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 최종원, 왜 정치가 하고 싶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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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보궐 출사표 던진 배우 최종원 인터뷰

-배우 최종원이 정치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

-예술촌이 갑자기 테마파크로 바뀐 이유 납득 못해

-이광재 도지사 직무정지는 납득 안 가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0년 7월 5(월) 오후 6시

■ 진 행 : 정관용

■ 출 연 : 연극배우 최종원


▶정관용>네. 정치인으로 변신을 꿈꾸고 있는 배우 최종원씨, 어서 오십시오.

▷최종원>네. 안녕하세요. 최종원입니다. 반갑습니다.

▶정관용> 연극배우 출신이셨는데 드라마, 영화도 굉장히 많이 하셨죠?

▷최종원> 네. 했죠.

▶정관용> 저는 사극에서 열연하시던 게 기억에 남네요.

▷최종원> 왕과 비의 한명회라든가.

▶정관용> 그러니까요. 대표적 작품이 그건가요? 대표작을 꼽는다면?

▷최종원> 네. 뭐 왕과 비, 뭐 대왕세종도 있고. 영화는 뭐 영원한 제국이라든가. 사극을 많이 했습니다. 또 코미디도 많이 했고요. 연극에서는 대체로 무거운 역을 많이 했어요. 파워풀하고 서민을 대표하는 이런 대변하는 이런 역을 많이 했었는데 영화로 가면서 코메디를 시켜서 해서 참 무지하게 웃긴다. 좀 늙은 배우치고 저렇게 웃긴 사람 없다고 해서 한참 잘 팔렸죠.

▶정관용> 네. 그러니까 지금 연기 인생이 몇 년인 겁니까?

▷최종원> 한 40년 됩니다.

▶정관용> 40년. 그러면 몇 살 때 연기를 처음 시작하신 거예요?

▷최종원> 22살 무렵이죠. 물론 고등학교 졸업 후에 탄광생활도 했고.

▶정관용> 태백출신이시죠? 태백공고 나오셨고 탄광에서도 일 하셨어요?

▷최종원> 네. 뭐 굴 속에서 일했죠. 그리고 서울 와서 한 2년 방황을 하고 그리고 연극학교를 제가 선택했죠.

▶정관용> 배우하신 분들은 꼭 방황했다고 하더라고요. 한동안은.

▷최종원> 처음부터 배우를 하겠다, 생각했으면 괜찮은데요. 방황하다가 누구의 말 한마디에 방향을 바꿔서 흘러간 겁니다.

▶정관용> 오늘 최종원씨와의 긴 대화 인터뷰가 잘못하면 이상한 방향으로 갈 것 같습니다. 정치 얘기 조금 하고서 나중에 좀 있다가 궁금증을 계속 풀도록 하고요. 우선 이걸 하나 또 소개 해야 겠네요. CBS 라디오 진행자도 하신 적이 있죠?

▷최종원> 한 2년 반을 했습니다. 2년 반 동안 저랑 같이 했던 PD분은 하여튼 경고를 밥 먹듯이 먹고...

▶정관용> 왜요?

▷최종원> 제가 이제 좀 강한 톤이니까 이제.

▶정관용> 무슨 프로그램 하셨죠?

▷최종원> ‘행복을 찾습니다’... 장미화씨하고 둘이 2년 반을 했죠.

▶정관용> 한 10년쯤 됐죠, 그게. 좋습니다. 그런데 영월, 평창, 태백, 정선 ... 원래 이광재 강원도지사 지역구였는데... 도지사 당선돼서 이번에 재보궐 선거 하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민주당에서 영입제의를 언제 받으신 거예요?

▷최종원> 민주당에서 영입제의는 한 3~4일 전에 했고 그전에 한 또 4~5일 전에 도당에서 저한테 생각 없느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난 전혀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고 그랬는데 4일 동안 계속 전화오고 그래서요... 해 볼 수는 있는데 내가 지금 민주당원도 아니고 내가 뭐 해보겠다고 중앙당 복도를 헤매고 다닐 수도 없으니...

▶정관용> 그럼 후보로 확정하고 영입해라?

▷최종원> 그럼 한 번 뛰마. 그게 이제 3~4일 전이죠.

▶정관용> 오늘로부터 3~4일 전...

▷최종원> 네.

배우 최종원이 정치하기로 마음 먹은 이유

▶정관용> 왜 마음이 바뀌셨어요? 전혀 생각해 본적이 없다고 하다가.

▷최종원> 제가 4년을 고생해서 예술촌 만들려고 한 게 있습니다. 111억 예산이 나오고, 올해 33억원이 나왔어요. 장관 한마디로 와인바 집어넣고 사우나 찜질방 집어넣는 쪽으로 갑자기 설계 변경이 됐어요.

