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집, '회원제 천국'인가 서로를 착취하는 지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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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우더잘'] 박인석·박철수·박해천이 말하는 아파트

 [프레시안 안은별 기자]

 프랑스의 지리학자가 한강변에 늘어선 거대한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를 보고 놀라 진지하게 연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은, 이곳에 사는 우리에게 그리 놀랍거나 불쾌하지 않은 일이다. 그 연구 결과의 번역서에 붙인 제목 <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 지음, 길혜연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역시, 이제는 별로 자극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가 늘어선 삭막한 풍경이나 그 속에서의 경험을 문제시하는 담론에도, 뉴스를 통해 전해지는 아파트의 막강한 정치·사회적 힘에 대해서도 많은 이들이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아파트 문제'를 아는 만큼, 비판의 공허함도 잘 안다.

일종의 자조나 한탄으로만 소비되었던 아파트 담론이 어떻게 새로운 지평을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유의미한 답을 주는 책이 2013년에 세 권 잇달아 출간되었다. 박철수(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부 교수)의 <아파트>(마티 펴냄)는 저자의 전작들에서 보인 문화사적 관심을 이어가면서도, '아파트 단지'와 '전용 공간'의 문제 등 한국인들이 사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게 하는 공간 구조를 문제 삼았다. 강준만의 표현을 빌렸다는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가 이 책이 다루는 바를 잘 압축한다.

박인석 명지대학교 주거건축 전공 교수의 <아파트 한국 사회>(현암사 펴냄)는 담장으로 둘러쳐진 '사설 오아시스'인 아파트 단지 문제에 깊이 집중한다. 그는 '월드 베스트'라 불리는 한국 아파트의 평면 공간, 주거 공간과 맞닿는 골목이 사라지는 폐해 등을 두루 살피며 정부가 시민들에게서 '공공'이라는 자각과 경험을 몰아낸 사정을 되짚는다. 문제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이며, 이 단지화는 은밀한 전략이었다는 것이 요지다.

디자인 연구자 박해천의 <아파트 게임>(휴머니스트 펴냄)은 한국 현대사의 몇 가지 정치·경제적 계기 속에서 아파트 구입을 통한 '중산층 되기 게임'이 펼쳐졌던 양상과 그 흥망을 픽션 형식으로 다룬다. 앞의 두 책이 일상의 공간 정치에 좀 더 주목했다면 <아파트 게임>은 아파트로 우회한 중산층 경제사 혹은 중산층 정체성 형성의 역사라 볼 수 있다. 가운데서도 책의 5장에서 미래의 주거 공간으로 예견된 '큐브(방 단위 주거를 의미)'는 현재 2,30대에게 과거와 같은 중산층 되기 프로세스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진단과 맞물려 젊은 독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1일(월), '프레시안 books'는 홍대입구역 인근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세 저자를 한 자리에 모아 아파트와 아파트 단지를 둘러싼 이야기를 들었다. 2012년 여름부터 진행되어 온 정혜윤(CBS 라디오국 PD·작가)의 북 토크 '우리 더 잘 살아요'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중심 요지는 각기 달라도 세 저자의 책은 아파트가 '내가 더 잘 살기' 위한 전투("사적 정열")를 상징하는 세계라는 점에서 같은 비평적 토대 위에 있었고, 이는 행사의 제목 "우리 더 잘 살아요"와 정확히 반대라는 점에서 절묘한 이야깃거리였다.

저자들은 아파트가 제공해 온 매혹의 본질, 향후 2,30대 주거 환경을 가를 원인 분석에 이견을 보이면서도 새로운 주거를 위한 본격적인 논의가 '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에 일치를 보였다. 약 2시간에 걸쳐 펼쳐진 이날의 대화를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 1962~64년 개발되었던 마포아파트 단지 모습. ⓒ국가기록원

'6말7초' 정치적 격동과 중산층의 탄생

정혜윤 : 오늘 주제는 '아파트'인데요. 제가 노동자들과 인터뷰하다보면, 자기의 일생을 회고할 때 아파트가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자주 등장해요. '그래도 내가 좋은 삶을 살아왔다'고 말할 때, 증거로서 빠지지 않는 게 내 힘으로 애써 마련한 우리 가족을 위한 집 한 채로서의 아파트인 거죠. 직장 생활의 곤란이나 해고의 슬픔을 묘사할 때도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처분한 경험"이 중심이 되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많은 생각이 들어요.

