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의진의 시골편지]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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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4. 오후 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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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가장 실세라면 신인 트로트 가수 ‘송가인’씨라고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공연 행사가 죄다 취소되어 파리 날리겠지만 이미 벌어 놓은 돈이 솔찬하겠다. 이 글을 혹시 본다면 사인본 음반이라도 보내주슈! 가인씨 손전화기 번호가 저장된 사람이라면 실세 중 실세 인정. 그렇지만 사실 나는 이미자 여사의 팬이니까 굳이 팬심을 바꾸고 싶진 않아라. 스캔들 사연이라곤 없는 가수 노사연, 절대로 통통배를 움직이며 해운 사업을 하면 안되는 배철수, 잠이 너무 많은 트로트 뽕짝의 여신 이미자. 누구 말마따나 잠이 보약이고 잠이 최고여서 이름도 이미자.

사회적 거리를 두라길래 집에 가만히 있는데, 막걸리를 받아놓고 파전 김치전에 매생이굴국 끓여먹으면서 국가 지침을 준행하며 지내고 있다. 살이 찐다. 확진자가 아니라 확찐자. 이 사태가 끝나면 살부터 빼야 한다. 심심하니 늘어진 테이프도 당겨서 들어보고 CD, LP 음반도 꺼내어 닦는다. 아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월드뮤직 선생 소리를 듣고 사는 이 몸. 그러나 남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는 <KBS 가요무대> 프로에 등장하는 구수한 옛 노래들이다. 산 너머 남촌에는, 마포종점, 향기 품은 군사우편, 과거를 묻지 마세요, 목포의 눈물, 번지 없는 주막, 동백 아가씨, 추억의 소야곡, 삼다도 소식, 하숙생, 단장의 미아리 고개, 홍도야 울지 마라… 좋아 미친다.

돌아가신 형님의 외아들 조카가 이번에 섬마을 학교로 발령이 났다. 비금도, 멀기도 한 섬이다. 섬마을 선생님이 된 거다.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틀어놓고 가사를 음미한다. “구름도 쫓겨가는 섬마을에 무엇 하러 왔는가. 총각 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찬송가보다 뽕짝을 더 애정하는 나는 밖에선 많은 사랑을 받는데, 교인들에겐 많은 미움을 사는 거 같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교주가 될 팔자는 절대로 아닌 것에.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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