▶정관용> 그게 그러니까 폐광된 것을 재활용하는 그런 방식이죠?

▷최종원> 그렇죠. 그건 수평굴도 수직굴도 있고. 장관이 직접 또 방문을 했어요.

▶정관용> 장관이 누구죠?

▷최종원> 유인촌 장관이죠. 그래서 직접 수직굴에 한 600m까지 내려가서 보고 참 좋다. 잘 했으면 좋겠다고 그랬어요. 전 뭐 신경 쓸 이유도 없고 뭐 국회에서 통과해서 목적 사업으로 된 거니까.

▶정관용> 33억 예산이?

▷최종원> 예. 111억이.

▶정관용> 111억이. 그리고 금년도 분이 33억이다?

▷최종원> 네. 잘 됐으니까 전혀 신경 안 쓰고 뭐 장관이 다녀가는가보다 했어요. 또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촌에다가 111억 국고를 집어넣은 거는 없었으니까 유인촌 장관도 놀랐겠죠.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정관용> 어디였습니까? 위치가?

▷최종원> 정선군 고한읍에요. 삼척탄좌라는 게 있는데 그게 폐광됐죠. 그래서 정선군하고 다 얘기했고 강원도하고 다 했고 지역주민들하고 설명 다 했고 다 OK했는데 장관이 직접 내려와서 봤을 때는 정말 좋다. 잘 되길 바랍니다. 그랬는데 그 다음에 차관 내려 보내고 국장 내려 보내고 정선 군수 오라고 해서 보고해라. 왜 하려고 하느냐. 그래서 우리 지역의 연극인이 하려고 그런다. 그러니까 아니, 그 사람은 대학로에 수백 개 극장 있는데 그거 세우지. 산골까지 와서 하려고 그래요? 이러고는 예술촌은 수익성이 없다. 그러니까 테마파크 시켜라. 거기다가 와인바 집어넣고 사우나, 찜질방 집어넣어라. 이렇게 해서 갑자기 설계변경 들어갔죠.

▶정관용> 그러면 최종원씨는 완전히 그 사업에서 손 떼신 겁니까?

예술촌이 갑자기 테마파크로 바뀐 이유 납득 못해

▷최종원>그걸 찾으려고 지금 노력하지요. 그래서 그때 정선 군수 한나라당, 강원도지사 한나라당, 또 집권당에서 장관이 얘기하니까 반론을 제기할 이유도 없고 그래서 그냥 다 넘어 갔는데 제가 이광재 지사한테 만약 당선되면 그것을 되찾자.

▶정관용> 이 사업 되찾자?

▷최종원> 네. 또 정선군수한테도 내가 도와 줄 테니까 당선되면 뒤집자 해서 제가 선거 전면전으로 나선다, 하고 나셨죠. 그런데 두 분이 다 됐어요. 그래서 뒤집는 작업을 이제 하고 있죠. 아무리 중앙정부에서 해도 국회에서 떨어진 예산이 목적사업인데 갑자기 예술촌을 테마파크화 시키는 것도 문제고 그래서 또 각 장관이 지방정부에서 OK해서 된 부분을 임의대로 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저는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그래서 제가 뒤집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 선거 전면전에 뛰어들었는데 막상 저보고 출마 얘기를 했을 때는 내가 전면전에 뛰어들고 이광재 지사를 도와주고 강원도가 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였구요... 그게 정치인이 되기 위해서 한 건 아닙니다. 나는 지금까지 어느 후보라도 내가 판단했을 때 옳다고 생각하면 전국을 다니면서 도와주고 정말로 옳은 정치인들이 점점 나서서 나라도 발전시키고 국민들 좀 좋은 잘 살게 해주고 이런 생각이었어요. 또 어떤 상황이 끝나면 고맙다고 하고 그냥 좋았구요. 이런 기분으로 내가 지금 살아왔는데.

▶정관용> 정치인을 도와는 주지만 정치인이 될 생각은 없었는데?

▷최종원>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죠. 지금까지 연극인으로 연기자로 남이 도움을 필요로 했을 때는 떳떳하게 도와주는 입장에서 해왔는데요. 제가 막상 정치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생각을 안 해봤죠. 또 많은 선배님 가운데도 정치하신 분들이 있지만 저의 시각으로서는 부정적으로 봤고 그랬었는데 어떤 기자 분들이 이제 인터뷰를 할 때 만약 당신이 배우가 안 됐다면 뭐가 됐겠느냐고 묻더군요. 그때는 정치인 아니면 노동 운동가가 됐을 거라고 대답했어요.

▶정관용> 원래 정치에 관심이 많으셨어요?

