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문화] 역병 속에서 피어난 문학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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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카뮈의 ‘페스트’ 등 / 역병에 고생하는 사람 위해 써 / 인류의 사투·극복과정 보여준 / 문학의 힘, 되살아나길 믿어

이탈리아에 조반니 보카치오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탈리아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그는 고금의 온갖 이야기를 모으고 자신이 윤색하고 창작도 하는데 그것이 세계 어느 나라에 가도 있는 ‘세계문학전집’에 들어 있는 데카메론이라는 소설집이다. 1349∼51년에 쓴 것으로, 데카메론은 ‘10일간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그는 머리말에다 역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불행한 사람들의 고뇌를 덜어주기 위해 이 책을 쓴다고 말하고, 1348년의 페스트에 관한 기술로 서화(序話)를 시작한다.

페스트를 피해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옮겨온 숙녀 7명, 신사 3명이 10일간 체류하면서 오후의 가장 더운 시간에 나무그늘에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한 사람이 한 가지씩, 하루에 열 가지 이야기를 하고는 헤어진다. 헤어지기 전에 다음날의 주제를 정한다. 10명이 매일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므로 100가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이야기가 대체로 남녀상열지사나 자유연애담이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진한 연애담이 세계명작의 반열에 오른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하나 든 생각은 14세기 유럽사회에 이렇게 음란서생과 음란여성이 많았나 하는 것이었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시인
책을 다 읽고 이렇게 정리했다. 보카치오는 역병이 가라앉고 나면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텐데, 그때 그들에게 무엇을 읽힐 것인가 고민하다가 사람들이 가장 흥미를 느낄 이야기를 수집하기로 했다. 서양판 ‘고금소총’인 데카메론은 생명력의 원천이 에로스임을 말해주는 책이다. 유럽 인구의 절반 내지 삼분의 일이 그때 죽었다. 그러므로 다시 인간이 인간을 낳고 번성해야 할 텐데 그때 도움이 될 책을 쓰고자 했던 것이다. 이 책의 가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뮈의 ‘페스트’가 있다. 이 소설 또한 제2차 세계대전의 포화 아래서 구상되었고 씌어졌다. 7년 세월이 걸려 탄생한 이 소설은 1947년에 출간되었는데 그때 카뮈의 나이 서른네 살 때였다. 친구의 부인이 장티푸스로 죽은 것이 집필하게 된 첫 번째 계기였다.

페스트 창궐로 외부와 단절된 가상의 도시 오랑에는 세 명의 주요인물이 있었다. 파늘루 신부는 “페스트는 신의 재앙(fleau)이지만, 신이 원한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악과 타협했기 때문에 회개를 촉구하기 위함이다”라고 말한다. 의사인 리유는 신부의 말을 듣고 “이 아이는, 적어도 아무 죄가 없었습니다”라고 외친다. 전자는 신앙심에 의거해 기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후자는 병과 싸우는 것이 신이 원하는 길이라고 맞선다. 재앙이 왔을 때 어떻게 그에 반항해야 하는지 리유는 잘 아는 사람이다. 신부는 리유의 말에 동의해 병마와 싸우는 ‘행동’으로 나선다.

기자인 랑베르는 운이 없어 오랑에 머물게 되었기에 애인이 있는 곳으로 탈출하고자 백방으로 애쓴다. 마침내 차편을 구해 도시를 떠날 수 있게 되자 태도를 바꾼다. 방관자에서 참여자로 바뀐 이유가 “혼자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뮈가 이 소설을 쓴 이유가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인 중국인 의사 리원량이 한 일은 쉬쉬하는 중국 당국에 맞서 질병의 실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이 질병과 싸워야 한다고. 우리나라에도 수많은 의료계 종사자들이 밤낮없이 전대미문의 병과 싸우고 있다. 카뮈는 병과 싸워 이긴 오랑시민들을 이렇게 묘사했다.

“도시 전체가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 고통의 시간은 종말을 고했지만 망각의 시간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고 있는 그 벅찬 순간을 축복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광장마다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다. 지체 없이 교통량이 현저하게 증가되어 수가 늘어난 자동차들은 사람들이 밀려든 거리거리를 간신히 통과하고 있었다. 시내의 모든 종들이 오후 내내 힘껏 울렸다.”

오랑시민들은 합심하여 페스트와 사투를 벌여 결국 이긴다. 지금 우리 인류가 바이러스와 싸워 물리칠 수 있을까? 이겨야 한다. 역병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보여준 문학의 힘, 문학의 부활을 믿고 싶다.

이승하 중앙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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