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하차벨 서로 미루고, 출입문 손 대신 어깨로 열어…‘거리두기’가 바꾼 일상 [‘코로나19’ 확산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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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06. 오전 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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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엘리베이터 버튼 면봉으로
ㆍ다른 사람 안 기다리고 ‘쌩’
ㆍ“배려 사라진 것 같아 씁쓸”
ㆍ“확산 막으려는 것” 시각도

충남 천안시 불당동의 한 아파트 승강기 안에 버튼을 누르는 과정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노출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한 아파트 주민이 갖다놓은 소독한 면봉이 있다. 연합뉴스



버스 하차벨 미루기, 출입문 어깨로 열기, 공용자전거 안 타기, 담뱃불 안 나누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면서 시민들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다. 서로 돕고 배려하는 것까지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쳤다. 특히 코로나19의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의 직간접적인 접촉을 피하고,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시민들 사이에서 ‘작은 신경전’이 자주 빚어진다.

지난 4일 오후 대전 유성구 유성온천역 버스정류장에서 승차한 ㄱ씨(54)는 하마터면 집 앞 정류장에서 하차하지 못할 뻔했다. 하차 승객 4명 중 누구도 벨을 누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나는 솔직히 사람들의 손이 자주 닿는 벨을 만지고 싶지 않아 누르지 않고 있었다”면서 “다른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요즘 시내버스에서는 2인용 좌석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통로 쪽에 앉아 버티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코로나19를 막기 위해 강조되는 ‘거리두기’ 때문에 옆에 다른 사람이 앉는 것을 막아보려는 심리로 풀이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이용하게 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시내버스 하차벨 미루기’와 비슷한 신경전이 수시로 발생한다. ㄴ씨(24·서울 은평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엘리베이터를 먼저 탄 사람이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해 열림 버튼을 눌러 기다려주곤 했는데 요즘에는 그런 배려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아파트에서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데 쓰라면서 부녀회나 주민들이 면봉을 비치하는 일까지 생겼다. 온라인 등에는 이쑤시개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는 글과 사진이 올라오기도 한다.

공공기관이나 빌딩·아파트 등의 출입문을 열 때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손으로 문을 열고 나서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일정시간 기다려주는 것이 일반적인 매너다. 하지만 요즘은 문 손잡이를 접촉하지 않으려는 일부 시민들이 어깨나 팔로 문을 열고 혼자만 들어가버리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시민 ㄷ씨(53)는 “뒤에 오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사라져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따릉이’(서울)나 ‘타슈’(대전) 같은 공용자전거를 이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늘고 있다. 다른 사람이 오래 접촉하게 되는 공용자전거를 가능한 한 만지지 않겠다는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우리나라에서 ‘담배 인심’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하지만, 요즘은 ‘담뱃불 나누기’조차 꺼리는 풍조가 역력하다. 흡연자인 ㄹ씨(56)는 “담배라는 것이 입을 통해 즐기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불을 나누는 행위 자체를 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싸워야 하는 위기상황에서 발생하는 이런 현상을 반드시 이기적인 행위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고 본다. 사회적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개개인이 벌이는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이 버스나 엘리베이터에서 버튼 누르기를 최소화하는 행동의 배경에는 자신도 코로나19의 사회적 확산을 막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코로나19 사태 이전에 있던 타인과 사회에 대한 배려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이어 “이번 사태가 진정되면 이런 행동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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