▷최종원>사실은 어릴 때 정외과를 가고 싶었죠. 제가 태어난 곳이 탄광촌이고 광부들 노조운동도 일찍 봐 왔고요. 저보고 너무 성격이 직선적이고 톤이 강하다... 이런 얘기를 하지만 제가 살아온 배경 속에서 그런 성격이 구축이 된 거 라고 봅니다. 그래서 제가 연극하고 연극협회 이사장도 하면서 이것저것 일도 했는데요. 내가 그 자리 맡았을 때는 나의 명예이전에 한국연극인들의 대부로서 내 할 일을 한 번 해보겠다고 생각했었죠. 3년 임기 동안 아파트도 한 채 팔아먹었어요. 부모님 노후에 편히 사시라고 사 드린 아파트를 정리했죠.

▶정관용> 그렇게 몸담고 계신 그런 쪽에서도 공적인 역할을 주어지면 마다하지 않고 맡아서 열심히 하시고 그런 과정이 있었다, 그런 말씀이시죠?

▷최종원> 그렇죠. 그래서 어떤 지위에 있을 때, 대표성을 갖고 있을 때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 지 항상 생각했어요. 성격이 굵고 톤이 강해서요, 후배들 나무랄 때도 내가 잘못하면 너한테 맞을 각오로 하니까 오늘 너 한 대 맞아... 그렇게 했죠. 선배로서 덮어놓고 후배를 때린 게 아니라 내가 잘못하면 너한테 맞는다. 대신 오늘 네가 잘못했으면 맞아라, 뭐 이런 식으로 이제 해 왔죠.

▶정관용> 무시무시하네요.

▷최종원> 그전까지도 생각이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지금 옳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은 많이 했는데요, 마음 속으로 경멸도 하구요.

▶정관용> 경멸했었어요?

▷최종원> 네. 저런 사람들이 지금 뭐 하러 나왔을까? 어떤 생각으로 지금 저런 짓거리를 할까... 하는 생각. 또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안 하면 안 했지, 정치꾼은 되지 말자...

▶정관용> 저렇게는 안 하겠다?

▷최종원>네. 그리고 내가 만약에 당선 돼서 지역발전을 위해서, 지역에 있는 선후배들, 어르신들을 위해서 뭘 하면 저분들의 고통을 함께 나눠 갖고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런 자세로 한 번 해 보겠다. 그 말씀. 될 것 같습니까? 바로 어제이긴 합니다만 고향 분들도 계시고 하니까 민심을 좀 대해보셨어요? 어떻습니까?

▷최종원> 어르신들 가운데는 연예인이 뭘 그런 걸 하냐고 보는 그런 분들이 있고요, 젊은 쪽, 30~40대쪽에서는 토크쇼 나와서 하는 것도 많이 봤고 강직한 성격이라 하게 되면 제대로 할 것이다... 이런 쪽으로 저를 좋게 생각 해주시는 분도 있고요. 원래 지역정서가 어떤 거냐면 ... 원래 거기는 한나라당 정서입니다. 때문에 이광재 지사가 당선된 것은 선거혁명이었죠.

▶정관용> 예. 그래서 기대해 본다...이 말씀이시로군요.

▷최종원> 아니요. 기대해 본다는 게 아니고 한 번 붙자.

▶정관용> 붙자? 선거 운동에 대해서 우선 복안 같은 거 있으세요? 이렇게 한 번 해봐야 겠다. 선거운동을. 내 방식대로.

▷최종원> 네. 선거, 절 도와주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은 지역선거에서는 좀 노하우가 있는 분들입니다. 일단 돈 선거 안합니다. 법정 한도액이 있으니까 그거 조달하는 것도 힘들지만 일단 돈 선거는 안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만약 한다면 뭔가 새로운 어떤 선거풍토를 만든다는데 일조도 하고 선거혁명을 한 번 해보겠다. 그런 마음으로 지금 하고 있죠.

▶정관용> 선거혁명, 구체적인 어떤 모습 보여주시게요?

▷최종원> 저의 가슴을... 가슴을 전달시키겠다...

▶정관용>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게?

▷최종원>뭐 도와주시오. 이 한마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로 내 가슴이 전달될 수 있는 순간의 만남이라도 좀 그런 방법을 한 번 해 보고 싶다.

▶정관용> 진심을 담아서 하겠다...그런 말씀이시로군요. 사실 선거 정치와 인연을 또 맺게 되신 게 이번이 사실 처음이 아니죠.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 때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셨고 2004년 총선 때 열린우리당 비례대표로도 한 번 나서신 적 있어요, 떨어지시긴 했지만. 그 인연은 어떻게 된 건지 좀 말씀해 주세요.

