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프리뷰]비행-20대 탈북자와 전과자의 두려움과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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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8. 오전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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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비행 (Dreamer)

제작연도 2018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89분

장르 드라마, 범죄

감독 조성빈

출연 홍근택, 차지현, 장준현, 윤정욱, 종호 외

개봉 2020년 3월 19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써드아이비디오

한동안 유행처럼 학생들의 졸업작품이 크게 주목받으며 극장 개봉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조성빈 감독의 〈비행〉 역시 청주대 영화학과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영화다. 애초에는 두 명의 취업 준비생이 수억원어치의 마약을 손에 넣게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단편영화를 생각했다. 하지만 처음 기획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확장되면서 장편영화로 덩치가 커졌다.

이제 막 사회에 정착한 탈북자 근수(홍근택 분)는 지원금을 받기 위해 미용학원에 다니지만 그리 적성에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썰렁한 임대아파트와 학원을 오가는 일상은 막막하고, 외로운 그에게 지금 가장 절박한 것은 중국에서 헤어진 형의 안부를 확인하는 일이다. 이즈음 학원에서 만난 동갑내기 성일(장준현 분)이 손을 내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은 순수한 호의가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한편 손버릇이 좋지 않은 중국집 배달부 지혁(차지현 분)은 오늘도 사장에게 밀린 월급을 독촉하다가 마지못해 배달을 나간다. 전과기록이 있는 그는 어서 돈을 모아 외국으로 이민을 하겠다는 꿈으로 하루하루를 버티지만 현실은 비정할 뿐이다. 어느 날 근수의 집에 짜장면을 배달하러 간 지혁은 새 운동화를 슬쩍하다가 들키는 바람에 몸싸움을 하고, 이를 계기로 엮이게 된 두 사람은 목돈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잠시 의기투합하게 된다.

투박하지만 강렬한 2030세대의 만화경

영화 〈비행〉의 전체적인 호흡이나 전개는 꽤나 투박하다. 기성 상업영화의 화려한 기교나 트릭은 없지만 그만큼 주제를 밀고 나가는 뚝심 하나는 묵직하다. 여기에 마약밀매라는 위험한 소재까지 과감히 접목함으로써 단순한 사회드라마를 넘어서는 범죄 스릴러의 장르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목숨을 건 인물과 어떻게든 한국을 떠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인물이 어쩔 수 없이 함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모순된 상황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 사이에 인간적 이해나 유대까지 기대하지는 않는다. 냉정한 현대사회의 이면은 영화 속 풍경만큼이나 차갑고 건조하게 전개되고, 그들에겐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성장이나 깨달음의 기미는 묘연해 보인다. 애초 탈북자와 전과자라는 사회의 소외계층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있는 것부터가 보는 이의 마음을 헛헛하게 만든다. 하지만 ‘젊음’이라는 재산 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그들의 암담한 현실, 그리고 불 보듯 뻔한 파국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서는 그릇된 행보는 보는 이들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든다.

여기에는 아직 관객에게는 낯선 배우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가 큰 몫을 차지한다. 한겨울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전속력으로 오토바이를 달리고, 맨발로 시내를 활주하는 그들의 노력은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고 나아가 관객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일조하고 있다.

쉽지 않은 현실 품고 있는 작품

조성빈 감독은 ‘하늘을 날다’라는 뜻과 ‘잘못된 행위’란 두 가지 뜻으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비행’이란 제목에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대니 보일 감독의 〈트레인스포팅〉(1996)을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꼽는 그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피해 무작정 내달렸던 20대의 불안과 절박함을 작품 속에 녹여내고 싶었다. 하지만 극 중 두 주인공의 치열한 행적이 그랬던 것처럼 현실의 과정도 녹록지만은 않았다.

감독은 자취방 보증금을 털어 제작비를 마련했다. 촬영은 2016년 1월부터 2월에 거쳐 매서운 한겨울의 복판에서 진행됐다. 그러나 촬영이 종료된 직후 가편집본에 만족하지 못했던 감독은 생계를 위해 서울에 올라와 광고제작 등의 활동을 하며 꽤 오랫동안 영화의 완성을 미뤄두고 있었다. 이듬해 짧은 여행을 하며 얼마 남지 않은 20대가 다 가기 전에 영화를 편집해 끝을 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렇게 영화는 완성됐다. 그렇게 시작부터 끝까지 직접 몸으로 부딪혀가며 작품을 빚어낸 감독은 연출은 물론이고, 각본과 편집까지 직접 담당했다.

2018년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한국 경쟁 부문에 출품되어 처음 소개된 이 작품은 CGV아트하우스 배급지원상을 수상했다. 이후 다시 2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야 비로소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극장으로 바로 간 졸업작품들



과거 영화학과의 졸업작품이라 하면 단편이 당연하게 생각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1990년대 소위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거치고 영화산업의 기대와 투자의 규모가 커지고 더불어 교육시설들의 여건이 뚜렷하게 보강된 2000년대 중반을 넘어서며 새로운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실습·졸업작품이 아예 장편의 길이로 제작되고 소재 면에서도 대중적 흡입력을 지닌 완성도 있는 작품들이 만들어지면서 바로 극장에서 개봉하기 시작한 것이다.

써드아이비디오


2005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는 이런 경향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기억된다. 중앙대 영화학과 졸업작품으로 제작된 이 작품으로 이름을 알린 배우 하정우는 이후 윤종빈 감독과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가며 대스타로 성장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장편연구과정은 한국영화아카데미 정규과정 졸업생을 대상으로 장편영화를 완성하는 심화프로그램으로 제작 전반과 개봉까지 전략적으로 지원했다. 〈파수꾼〉(2010), 〈잉투기〉(2013), 〈소셜포비아〉(2014),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2014) 등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2016년 개봉해 좋은 평가를 얻은 김대환 감독의 〈철원기행〉 역시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졸업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작품이었다. 박정범 감독이 연출한 〈무산일기〉(2010)는 동국대 영상대학원 졸업작품이다. 감독은 대학시절 만난 절친한 친구였지만 암으로 세상을 떠난 탈북자 전승철을 추억하며 영화를 만들었다. 탈북자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과 감독이 연출뿐 아니라 제작·각본까지 일인다역으로 완성했다는 점에서 〈비행〉과 많은 유사점을 보인다.


최원균 무비가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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