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클이 연구하던 시절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지금, 온라인 세계와 실제 세계는 어떻게 연결되고, 스며들고, 분리되고 있을까? 이제 우리는 카톡 대화에서 이모티콘으로 웃음 짓는다고 해도 상대가 실제로 웃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으며, 인스타그램에 그림 같은 점심식사 사진을 올린다고 해도 그 사람의 하루가 그림같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날 갑자기 페이스북의 친구로부터 삭제를 당하면 세상 밖으로 떠밀려난 것 같은 고립감을 느끼고 메신저에서 모욕을 당하면 맞대면한 상태에서 뺨을 맞은 것 같은 분노감에 몸을 떤다. 온라인공간에서의 다툼이나 따돌림이 현실의 폭력사건으로 번지거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얘기들은 이제 낯설지 않다. 사이버공간과 현실의 삶은 씨실과 날실처럼 치밀하게 직조되어 우리의 생활세계가 된다. 사이버(cyber)를 가상(假想)이라고 여기기에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실재하는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람이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시기에, 엿새 만에 4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이버공간에 모였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라고 불리는 성착취, 성폭력 사건의 용의자는 물론이고 가입자 전원의 신상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쏟아냈다. 이 분노는 밝혀진 미성년 피해자만 16명인 극악한 성착취,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일시적 폭발이 아니다. 우리의 생활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무법천지처럼 방치되어왔던 사이버공간의 생존권에 대해 사람들이 힘을 합해 “그만!”이라는 경고음을 쏘아올리고 있는 것이다.
국민청원의 요구에서 두 가지에 주목한다. 첫 번째는 익명성 뒤에 숨어있는 모든 가담자들을 실제세계로 끌어내자는 것이다. 피해자들이 차마 다시 말로 옮기기도 끔찍한 성착취와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가해자들의 요구에 굴복했던 이유는 가족이나 친지에게 알리겠다는 협박 때문이었다. n번방, 박사방 등을 만든 사람은 물론이고, 거기에 모여들어 “잡히지 않는다” “현행법에 걸려도 처벌받을 가능성이 없다”며 희희낙락했던 26만명도 실제세계로 불려나오는 것만큼 두려운 일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두 번째는 주범을 ‘박사’나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몇몇에 국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스물다섯 살의 남성 용의자가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이라는 지옥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돈을 내는 소비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수요를 잡지 않고 공급만을 잡는 것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사람들은 또한 알고 있다.
코로나19는 우리 앞에 예측불허의 시간을 열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이후의 세계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n번방 사건도 이전과 같을 수 없는 미래, 새로운 질서를 요구한다. 사람들이 사이버공간에서 먼저 움직였고, 이제 실제세계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은령 언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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