▷최종원> 언론에서 문화예술계 대표해서 최종원이가 4번 정도는 받을 수 있다고 하더군요. 또 어느 때는 6번 받을 수 있다, 8번 받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언론에서, 저는 뭐 중앙당의 누구를 만난 적도 없는데 그런 얘기가 흘러 나왔죠. 그때 이광재 후보가 국정상황실장하다가 내려왔는데요, 사실 시골 폐광을 국정상황실장이 뭔지 압니까. 이광재 후보가 저를 만나더니 도와달라고 그래요. 그래서 정말 제대로 할 수 있느냐, 두 번 하겠다는 생각 하지 말고 정말 한 번에 네 몸을 던져라...

▶정관용> 이광재 도지사하고는 언제 인연이 시작되셨어요?

▷최종원> 2002년입니다.

▶정관용> 노무현 전 대통령님하고는 어떻게 또 인연이 되셨어요?

▷최종원>노무현 대통령께서는 경선 때부터요. 저를 인사동에서 만나자고 그래서 만나서.

▶정관용> 그게 처음 만남이었어요?

▷최종원> 문화예술인들 몇이 만났는데 만났더니 여사님도 같이 나오시고 거기에서 이제 강원도를 도와달라고 하세요. 그래서 제가 강원도지사입니까? 제가 힘이 있습니까? 뭘 도와줍니까? 그랬죠. 그랬더니 그래도 좀 도와달라고 그러세요. 그래서 딱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죠. 만약 당선 되시면 아직도 제대로 발전 못 한 이 강원도 내 고향 좀 도와주시고 그리고 폐광촌, 이건 좀 정책적으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문화예술계, 특히 공연예술계는 또 정책적으로 도와주세요. 이렇게 요구를 했더니 가만히 계시다가... 내가 만일 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시더군요. 해서 제가 손잡고 ‘내려갑시다!’ 했어요.

▶정관용> 그래서 선거운동을 도왔고.

▷최종원> 된 다음에 본선에서 또 도와달라고 하셔서 그래서 똑같은 조건 내걸었죠.

▶정관용> 그 열린우리당 그 얘기 좀 더 마무리 해 보세요. 아까 2번, 4번, 8번 얘기 나오다가...

▷최종원>네. 그래서 전 지금 그 생각하면 농간에 놀아난 것 같고 날 데리고 장난친 거 같고 그래요.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이광재 후보 선거운동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내일 비례대표 선거라고 올라오라는 거예요. 선거 운동 하다가 밤늦게까지 하고 이제 새벽에 도착하고 잠자고 나갔어요. 나가서 이래 보니까 쫙 앉아 있는데 정견발표 5분 하래요. 근데 할 말이 있어야지요. 내가 지금 선거운동 하다가 새벽에 도착해서 한 잠 자고 나오는 길인데 여기에 계신 분들 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분들이다. 저도 표 한 표를 얻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왔다. 그러니까 저도 도와주세요. 이러고 딱 내려왔죠. 2분도 안 채우고. 근데... 그 당시 차 타고 올라오는데 누가 당의장과 얘기해서 최종적으로 확인했다고 제가 20번이라는 겁니다. 그럼 되는 거니까 플랜카드를 100개를 만들어서 고향에 다 붙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전 내일이면 결정 날 걸 뭘 그리 조급하게 그런 짓을 하나 싶어 그냥 있었죠. 근데 그 때 결국 서른 몇 분인가 계셨는데 제가 꼴찌 했어요. 나중에 비화를 들으니까 더 신경질 나고 뭐 놀림 당했다는 생각도 있고...

▶정관용> 정치가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끼셨겠어요.

▷최종원> 그렇죠. 더 기분 나빴죠. 나쁜 자식들이란 생각도 들었구요.

이광재 도지사 직무정지는 납득 안 가

▶정관용> 예. 그런데 이광재 도지사 지금 취임하자마자 직무가 정지됐는데. 그건 참 가슴 아프시겠어요.

▷최종원> 그 자리에 있을 때 부패와 비리에 연류 됐다면 뭐 그 자리에서 직무정지하고 할 수 있는데 다른 사건이고 그리고 강원도민의 전체적인 의사로 투표를 해서 당선됐는데 그 일도 아니고 당선자로서 도지사로서 잘못된 게 아니라 그 전의 일로 도민들의 심판을 받았는데 그걸 직무정지라고 하면... 강원도민들 전체 지금 20만이 넘는 서명을 다 20만, 30만 정도 서명을 받아서 이제 제출했는데 이거는 강원도민한테 할 도리가 아니다... 아무리 법이 엄하다고 해도...

▶정관용> 납득이 안 된다?

▷최종원> 네.

▶정관용>그럼 직무정지 된 것도 이번 출마할 결심을 하는데 어떤 계기의 하나로 작용을 좀 했겠네요.

