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기의 끝에 선 갸냘픈 두 남녀. ‘이퀄스’는 사랑을 가로막는 온갖 금기들 앞에 니아와 사일러스를 세워둔다. 인간이라면 감정이 있게 마련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감정을 질병이라 명한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는 이들은 치료를 받아야 한다. 니아와 사일러스가 사는 세계에서의 인간은, 개성이 무시된 물품들 같다. 대량생산에 의한 복제품 따위 같은 것.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건 치부에 해당된다. 이 세계에서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 니아와 사일러스는 병자이다.

이들의 병은 심각해진다. 감정과 육체를 나눌수록 병세는 심각해진다. 사랑 병이 깊어지는 이들은, 그들만의 위험한 결단을 내린다. 영화가 택한 설정은 비현실적이긴 하지만, 반대로 이 극한 상황 때문에 사랑은 좋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세계에서의 니아와 사일러스는 이브와 아담이다.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걸 '느낀' 이들은, 자연스럽게 본능대로 움직인다. 사랑은 감정과 육체의 뒤엉킴이다. 비현실적인 세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걸 처음 배운 이브와 아담은, 그들의 몸 속 깊이 내재된 씨앗을 심을 수 있는 공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감독 드레이크 도리머스는, 이퀄스라는 세계 속 위대한 발명가다. 모든 걸 백지화시킨 후, 인간들에게 가장 핵심이라 볼 수 있는 사랑이라는 씨앗을 퍼트린다. 그러면서 우리에겐 아주 익숙하여 당연시되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자연스럽게 받아온 사랑이 휘발됐을 때의 두려움을 인지시킨다. '사랑이 없다면? 나는 과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심장을 간지럽히던 물음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누군가와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다. 연애가 아닌 열애. 나는 열렬히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싶다. 이 영화를 보며, 사랑 없는 삶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느꼈기 때문이다. 그것을 갈망하는 남녀는 끊임없이 허덕였다. 사랑이 없는 삶은 바싹 마른 건초 밭이다. 나는 건초 밭 위를 걸으며 내 몸뚱이를 희생시킬 생각이 전혀 없다. 사랑을 범죄화시킨 이퀄스들의 세계에 총을 겨누고 싶었다. 이처럼, 이 영화는 감상자들로 하여금 사랑의 에너지를 자생하도록 만든다.

영화는 색 에너지를 적극 활용한다.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세계 위, 하지만 니아와 사일러스를 감싸는 색들은 통념적인 사랑의 그것들이다. 온화하고 사랑스럽다.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이는 장면들이다.

감독의 전작들을 모두 감상한 건 아니지만, 나는 ‘라이크 크레이지 Like Crazy, 2011’를 지인들에게 추천을 거듭할 만큼 좋아한다. 감독은 늘 금기를 설정해두고,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들을 다시 현실 위에 내려놓는다. 가장 뜨거운 열애와 가장 냉혹한 현실의 간극이 전하는 고통. 나는 이처럼, 고통 서린 영화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왜냐. 현실이니까. 현실이 행복의 얼개로만 짜여 있는 게 아니다. ‘라이크 크레이지’는 이 점을 잘 반영한다. 그에 반해 ‘이퀄스’는 '상대적으로' 희망적이다. 보다 사랑에 집중돼 있다.

영화를 보며 머릿속에 맴돌았던 영화가 있다. ‘더 랍스터 The Lobster, 2015’. ‘이퀄스’가 사랑을 가로막았다면, ‘더 랍스터’는 그것을 부추긴다. 어떠한 방법을 써서든 사랑을 해야만 하는, 강박의 로맨스다. 이 영화와 비교하며 감상하는 것도 권하고 싶다.

어찌됐든 사랑은 좋은 것이다. 감정의 에너지는 놀랄 만큼 위대하다. 이것의 정도는 설명으로는 곤란하다. 하지만 결론은 사랑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최다함(최따미) 광고대행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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