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듣기 좋은 말을 하느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지는 않나요?
인생을 살다 보면 때로 단호하게 나가야 하는 순간이 온다. 환불해달라고 하거나, 의자 등받이를 높여달라고 하거나, 식사 시간에 휴대폰 그만 보라고 지적해야 할 때처럼 말이다. 심지어 감자튀김이 먹고 싶을 때도, 직원이 내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명확하고 간결하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단호하게 요구하기, 목소리 높이지 않고도 내 의견 전달하기를 어려워한다. 입장차를 조율하다가 상처를 줄까 봐, 내 요구를 강조하다가 갑질이 될까 봐, 이건 고쳤으면 좋겠다고 지적하려다 비난하게 될까 봐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말 잘하고 자기 입장 똑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센스 있다’는 말을 듣는 사회에서, 나의 신중함은 그만 ‘센스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번 세게 나가거나 폭군처럼 굴 필요는 없다. 상대방과 나 사이에는 분명 서로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평화로운 길이 존재한다. 우리가 할 일은, 간단한 질문이나 예의 바른 한마디로 그 길목을 터주는 것뿐이다.
비난하지 않고, 갑질하지 않고, 나를 깎아내리지도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스스로를 대변하는 법
이 책에서는 크게 4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부 ‘상처 주지 않으며 조율하기’에서는 서로 입장차가 다른 상황에서 어떻게 모두 마음 다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는지 다룬다. 진열장 속 시든 양상추를 신선한 것으로 교체해달라고 하는 법, 매번 지각하는 친구를 대하는 법 등을 통해 입장을 이해하고 해결책을 찾는 조율과 협상의 방법을 살펴본다.
2부 ‘매달리지 않으며 부탁하기’에서는 지나치게 자세를 낮추지 않고도 요구사항을 얻어내는 노하우를 알아본다. 앞좌석 등받이를 올려달라고 부탁하거나 제때 수리기사가 오게 만든 사례 등을 통해서다.
3부 ‘비난하지 않으며 지적하기’에서는 입 냄새, 몸 냄새나 옷차림, 불공정한 언행 등을 지적해야 할 때 얼굴 붉히지 않으면서 할 말은 하는 법을 담았으며, 4부 ‘갑질하지 않으며 요구하기’에서는 고압적으로 나가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도 예의 바르게 항의해서 효과를 얻는 방법을 알아본다.
누구나 상처 주지 않고 상처받지도 않으면서 유연하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침착하고 부드럽게 이야기하면서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방법이 뭔지를 잘 모르기 때문에, ‘환불하러 갈 때는 기 센 사람으로 보이게 입으라’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주고 마는 것이다. 항의를 반복한다고 진상이 되는 게 아니다. 차분하고 부드럽게 내 요구를 전달하고 입장을 대변하는 방법을 안다면, 얼굴 붉힐 일 없이 상황을 편안하게 리드할 수 있을 것이다.
[책속으로 이어서]
“가끔 그때 해준 말이 생각나요.” 당황한 나와 달리 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꺼냈다. “중요한 걸 배웠어요. 당신 말이 맞아요. 파티에 온 아이들에게 모두 똑같이 케이크를 나눠줬어야 했어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더라고요. 지적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다음 생일파티부터는 모두에게 케이크를 나눠주고 있어요.”
여기서 알 수 있는 점은 두 가지다. 첫째, 당장 문제를 해결할 수 없더라도 피드백은 중요하다. 같은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막아주기 때문이다. 나는 케이크를 못 먹은 우리 막내뿐 아니라 미래에 그 아이의 생일파티에 참석할 또 다른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불공평한 처사를 바로잡고 싶었다. 둘째, 당장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효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녀는 뒤늦게나마 문제를 인지하고 자기 실수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 가지 명심할 점이 있다. 아무리 잘못된 처사를 지적하는 일이라도 반드시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혹자는 내가 섣부르게 그녀를 비난하는 바람에 그렇게 히스테릭하게 나왔던 것 아니냐고 의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고 다음과 같이 행동했다.
-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게 만들지 않으려고 모두가 집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
-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알았고, 그녀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정중하게 의견을 전달했다.
- 메일이나 문자로 비난한 게 아니라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했다.
- SNS에 사연을 올리거나 불특정다수에게 퍼뜨려 험담하지 않았다.
- 그녀의 반응을 본 뒤, 파티 준비 때문에 힘들고 지친 상태라는 걸 알아차리고 바로 물러났다.
- 3부 비난하지 않고 지적하기
물론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불편 때문에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불만을 토로할 때만큼은 최대한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침착하게 말하면 무슨 말을 하건 더 이성적으로 들리기 때문에 내 말에 더 집중하게 만들 수 있다. 둘째, 내 요구의 핵심을 분명히 파악하고 의사를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 셋째, 발을 동동 구르고 펄쩍펄쩍 뛸수록 ‘왜 저래’ 하고 무시당할 확률이 높다. 별것 아닌 일로 소란 피우는 이상한 사람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한 가지 더. 불만이 많으면 건강에 나쁘다고 주장하는 기사들은 백만 개쯤 나와 있다. 불만 때문에 혈압이 오르고 부정적인 생각이 우울증을 유발해서 결국 건강만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문제는 불만 그 자체가 아니다. 속에 있는 감정을 털어놓거나 해결하지 않고 쌓아두는 것이 문제다. 내가 뭘 원하는지 제대로 표현하고 요구해야 스트레스도, 병도 쌓이지 않는다. 그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지 않으면 평생 차선책만 택하는 삶, 그러니까 어떤 불만도 표출하지 못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쪽이 더 심각한 우울증, 혹은 그 이상의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거라 생각한다.
물론 속이 뒤집힐 정도로 열 받은 상태라면 당장 차분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면서 감정을 추슬러야 한다. 홍수가 한 차례 지나가면 여전히 화는 날지언정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흥분한 상태는 아닐 테니, 그때 차분하게 의사를 전하면 된다. (물론 항상 이러라는 건 아니다. 헬스장 케틀벨이 더러워서 화가 났는데, 꾹 참았다가 3일 뒤에 말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 4부, 갑질하지 않으며 요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