▷최종원> 이광재 도지사 직무정지 부분이 저한테 큰 작용을 했죠. 이 지사가 정치인으로 변신할 때 제가 같이 움직였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는데 직무정지라는 어떤 부분에서는 내가 이 지사가 완벽한 도지사로서 이 일을 해 나갈 때 옆에 어떤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뭐 이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좀 크게 작용했죠.

▶정관용> 그 점도 영향을 미쳐서 출마결심을 하게 됐다... 7월 28일 며칠 안 남았어요. 그죠? 오늘도 지금 태백에 있다가 오시는 길이세요?

▷최종원>네.

▶정관용> 또 끝나면 또 태백에 가시겠네요?

▷최종원>네. 뭐 좀 일찍 한 6개월 정도 시간을 두고 선거운동 마음대로 해라. 해서 검증 제대로 받고 또 나라는 인간이 누구인 것인가, 상대는 누구인 것이고 했을 때 가슴 열고 다 보여준 다음에 선택권을 국민들에게 준다면 더 좋겠는데 당도 그렇고.

▶정관용> 지금 어쩔 수 없죠. 상황이.

▷최종원> 어쩔 수 없죠.

▶정관용> 네. 문자로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는데요. 8578님 같은 경우는 최고의 국민배우 최종원 형님, 힘내시고 최고 정치인 되시길 빕니다... 라고 보내셨네요. 이렇게 격려하는 분도 있지만 9614님, 최종원씨, 연기는 존중하는데 정치는 접으시는 게 어떨까요... 라고 보냈습니다. 아직 선거도 안 치렀는데 벌써 접으라고 하는 분도 있네요. 5344님, 많은 연예인들이 정치를 하곤 했지만 인상적인 정치인은 없습니다. 인기를 발판 삼아 표를 모으는 게 아니라 정책이 궁금한데요. 어떤 발전책을 가지고 계신지요. 또 역시 전화로 민경휘님께서는 강원도를 위한 발전전략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지. 이런 질문이 나왔거든요. 짧게 답변해 주시죠.

▷최종원>글쎄요.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제 폐광, 석탄 합리화산업으로 인해서 폐광이 대체산업으로 나온 게 강원랜드 도박장인데 그게 지금 엄청난 이익을 올리면서 그 폐광지역에는 그저 작은 돈, 몇 푼씩 주고 또 우리나라 관광기금이라고 그래서 천억이 넘는 돈이 문광부로 들어옵니다. 대한민국 관광기금이에요. 폐광촌에 대체산업으로 들어왔으면 그 돈은 오히려 폐광 생계를 도와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폐광촌의 대체산업으로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정관용> 그런 정책을 한 번 추진해 보겠다?

▷최종원> 그런 것도 강력히 정부와 싸우고요. 공약은 아직 생각 안 해봤지만 무수한 공약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봅니다. 다 지키는 경우도 없잖아요. 그래서 한 가지만... 태백시면 태백시, 평창이면 평창, 이분들이 근본적으로 삶의 부분에 체감을 느끼면서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걸 개발해서 한 가지씩만 약속하겠다는 겁니다. 또 더군다나 이건 2년 반만 남은 자린데요... 못지킬 무수한 정치적 공약이 아니라 한 가지만 약속을 해서 내가 그걸 지키도록 최선을 다 한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죠.

▶정관용> 그 한 가지를 지금 아직 구체화시키지는 못하셨고?

▷최종원> 네 어제 결심한거라서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전화로 서울에서 4647번님께서는 가슴에 닿는 정치하시겠다고 했는데 지금 정치권과 어떻게 다른 정치를 하실 건지. 이런 질문도 있어요.

▷최종원> 제가 환갑이 지났습니다. 환갑이 지나고 외골수로 연기자의 길만 열심히 살아 왔고 30년 전세방 생활도 열심히 했고 서민들의 아픔이라든가 없는 사람들의 고통은 제가 누구보다 잘 알아요. 또 환갑 지난 나이에 이제 와서 당대표나... 한 번 더 하기 위해서 누구한테 아부 떨 일도 없고요. 제가 지금까지 큰 죄 없이 거짓말 안 하고 인생을 살아온 만큼 내가 약속한 부분이라든가 선후배,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서 내가 할 길이 무엇인가는 그것 한 가지만 갖고 인생을 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정관용> 좋습니다. 문자로 5260님께서 배우 정계 진출은 얼굴마담으로 인식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종원> 그렇게 많이 이용들 해 왔죠. 정치인으로 변신했을 때에 정치인다운 정치인으로 거듭난 분들은... 제가 뭐 이름을 거론하진 않겠습니다만 몇 분 안 되죠. 그래서 나머지 분들 볼 때는 안타깝고 또 같은 연기자로서 쑥스럽고 굉장히 기분 안 좋은 쪽으로 느꼈지만 한두 분은 굉장히 열심히 하셨다는 걸 느끼고 있죠.