아파트는 언제부터 우리 삶에 이토록 중요하게 들어오게 된 걸까요. 먼저 박철수 선생님께 묻고 싶습니다. 아파트란 말이 한국에 처음 소개된 100년 전만 해도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고 하던데, 그 변화 과정이 궁금해요.

▲ <아파트> 저자 박철수. ⓒ프레시안(최형락)
박철수 :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는 1930년에 지어진 충정로의 유림아파트(토요다 아파트)라 볼 수 있습니다. 회현동의 미쿠니 아파트를 최초라 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곳은 특정 회사의 사원용 집합숙소였기에 "도시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입자와 건물주의 자유계약에 의한 공동주택"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요.

유림아파트는 지금도 흔히 볼 수 있는 다세대 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으로 들어왔습니다. 특별히 '아파트'라고 부른 이유는, 상하수도 설비나 쓰레기 처리에 있어 당시로서는 아주 근대적이고 혁신적인 주택 양식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고요. 시설도 다 영어로 불렀죠.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 내용은 '도시민들을 위한 임대주택'을 벗어나는 수준이 아니었고, 이 경향은 60년대까지 계속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박인석 선생님 책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단지', 즉 방어벽으로 둘러싸인 일단의 주택지의 효시는 1962년 개발이 시작된 마포아파트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제1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 주택 사업의 일부로 시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거지 고층화 시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마포아파트 단지 준공식에서 있었던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의 치사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그는 "5.16 군사혁명"과 마포아파트라는 "생활혁명"을 필연적 인과관계로 연결시키며 고층 아파트 단지를 적극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이 내용은 쿠데타 이후 군사혁명위원회가 발표한 '혁명공약'과도 맞닿아 있어요.

그 이후로 60년대 말부터 70년에 걸쳐 여의도 시범아파트, 반포 주공아파트 등 요즘으로 치면 중대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고, 이 주거 양식의 편리성이 당시의 고도 경제발전이라는 상황과 맞아떨어지면서 선망의 대상이 되어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소위 '6말7초' 시기는 정치적, 외교적으로 엄청난 격동기였죠. 김대중 납치 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숱한 무장공비 침투 사건 등이 일어났습니다. 그 가운데 벌어진 게 윤흥길이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문학과지성사 펴냄)에서 잘 묘사한 '광주 대단지 사태'죠.

이런 과정에서 권력층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모아놓는 것이 사회적으로 좋지 않다는 공감대가 생기게 되었고, 70년대부터 중산층을 받아내기 위한 큰 평수의 아파트를 적극적으로 짓게 되었던 겁니다.

정혜윤 : 여기에서 박해천 선생님의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아파트 게임>을 아직 못 보신 분들은 '이게 소설이야, 뭐야?' 하실 것 같아요. 어떤 화자가 등장해 1인칭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에 처음에는 저자 본인의 이야기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픽션이더라고요. 거기서 좋았던 점은, 한국 사회에서 좋은 아빠가 되거나/되지 못하는 문제와 우리를 둘러싼 정치적 환경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우리의 언어로 정말 잘 풀어냈다는 점이었어요.

저는 특히 하우스푸어가 된 베이비붐 세대 남성의 이야기(2장)가 슬펐어요. 이 남자는 자기 인생이 언제부터 잘 안 풀렸는가를 돌아보는데, 아파트에 투자할 기회를 계속 놓쳤던 거예요. '내가 지금과는 다른 좀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었는데'하고 후회할 때, 어떤 기준으로 과거를 돌아보는가를 생각해보게 됐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건 아파트였던 거죠. 그들이 생각하는 좀 더 나은 삶이라는 건 중산층에 진입했다는 느낌일 테고요.

▲ <아파트 게임> 저자 박해천. ⓒ프레시안(최형락)
박해천 :
디자인 연구자로서 아파트에 대한 제 문제의식은 '아파트가 한국의 시각문화를 어떻게 변화시켜왔나'였다고 할 수 있어요. "디자인 연구자가 어쩌다가 아파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듣곤 하는데, 20세기 디자인의 역사는 사실상 중산층의 역사이고, 한국 중산층의 역사는 실질적으로 아파트의 역사이니까요. 그런 문제의식에 따라 <콘크리트 유토피아>(자음과모음 펴냄)에서는 아파트가 한국의 시각문화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들여다보았고, 이번 <아파트 게임>에서는 책의 부제처럼 한국인 상당수가 아파트를 디딤돌로 삼아 중산층에 진입할 수 있었던 과정, 그리고 2000년대 이후 사회적 이동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까 박철수 선생님이 '6말7초' 이야기도 하셨는데, 이때가 한국 사회의 중산층 사(史)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예요. 저는 농담을 섞어서 '67년 체제'라 부르곤 하는데, 그 후로 약 30년간 지속되는 한국 중산층의 맹아 같은 게 이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하거든요. 이전까지만 해도 일상 언어에서 중산층이란 단어는 거의 쓰이지 않았어요.

