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식의 알바트로스] 위기 극복 스포츠, 골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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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은 마스크 뒤로 꽁꽁 숨었다. 웃음뿐 아니라 희로애락의 감정이 모두 하얗고 까만 마스크 뒤로 자취를 감췄다. 어디서 파고들지 모를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으로 두 눈만 멀뚱멀뚱 세상과 소통하고 있다. 웃는 듯 우는 듯 '마스크 얼굴'은 인간 표정이 사라진 어느 미래의 인조인간 모습 같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봤던 그 디스토피아의 미래 말이다.

인간이 '바이러스(virus)'란 존재를 알게 된 건 19세기 후반이라고 한다. 바이러스가 라틴어로 독을 뜻한다는 것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널리 퍼진다는 뜻을 담고 '희망 바이러스'니, '웃음 바이러스'니 했던 말들이 썩 적합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코로나19의 창궐은 인간이 쌓아온 보편적 선과 가치를 산산조각 내고 있다. 마스크 속에 감춰진 얼굴만큼이나 서로를 믿지 못하고 불신이라는 정신적인 악성 바이러스가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가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했던 낯선 공포에 질려 있다. 프로 스포츠를 비롯해 많은 부분이 멈추고, 경제지표는 암울한 전망만 쏟아내고 있다.

평소에는 사치 스포츠로 천대받지만 국민이 힘겨워할 때면 늘 힘이 되고는 했던 것이 골프였다. 20년도 더 이전에 외환위기가 왔을 때 박세리란 걸출한 스타가 등장해 희망을 전했던 스포츠가 골프다. US여자오픈에서 하얀 맨발을 드러내고 해저드에서 쏘아올린 그 공은 바로 '희망' 자체였다.

골프는 어느 종목보다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한 스포츠다. 심판 없이 경기하다 보면 양심을 저버리고 싶은 순간도 찾아오지만 그 유혹을 이겨내고 진정한 승부를 가리게 된다. 간혹 양심을 저버린 이들이 나오지만 그들은 철저히 골프란 공동체에서 배척된다. 골프는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동질감을 느끼고 소통하며 사회적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였다.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골프의 정신을 찾아야 할 때다.

골프 속에서 위기 극복의 지혜도 찾을 수 있다. 골프를 하다 보면 150m는 족히 넘는 해저드를 넘겨야 하는 위기도 오고, 틈이 거의 보이지 않는 나무 사이를 뚫고 샷을 쏴야 하는 위기 상황도 맞는다. 자신의 키보다 훨씬 높은 벙커 턱을 넘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도 찾아온다. 그 위기를 넘기면서 실력이 늘어 나고, 멘탈도 강해진다.

코로나19의 습격으로 사방이 위기로 둘러싸인 세상. 하지만 위기를 맞은 인간은 강해진다. 인간의 역사는 투쟁의 역사였고, 그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그만큼 인간은 위대한 존재다. 그 위대함을 지탱해준 신뢰와 믿음이 하찮은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쪼그라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에 대한 두터운 믿음을 가져야 하고, 양보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무장해야 한다.

지금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이 한창이다. 이러다가 마음의 거리마저 멀어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살짝 들지만 상대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골퍼들도 골프장에서나 골프연습장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운동에 최대한 참여하고 있다.

골퍼들은 지금 모든 바이러스를 지구 밖 OB구역으로 날려 보내는 호쾌한 장타를 꿈꾼다. 그리고 마스크 뒤로 숨어버린 웃음을 끄집어내고 싶어한다.

[오태식 스포츠레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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