▶정관용> 어떤 분입니까? 혹시 존경하는 정치인, 본받고 싶은 정치인이 있으세요?

▷최종원>이순재 선배님이 지역구를 갖고 계시면서 열심히 하셨는데... 당신 스스로 야, 나는 국회의원 체질에 안 맞더라. 그래서 포기하신 분이고요. 굉장히 높이 살만한 분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죠.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리고 9852님께서는 비례대표 후보 당시 느끼셨던 배타주의는 아직도 현존합니다. 당선되면 그 배타주의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또 스스로 정치색은 보수와 진보 중 어떤 것인가요? 이런 질문 들어와 있습니다.

▷최종원> 그 배타라는 게 어떤 걸 얘기하는 건지?

▶정관용> 그러니까 좀 아까 그러셨잖아요. 몇 번, 몇 번, 이런 식으로 나오고 또 뭐 당대표가 20번이라고 약속했다더라. 이런 얘기들이 나오는데 결국은 가보니 사실은 맨 뒤로 미뤄놨더라. 자기네들끼리 다 해 먹고 그런 거죠.

▷최종원> 제가 국회의원이 된 다음에 그런 건 제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용납 안 하죠. 철저하게 우리 편 너 밀어줄 테니까 네 편 좀 밀어줘. 이런 식으로 받아치기로 나눠먹도록 하는 그런 짓거리는 전 철저하게 좀 배제할 생각이지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6073님께서는 우리 최종원씨가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기여하신 바가 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정부, 참여정부의 한미 FTA, 스크린쿼터제 폐지, 이런 것 때문에 실망 안 하셨나요? 이런 질문도 들어와 있거든요. 그 앞에 스스로 정치색은 보수, 진보 중에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씀해 보시고.

▷최종원> 저는 진보고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스크린쿼터 이 문제는 저도 가슴이 아프고 또 그때 무슨 내막들이 있었던 것 같은데 스크린쿼터를 받아들이면 날짜는 줄여주고 받아들이면 우리가 몇천억을 지원한다든지.. 이런 걸 또 안 받아들인 부분도 있다.. 이런 얘기도 나중에 들리고요. 하지만 스크린쿼터는 우리가 끝까지 전부 반대한다는 건 조금 시장경제체제에 맞지 않다고 보고요. 일정 부분을 협상을 해서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막을 건 막고 대신 정부 정책에 어떤 한국영화의 활성화를 위해서 제작비 지원이라든가 이런 것들 좀 받아내고... 공존의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덮어놓고 반대만 하면... 이런 부분은 좀 서로가 반성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죠.

이광재 도지사 직무정지는 납득 안 가

▶정관용> 반대운동 한 분들도 좀 반성할 게 있고 정부도 반성할 게 있다고 보신다.... 좋습니다. 인터넷 레인보우 게시판으로 김형종님께서는 연기인으로서 현 정부 문화예술 정책에 대한 확실한 소신, 비판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이명박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최종원>지금 뭐 정책이라고 얘기 할 수 있는 부분은 아예 없다. 전무하다.

▶정관용> 아예 없다?

▷최종원> 이건 뭐 문방부 장관이라는 사람이 문화 정책을 21세기를 지향하는 이 시대에 어떻게 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어떤 정권의 완장을 차고 앞장서는 호위관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게 저희 같은 문화예술인으로서는 가슴이 아프고 또 노무현 정부 때나 김대중 정부 때 박지원 장관 시절에 문화부 예산이 전체 예산의 1%를 겨우 넘었습니다. 1.2%로. 그런데 지금 현재는 0.86%가 됐죠.

▶정관용> 다시 떨어졌죠.

▷최종원> 그래서 지금 더군다나 장관이 정신 못 차리고 지금 문화정책이라든가 옳은 어떤 정책을 써야지 우리나라 문화가 활성화 되고 21세기에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이런 깊은 고민이 없는 것 같고 굉장히 안타까운 쪽으로 흘러가니까 지금 이 정부의 문화정책이라는 것은 솔직히 너무하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뭐 비판은커녕 아예 없다. 비판할 가치조차 없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시네요. 좋습니다. 이 정도 정치 얘기했으니까 아까 얘기 다시 돌아가 가지고. 고등학교 나오시고 탄광에서 일도 좀 하시고 그때는 태백이 그래도 좀 풍족했나요?