이런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의 연두교서입니다. 거기에 "아시아의 빛나는 공업국가"라는 표현이 나와요. 더불어 국민 개인이 실감할 수 있는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미래 비전이 등장하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그때 국민 대다수는 안정된 직장에서 크고 작은 주주가 되기도 하고, 가장은 가족과 더불어 주말을 즐기며, 주부는 편리한 부엌을 갖춘 살기 좋은 주택에서 알뜰한 생활을 꾸밀 것이며, 자녀는 씩씩하게 자라고 슬기롭게 배워 세계에서 으뜸가는 한국인의 자질을 자랑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앞으로 중산층이 어떤 모습을 갖추고 일상에 안착해 살아가게 될지에 대해 여러 가지 상(像)이 나오게 되죠. 70년대 초반 대중 매체에 등장한 '마이카 시대'도 그런 맥락 위에 있고요. 압구정 현대아파트, 반포 주공아파트, 잠실 아파트단지 등 강남 지역에서 10여 년에 걸쳐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고, 그곳에 입주한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활양식의 실험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동시에 '중산층'이라는 표현이 대중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군부 독재 치하에서 강남이 신시가지로 건설되던 시기, 특히 경제적으로는 매년 10퍼센트 성장률을 보이며 급속하게 팽창하던 70년대 중반과 80년대 중후반의 시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 규모가 급속도로 팽창하면 거기에 동반되는 거품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데, 그 한복판에 바로 강남의 아파트 단지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특히 80년대에는 정부가 물가 안정이라는 명목 하에 내구소비재 가격의 상승을 막았는데, 87년 민주화 이후 그 경제 팽창의 압력이 결과적으로 아파트 단지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입니다. 바로 이런 사정이 맞물리면서 서울의 중산층이 근로소득뿐 아니라 아파트를 통한 자본소득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지요. 저는 바로 이런 식으로 아파트가 가져다 준 자본소득의 욕망이 이후 서울의 중산층들이 그 이름에 걸맞는 소비 활동과 사교육 지출을 버텨내는데 있어서 일종의 필요조건으로 강력하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아파트 매력의 비밀, 단지(團地) 혹은 시세 차익

정혜윤 : 박인석 선생님의 <아파트 한국 사회>에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신선하고 흥미로웠어요. 하나는 발코니의 발견, 또 하나는 아파트 '단지'에 대한 문제의식입니다. '아파트 문제'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 문제'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시는데, 어떤 맥락인가요.

▲ <아파트 한국 사회> 저자 박인석. ⓒ프레시안(최형락)
박인석 :
제 주장의 일관된 열쇳말은 '단지화 전략'입니다. 매력의 주인공은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라는 것이죠.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들은 한 동, 두 동짜리 아파트에는 별 매력을 느끼지 않아요. 목동이나 분당에 세워진 천 세대 단위 단지처럼 클수록 인기가 높아요.

한국 사회는 이른바 압축 성장을 경험했죠. 이는 앞서 말씀하신 대로 중산층이라 부를 만한, 일정한 소득 수준을 갖춘 계층이 갑자기 폭발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동시에 그들의 주거환경에 대한 욕구 수준도 급팽창했겠죠. 그런데 우리의 압축 성장은 정부가 모든 에너지를 수출 경제에 쏟아서 이룬 성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일반 시민들이 살아가는 도시 공공 환경에 대한 투자는 너무나 미비했습니다. 도서관이나 공원처럼 동네마다 갖추고 있어야 할 인프라가 지금도 부족하다 못해 저열한 수준이잖아요.

중산층의 높아진 눈높이와 수요를 맞춰줄 주거지가 필요한데, 공공 환경까지 고려하면 그럴 만한 곳이 없었던 겁니다. 그때 녹지와 놀이터, 노인정 등 모든 편의시설을 갖춘 단지가 등장합니다. 그것들을 개개의 가정이 돈을 내고 구매하게 만드는 형태, 사설 오아시스라 이름 붙일 수 있는 전략으로 갔던 것이죠.

