로트 가수로 등장한 게 장윤정이다. 그는 ‘어머나’(2003)·‘짠짜라’(2005) 같은 곡을 히트시키며 아이돌 일변도의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그리고 홍진영이 ‘사랑의 배터리’(2009)·‘엄지척’(2016)으로 장윤정의 뒤를 이었고, 송가인이 ‘내일은 미스트롯’(2019)을 통해 21세기 트로트의 여신으로 우뚝 섰다.

◇푸대접… 그러나 한과 흥의 노래



우리 생활에 트로트가 없던 때는 없었다. 다만 다른 장르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록이나 헤비메탈은 음악적 도전정신으로, 발라드는 로맨틱함으로, 힙합은 반항적 메시지로 음악 팬의 감성에 호소했지만 트로트는 천대받기 일쑤였다. 이유는 트로트가 왜색이라는 편견, 그리고 ‘쉬운’ 음악이라는 평가절하 때문이었다.

통상 트로트라고 하면 대중가요 중에서도 가장 하위 장르로 인식됐다. 서구 클래식 음악은 고급예술이고 트로트는 ‘싸구려’라는 의식이 지배했다. ‘트로트와 한국음악을 위한 변명’(북코리아)을 펴낸 전지영 평론가는 “1960∼1970년대 국내 가요는 일본은 물론, 미국 팝의 영향도 받았는데 당시 미국 번안곡은 멋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일본 영향의 트로트는 업신여김을 받은 것은 미국과 일본을 바라보는 국민 정서의 차이 탓임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왜색 논란이나 쉬운 음악이라는 편견을 걷어내면 트로트는 오히려 어느 장르보다 오랫동안 한국인의 정서에 스며든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트로트에는 한국인 특유의 한(恨)과 흥(興)이 함께 깃들어 있다는 게 감상자들의 공통된 평가다. 얼핏 보면 한과 흥은 서로 섞이기 힘든 감정이다. 한이 맺히는데 어찌 흥겨울 수 있으며, 흥이 넘치는데 어찌 애절할 수 있겠는가. 록은 강렬하고 짜릿하지만 한스럽지는 않다. 힙합은 리듬에 흥이 있지만 가사는 냉소적이다. 발라드는 애잔하고 신날 수 있으나 두 가지를 한데 섞기엔 그릇이 좁다. 반면 트로트는 다 된다.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1984), 김수희의 ‘남행열차’(1986)는 어깨가 들썩여지는 리듬에 이별의 슬픔을 담았고, 장윤정의 ‘초혼’(2010)은 발라드에 깊은 한을, 홍진영의 ‘산다는 건’(2014)은 트로트가 가진 힐링의 힘을 보여줬다.

◇피로감에 대한 반발, 그리고 위로

그러나 지금처럼 트로트가 주목받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더구나 최근의 열풍은 세대를 초월한다. 50∼70대가 즐기는 변방의 장르로 여겨지던 것에서 10∼30대가 따라 하는 주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니뮤직의 조사에 따르면 트로트 인기는 지난 1년 새 5.8배로 상승했다. 트로트 열풍이 본격화한 2019년 2월부터 2020년 1월까지의 지니 인기순위 200위권과 전년(2018년 2월∼2019년 1월) 대비 순위를 비교한 결과다.

유튜브를 통해 어린이들에게도 스며들고 있다. 애니메이션 콘텐츠 및 완구 전문업체인 초이락컨텐츠팩토리는 지난해 말 김연자가 부른 ‘쑥덕쿵’ 노래에 애니메이션 헬로카봇에 등장하는 토끼 캐릭터를 더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는데, 김연자 채널에서 조회 수 202만 회, 카카오M의 원더케이 채널에서 45만 회를 기록했다. 가히 폭발적이다.

우선 트로트의 약점으로 취급받던 음악성이 인정받고 있다. 트로트 공연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품격’도 향상됐다. 클래식을 하던 김호중, 록밴드를 하던 플라워의 고유진이 트로트 가수가 되겠다며 오디션에 뛰어든 것만 봐도 그렇다. 소위 ‘꺾기’로 불리는 보컬 기술은 진화하고, 트로트를 하면서 동시에 고난도 아이돌 댄스를 하는 등 ‘기술’과 ‘표현력’도 크게 성장했다. 주현미의 소속사 CC엔터테인먼트의 임준혁 대표는 “과거 ‘싸구려’나 ‘뽕짝’으로 천대받던 트로트가 가창력과 편곡 등 예술적 측면에서 인정받고 있고, 힙합처럼 가식 없는 솔직한 가사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허물없이 다가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수십 년째 아이돌 음악 중심으로 돌아가던 피로감으로 인한 반전이기도 하다. 1996∼1998년 보이그룹 H.O.T와 젝스키스, 걸그룹 S.E.S와 핑클로 대변되는 K-팝 아이돌 1세대 이후 2000년대 중반의 동방신기와 빅뱅, 소녀시대와 원더걸스의 2세대, 그리고 2012년 이후 엑소와 방탄소년단까지 지난 20여 년간은 국내 가요의 쏠림 현상은 유난히 심했다. 아이돌이 K-팝의 발전을 견인했지만 대신 다른 장르, 특히 트로트가 설 자리를 빼앗았다. 게다가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잇따라 물의를 일으키면서 피로감이 극에 달했다. 이때 등장한 게 트로트다.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아이돌 음악만 듣고 자랐던 20대 이하 젊은 세대에겐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을 풀어줬다.

사회적 분위기도 무관하지 않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장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불신과 혐오가 커지고 코로나19 같은 치명적인 바이러스는 수시로 우리 삶을 위협하고 있다. 희망이 좌절로 바뀌면서 가슴 속에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어렵게 됐다. 그런 우울과 좌절감을 치유해준 게 트로트다.

가수 설하윤의 소속사 TSM의 강인석 대표는 “반짝이 옷으로 상징되던 과거 트로트 가수들이 훨씬 젊어지고, 복잡하고 위험한 세상에서 더욱 진솔하게 팬에게 다가가면서 젊은 층에게도 통한 것 같다”며 “그러나 방송 프로그램 몇 편의 인기와 흥행이 트로트계 전반에 골고루 전달된다고 보긴 어렵다. 몇몇을 빼곤 아직도 어려움을 겪는 가수와 제작자가 많다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해도 트로트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한과 흥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고, 사회와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에겐 여전히 따뜻한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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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하면 문화부, 그중에서도 한류와 K-팝의 최전선에서 달리는 대중문화팀 기자입니다. 현재는 체육부장을 맡아 문화체육을 아우르는 콘텐츠 개발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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