▷최종원> 그때는 풍족한 정도가 아니고요. 그때 요즘 우리가 쉽게 얘기해서 기생집이라는 게 방석집 있지 않습니까. 전국에 돈 벌고 싶은 예쁜 아가씨들은 다 모였죠. 그리고 사장이 얼마나 넘쳐 났는지 역전에 저탄장에다가 탄을 쌓아놓잖아요. 그러면 이 사람이 당연히 굴에서 파가지고 쌓아놨는데 밤 사이에 이 탄을 훔쳐가지고 또 화차배정 받으면 또 사장이에요. 도탄업자. 그러니까 서로 사장이에요. 그래서 하여튼 돈이 뿌려지는 날이면...

▶정관용> 그만큼 풍족했다?

▷최종원> 네. 돈이 뭐 그냥 하늘로 날라다녔죠.

▶정관용> 옛날에 그런 말이 있었어요. 그쪽 가면 동네 개가 지폐 물고 다닌다고.

▷최종원> 대단했죠.

▶정관용> 그런데 왜 고향을 떠나셨어요?

▷최종원>고등학교 2학년 때 이제 둘째 형님이 29살에 이제 광산에 근무하시다가 돌아가셨죠. 탄광사고로. 정말 고학하다시피 한양대학교 공대 졸업하시고 이래가지고 참 제일 먼저 대장자리라는 걸 하셨는데 장가갈 나이에 돌아가신 겁니다. 그 형이 내가 너만큼은 대학 보낸다. 너 공부해. 항상 얘기하셨어요. 근데 그런 형님의 죽음이 충격이었던 거죠. 저렇게 열심히 정직하게 사신 분이 이렇게 가셨는데.. 대체 뭐가 옳은 인생인가 싶더라구요. 형 돌아가시고 나서 40일 넘는 시간 동안 학교를 안 갔죠. 뒷산에 가서 묘에 가서 드러누워 있고. 담임선생님도 뭐 야, 일주일만 더 있다 나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다 난 공고 광산과니까 뭐 힘나는 데까지 도끼 들고 삽질하고 하다가 월급 좀 받아먹고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고 애 생기면 살고 죽는 게 인생이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땐 결석이 전교에서 두 번째로 많았어요. 방학 빼고 순수 결석이 72일 이렇게 됐으니까. 그때부터 이제 좀 그랬죠.

▶정관용> 그리고 졸업하고 바로 탄광으로?

▷최종원> 네. 탄광에 들어가니 까까머리가 그 광부 어른들하고 매일 술 먹고 그리고 또 지나가다 보면 또 젊은 애들이 여자랑 지나가는 걸 못 봐줬으니까. 그럼 또 불러서 이제 해꼬지하고 패기도 하고 이러면서 겁주고.

▶정관용> 거의 건달이셨군요. 그러니까.

▷최종원> 그렇진 않고요. 그래서 노상 그러고 1년 동안을 쌈박질 하고 그러니까 하루는 아버지가 부르세요. 저는 아버지한테 한 대도 맞은 적이 없어요. 그런 분인데 저한테... 얘, 너 있지. 너 죽어라... 그러세요. 그래서 속으로는 아니, 왜 죽으라는 거야. 뭐 부모가 이래. 그래서 내가 가만히 있었더니 죽더라도 나가 죽어라... 그러세요. 그 말씀에 며칠 또 방황했죠. 그러다가 이게 아니구나 싶어서, 며칠 고민 끝에 떠나기로 한 겁니다.

▶정관용>서울로 가자?

▷최종원>아버지도 나가 죽으라고 하시니.. 떠나자. 그 때 서울에서 누나가 서라벌 여대 문창과를 다녔어요. 그 누나도 대학 등록금 없어서 간호사로 이제 돈 모아가지고 이제 늦게 갔는데 둘이 하숙을 했죠. 그러다가 대학가겠다고 매일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코피도 흘렸어요. 그럴 땐 아주 희열을 느끼고 이제 드디어 공부가 좀 되나 싶었죠.

▶정관용> 그때는 정말 열심히 하셨어요?

▷최종원>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워낙 밑바닥이 약해가지고요. 외우는 건 괜찮은데 영어, 수학이 안 되죠. 그걸 따라갈 수 없으니까 그래서 한 번 두 번 좌절, 그땐 뭐 입학시험도 검정고시도 없었습니다. 원서 집어넣으면 웬만한 대학은 인원 인원미달이니까 들어갈 텐데 또 고집을 좀 내봤죠. 그래서 떨어지고. 그래서 한 2년을 방황하는데... 도저히 못 살겠더라구요. 또 서울에서 사귀는 친구들과 대화가 안 통했어요. 그 친구들이 괴로워하는 이유를 모르겠더라구요. 제가 살아온 곳, 탄광촌에서의 인생에 비교하면 잘 이해가 안 갔죠. 내 고향에서 너희들이 아픔으로 느끼는 그건 이 자식아 일상생활이야... 이렇게 생각했어요. 나는 어릴 때부터 기쁨보다는 슬픔부터 알았어요. 상갓집에 가서 국수주고 떡 주고. 아무 의심 먹다가.

