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노래]이규호 <머리끝에 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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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1. 오전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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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남편과의 첫 만남 ‘사랑을 담은 타임캡슐’

나는 음악가다. 노래를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 정확히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가수다. 집에서는 딸이자 동생이자 아내이자 엄마.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음악과는 뗄 수 없는 삶을 사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나의 노래 〈당신만의 BMG〉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저마다 다르게 닮고 있는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불러보아요. 당신만의 노랠 얼마나 갖고 있나요.’ 노래의 주인은 있지만 노래에 얽힌 추억에는 주인이 따로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많은 곡을 가지고 있을까.

어릴 때부터 아빠의 차 안에서 듣던 〈내 사랑 내 곁에〉는 아빠의 곡이고, 엄마가 자주 불러주던 〈유 아 마이 선샤인(you’re my sunshine)〉은 엄마의 곡이다. 버드 파웰의 앨범은 내가 처음 돈 주고 샀던 노래이고. 오늘 소개하고 싶은 이규호 1집은 내가 사랑하는 내 연인의 곡이다. 노래란 이렇게 소중한 사람을 기억하게 해주는 타임캡슐 같다. 문득 새삼스럽게 노래를 만드는 일이 고맙고 소중해진다.

이토록 음악은 인생의 즐거움을 기억하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이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걸까. 길고 긴 노래의 역사를 되짚자면 놀랄 일도 아니지만 요즘은 눈을 뜨는 순간에도 새로운 노래가 탄생하는 세상이다. 이렇게 많은 노래의 홍수 속에서도 새로운 노래가 만들어지는 까닭은 무얼까. 나는 왜 노래를 만들고 싶은 걸까.

그 질문의 끝엔 나를 이끄는 커다란 에너지, ‘사랑’이라는 단어가 있다. 내 노래엔 사랑 노래가 많다. ‘사랑’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자 나를 이끌어주는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래를 만드는 이유. 그건 바로 지금 내가 사랑하고 있다는 기록이다.

나의 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앞서 말한 나의 연인, 남편은 나와 같은 가수를 좋아했다. 처음 만나 “좋아하는 음악이 뭐예요?”로 시작된 두 남녀의 대화. 그는 싱어송라이터 이규호(윤종신의 〈팥빙수〉, 이승환의 〈세 가지 소원〉 등 수많은 명곡을 만든 작곡자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를 좋아한다고 말했고. 내 가슴속에선 짜릿한 스파크가 튀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이 입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규호라는 공통분모 하나로 연인이 된 우리, 〈머리끝에 물기〉라는 노래는 우리의 첫 만남을 기억하는 ‘사랑을 담은 타임캡슐’이 되었다.

‘장미꽃 한 송이에 조그만 메모질 끼워 별다른 얘긴 않고 장미꽃만 건네면 어쩌면 받을지도 내일이 오면 왠지 늦을 것만 같아. 다신 못 만날 것 같아. 기횐 한 번뿐.’

기회는 한 번뿐일지도 모르겠다. 인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더 열심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상대방에게 말해야 한다. 이 노래처럼 내가 만든 노래도 누군가의 인연에 조그만 도움이 되었을까. 누군가의 인생 한켠에 끼어들고 싶은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해본다. 인연을 이어주는 노래를 만들고 싶다. 이 글을 마치며 음악가로서 삶의 이유를 하나 추가해본다.

장미꽃 한 송이에 조그만 메모질 끼워

별다른 얘긴 않고 장미꽃만 건네면

어쩌면 받을지도

이런저런 생각에 걸어 지하철역까지

하마터면 무심코 지나칠 뻔했다가

다행히 제대로 찾아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우연히 지하철에서

서둘러 나온 걸까

머리끝엔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았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난 숨이 막힐 것 같아

열차는 이미 떠나가고 그녀의 샴푸 향기만

모두 떠나가고 텅 빈 지하철역엔

다음 열차시간 안내 방송만 메아리치네

내일이 오면 왠지 늦을 것만 같아

다신 못 만날 것 같아 기횐 한 번뿐



안복진 ‘좋아서하는밴드’ 멤버·싱어송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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