저를 포함하여 많은 분들이, 썩 괜찮은 환경을 누리려면 아파트 단지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단지가 없어도 되는 비싼 동네는 주택자금 대출을 받아도 불가능할 테니까요. 이렇게 우리는 아파트의 노예가 된 게 아니라 단지의 노예가 되었다는 것, 아파트에 대한 욕망은 단지에 대한 욕망이었다는 게 제 해석입니다.

정혜윤 : 아파트의 문제는 단지의 문제다, 여기에 대해 박해천 선생님은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신가요?

박해천 :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라고 했을 때, 이미 그 말에는 그 아파트 단지 규모나 주변의 인프라, 교통의 편의성 등이 전부 고려되어 있는 상태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사람들이 아파트에 매혹된 이유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기억이나 주변의 경험담을 떠올려 보면 70년대 후반 강남 초기의 2,30평형대 아파트에 입주한 40년대생들 중 정말로 아파트가 최적의 주거 공간이라고 판단해서 입주를 결정한 사람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세대의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에 비춰보자면 대량 공급된 아파트의 저렴한 분양가가 매력적이었던 측면이 있었지요. 아마 이분들 대다수가 청년기에 마음속으로 그렸던 중산층으로서의 삶의 모습은 영화라든지 잡지에서 보았던 미국 중산층의 이미지였을 거예요. 2층집에 잔디 정원이 있고 거기서 주말이면 친구들과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들이죠. 그런데 대형 평행대가 집중되었던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정도를 제외하면, 강남의 아파트들은 그게 아니었지요.

그런데 80년대 중반부터는 역전되는 듯한 현상이 펼쳐져요. 70년대 후반에 한 번, 80년대 중후반에 한 번, 이렇게 두 번에 걸쳐 가파른 속도로 아파트 가격이 오릅니다. 가령 반포 주공아파트 25평형의 경우 1977년 분양가가 약 1000만 원대였지만, 10여년이 지난 88올림픽 이후 1억5000만 원대까지 폭등했죠. 중산층에 새롭게 편입한 사회 구성원들의 주거에 대한 판타지가 아파트 단지로 향하게 된 배경엔 이런 가격 폭등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원래 아파트는 '잘 맞지 않는 옷'이었지만, 엄청난 시세 차익의 매력을 갖추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공간(옷)에 맞춰 욕망(몸)을 조정하게 만들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모델'과 여배우의 등장엔 이유가 있다

정혜윤 : '사설 오아시스'라는 표현을 들으니 두 가지가 생각나요. 하나는 모델하우스, 하나는 브랜드 아파트입니다. 이 두 개는 아파트에 대한 판타지를 집약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데요. 선생님들 책을 보니 여기에도 건설사들의 숨은 전략과 맥락이 있다고 해요.

▲ <아파트>(박철수 지음, 마티 펴냄). ⓒ마티
박철수 :
먼저 많은 사람들이 모델하우스를 한국의 독특한 문화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에서도 견본주택은 얼마든지 존재했죠.

어쨌든 한국에서 지금 같은 개념의 모델하우스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69년 한강맨션 아파트 때부터입니다. 당시엔 이상하게 '이사장' 대신 '총재'라는 표현을 좋아들 했는데, 대한주택공사 4대 총재로 취임해 이 한강맨션 아파트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 육사 8기 출신 장동운이었어요. 박정희와 더불어 5.16 군사쿠데타 주체 세력이기도 했죠. '맨션'이란 명칭이 처음으로 사용된 것도 이때였는데, 당시 일본에서 중산층을 위한 고급 아파트를 맨션이나 하이츠라 불렀던 것에 영향을 받았지요. 즉 서민 아파트와 차별화되는 중산층을 겨냥한 아파트라는 점을 맨션이라는 명칭으로 표현했고, 또 그것을 홍보하기 위해 상징적 견본으로서의 모델하우스를 내세우게 된 거죠.

요즘처럼 요란하고 대형화된 추세의 주택전시장은 대략 1980년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 '가짜'에 대한 기묘한 훈련은 선분양제도라는 생산자 중심의 메커니즘과 맞물려 있어요. 아파트라는 상품은 잘 아시다시피 400만 원이든 1000만 원이든 청약 저축을 해놓아야 분양권이 주어지는 상품이잖아요. 내가 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고 400만 원씩 낼 수 없으니까, 모델하우스는 소비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역할을 맡게 되는 겁니다.