▶정관용> 탄광사고가 워낙 많았으니까요.

▷최종원> 그때는 뭐 매일이죠. 그러니까 서울 애들하고 접근이 안 돼요. 어떤 때 얘기 듣다보면 이 자식이 날 속이는 것 같고 사기 치는 것 같고 이런 느낌. 저놈은 굉장히 가슴을 열지 않네. 우리는 한 번 열면 팍 주고요, 그 다음에 아니다 싶으면 평생 닫아요. 그렇게 사는데 접근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내가 내려갈래. 누나한테 나 내려가서 광부 땅 파고 하다가 내가 하다가 죽을게 그랬어요.

▶정관용>다시 고향에 가겠다?

▷최종원>그러니까 누나가 야, 우리 술 한 잔 할래, 그래요. 그래서 둘이 사홉들이 한 병을 딱 갖다 놓고는 이제 먹다가 모자라서 사홉들이 한 병을 더 가지고 왔죠. 그때 누나도 참 잘 먹었어요. 둘이 적어도 두 살 차이인데 둘이 사홉들이 한 병씩을 딱 까는데 누나가.. 야, 너 연극을 안 해 볼래? 그래요. 앞으로 우리 시대는 개성의 시대가 될 거니까 너 연극 안 해볼래? 그러더라구요. 물론 전엔 생각도 해본 적 없었죠.

▶정관용> 누님이 소질을 알아보신 겁니까?

▷최종원> 그래서 이제 입학원서를 사왔어요. 서울예술대학. 그래서 제가 너는 4년제 다니고 나는 2년 다니란 얘기냐? 했더니 연극은 여기가 제일 좋다고 그러세요. 그런데 또 그날 저녁에 또 누나랑 싸우고 원서를 찢어버렸어요. 그런데 다음에 또 누나가 원서를 사와서 넣은 거죠. 누나의 말 가운데.. 개성의 시대란 말... 그게 뭔 말인지 몰랐지만 그거 묘한 말이네... 이렇게 생각하면서 방향을 튼 게 제 인생이 된 거죠.

▶정관용> 그리고 가서 배워보시고 조금 해 보시니깐 아, 이게 천직이겠다. 그런 느낌 오셨어요?

▷최종원>해보니깐 야, 체질에 맞구나. 땅 바닥 뒹굴고 막 덤블링하고 막 하는 게 날 던질 수 있는 작업이구나. 그래서 그 때부터 이제 심취해 들어갔죠. 그래서 오직 내 인생은 이것밖에 없다. 그러면서 이제 하면서 결혼도 했고 나중에는. 군대 갔다 오고... 제대 하는 날 선배들 연극하는데 찾아가서 우리가 할 일 없습니까 하고 물어서 전단지 3만장을 라면 값 받고 종로 광화문 지하도에 풀고 그랬어요.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만큼 이제 열과 성을 다해 하신 거네요. 완전히 푹 빠져서. 그런데 배는 고프셨잖아요. 연극인생이라는 게.

▷최종원> 네. 뭐 배는 고팠지만 뭐 지금 생각하면 마누라하고 애들한테 미안하다는 생각 들지요. 제가 그랬어요. 생활비 얘기 꺼내면 부엌가서 식칼 가져오라고 그랬어요. 내가 지금 당장 돈 필요하다면 갖다 줄게. 밖에 나가서 칼 들고 가서 갖다 줄게... 했어요. 나한테 그따위 얘기하지 마. 정 살기 어려우면 가. 집에 가. 그랬더니 그다음부터는 조용하고. 인간 같지 않은 놈 많나 고생했죠.

▶정관용> 그래도 후반부는 괜찮으셨지 않아요? 유명해지시고 나서?

▷최종원> 딸내미 대학 등록금 때문에 이제 텔레비전를 하게 됐죠. 그때 야, 등록금 얼마나 하냐... 했더니 딸이 한 300 할 걸.. 그래요. 그 300에 이제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해서...

▶정관용> 알겠습니다. 말씀 하나하나 듣다 보면 오늘 밤을 새워 인터뷰를 해야 될 거 같은데 방송시간이 다 됐습니다. 그렇게 해서 천직인 연기를 만나 40년의 연기인생을, 지금은 정치인으로 새로운 시도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 또 가슴에 닿는 정치를 하겠다. 하신 말씀 아마 당선되시면 몸소 실천하셔서 국민들 앞에 새로운 감동을 주시길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최종원>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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