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위성정당 ‘역병’ 창궐…총선 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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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20. 오후 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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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창궐하고 있는 것은 코로나바이러스만이 아니다. 거대 양당이 만들어 낸 기상천외의 ‘위성정당’들과 거기에 몰려든 개인과 집단들이 역병처럼 창궐하고 있다. 전자가 우리의 허파와 신체를 좀먹고 파괴한다면, 후자는 우리의 헌법 질서를 능멸하고 파괴하고 있다. 박근혜 집단이 사익을 취하기 위해 국정을 농단했다면, 이들은 사익을 취하기 위해 헌정을 농단하고 있다.

헌법은 국가 권력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가를 정해놓은 원칙이다. 국가가 신이나 혈통과 같은 신비적인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이들로부터 복종을 얻어낼 수 있는 권위를 가지려면, 스스로가 주권자인 국민들의 ‘일반의지’를 표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구성의 시발점이 되는 각급 선거는 따라서 국민들의 ‘일반의지’가 최대한 투명하고 정밀하게 발현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사전에 마련된 원칙과 절차를 한 치도 틀림없이 준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 과정을 흐트러뜨리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은 행정부의 행위를 농단한 ‘국정 농단’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훨씬 중대한 범죄인 ‘헌정 농단’을 행하는 자들로서 척결되어야 한다.

이런 짓을 저지르는 개인을 우리는 선거사범으로 단죄한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일개 개인이 아니라 20대 국회를 지배했던 거대 양당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이러한 선거 절차의 합리성과 정당성을 파괴하는 포복절도할 사태이다. 17대 국회 이래로 우리는 선거구제의 한계로 인해 투표로 나타난 국민들의 정당 지지가 의석 구성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별개의 정당 투표를 행해왔다. 이번에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이 두 가지 투표를 ‘연동’하여 그러한 국민들의 정당지지 분포가 더욱 충실히 반영될 수 있도록 30석의 의석을 따로 배분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즉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개인임과 동시에 특정 정당의 대표라는 2중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두 가지 투표를 연동하는 것이므로, 이 제도의 가장 근간이 되는 원칙은 모든 정당들이 이 두 가지 투표에서 철저하게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드는 것은 이러한 법의 정신을 대놓고 능멸하는 짓이다. 동일한 정당을 두 개로 찢어놓고 선거에 나오는 것은 멀쩡한 부부가 부채를 모면하거나 수급을 더 타내기 위해서 위장 이혼을 벌이는 짓과 동일하다. 아니 훨씬 나쁘고 파렴치한 짓이다. 이 ‘위성정당’들은 자기들의 이혼이 ‘위장 이혼’일 뿐 여전히 자기들은 잉꼬부부라고 떠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벌어지는 선거는 목불인견의 난장판으로 변해 있고, 국민들은 어느 당이 어느 당과 내연 관계인지 또는 아예 결혼할 예정인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이며, 선거가 끝난 뒤에 그 ‘위성정당’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도 전혀 모르는 깜깜이 상태에 처해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선거를 연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거대 양당은 예정대로 선거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그리고 이 끔찍한 난장판이 자아내는 구역질 때문에 이번 선거는 투표율이 아주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니 헌정 질서니 하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소수의 맹목적 지지자들만 단단히 결집시켰을 때 오히려 의석을 더 많이 쓸어 담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있을 것이다. ‘위성정당’ 사태는 거대 정당들이 오히려 투표율이 낮아질 것을 유도하는 상황을 낳은 것이다. 이는 결코 정상적인 헌정 질서의 선거라고 할 수 없다.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연기하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위성정당들’을 정말로 합법적인 정당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다시 명확히 판단하고 국민들 앞에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거기에서 부당한 결과가 나온다면 법원으로 가야 한다. 이 파탄 나버린 선거법 또한 국회에서 철폐하도록 해야 하며, 헌법재판소로 가서 위헌 여부를 따져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지독한 논쟁과 진통을 겪을 것이며 충분한 숙고와 국민적 합의의 형성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때까지 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무기한 연기되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총선이 강행된다면, 우리 국민들은 진보와 보수를 넘어서서 이 ‘헌정 농단’의 현장을 단죄해야 한다.

기억하라. ‘국정 농단’을 저지른 박근혜 일당이 촛불의 함성에 어떻게 쫓겨났는지를. 총선은 300명의 ‘선량’들에게 벼슬자리를 안겨주는 노름판이 아니다.

홍기빈 칼폴라니 사회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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