모델하우스에 가면 보통 무엇을 구경하나요. 바깥으로 열린 창문은 하나도 없고, '발코니 확장 공간'이라는 푯말이 달린 곳에는 투명한 유리 분합문이 설치되어 있죠. 거기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낙락장송이나 물기 머금은 대나무 숲이 인쇄된 대형 사진입니다. (웃음) 사람들은 거기서 딱히 할 일이 없으니까 싱크대 찬장이나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죠. 싱크대나 냉장고를 사러 간 게 아닌데도요. 누구도 모델하우스 내의 창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수납장을 열어보면 대충 이불 두 채, 양복 세 벌, 신발 네 켤레쯤 들어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 그런가요? 자기 집에 살림을 채워보면 모델하우스의 공간감은 여지없이 박살납니다. 발코니도 마찬가지인데, 전용면적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발코니를 '있지만 없는' 존재로 치는 거예요. 한마디로 모델하우스는 바깥 환경이나 입주자의 실생활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전용면적만을 놓고 가상을 시뮬레이션하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한강맨션 아파트 이래 그것을 열심히 훈련받아 온 것이고요.

"모델하우스를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곤 결국 전용공간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파트를 판매하는 입장에 선 이들은 가급적이면 전용공간이 실제보다 넓게 느껴지도록 보여야 한다는 불변의 원칙을 준수한다. (…) 가공된 실내를 보고 온 사람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여유 있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어진 집에 살림을 들이고 나면 전혀 다른 모습에 직면한다." (<아파트> 187; 190쪽)

박해천 : IMF 외환위기 이전과 이후 아파트의 상품적 성격이 크게 변했어요. 그전까지 한국에서 아파트는 국가가 판매를 주도하는 매우 이상한 상품이었어요. 말씀하신 선분양제도, 주택 청약 제도와 함께 분양가 상한제도가 시행되고 있었죠. 이 제도들 덕분에 정부는 주택 공급 시장의 통제력을 거머쥘 수 있었고, 건설사는 상품을 만들기도 전에 정부의 자금 지원을 받아가며 구매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고, 구매자는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아파트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건설사는 분양을 위한 광고가 아니라 '공고'를 했고 모델하우스에도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어요. 아파트 이름 역시 현대, 신동아, 우성, 극동 등 건설업체 이름을 그대로 멋없게 갖다 붙이는 게 자연스러웠고요.

그런데 외환위기 직후 분양가 상한제가 폐지되고, 따라서 아파트 건설사들이 시장 경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특징은 이전까지 아파트 시장의 주요 주체가 정부, 건설사, 중산층이었다고 한다면, 규제 완화와 더불어 정부의 자리를 은행들이 차지하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아파트 건설을 위한 자본의 공급처로, 그리고 중산층의 자금 대출처로서 은행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기 시작하지요.

그런데 정부의 분양가 규제는 사라졌지만, 그 제도의 맞짝이라고 할 수 있는 선분양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제품이 나오기도 전에 상품을 구입해야 하는데, 자율화에 따라 그 가격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진 상황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는 그런 상황에서 아파트 구매자들의 불안 심리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게 아파트 브랜드였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 래미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업계 1위였던 현대가 정주영 사후 형제간 암투나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삼성물산이 치고 올라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던 사정도 있지만 광고 마케팅 전략의 힘도 컸습니다. 그때 텔레비전 광고가 이랬지요. 오페라하우스에서 젊은 여성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친구를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가 도착해 들어가다가 실수로 키홀더를 떨어트리는데 거기에 래미안이라고 적혀 있어요. 그리고 그걸 본 다른 여성들이 부러워하는 모습이 비쳐지죠. 그런 콘셉트의 광고를 2007년까지 지속해 왔죠. 특정 상품의 구매 능력이 부러움의 상징이라는 이런 광고 문법은, 이전에도 물론 존재는 했지만 이렇게 대중 매체에서 노골적으로 광고되는 건 흔치 않았거든요.

▲ <아파트 게임>(박해천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휴머니스트
그러다가 2004년에는 대우건설의 푸르지오가 등장하죠. 잘 아시다시피 "그녀가 입는 것은 유행이 되고, 그녀가 보는 것은 베스트셀러가 되는" 모습이 이어지다가 마지막에 "그녀의 프리미엄"이라는 카피가 나옵니다. 아파트 거래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원래 '프리미엄'이라는 단어는 이른바 '떴다방'에서 분양권을 전매할 때 붙이는 웃돈을 말했죠. 분양권 추첨에서는 떨어졌지만 해당 아파트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분양권을 넘기는 방법이었고, 지금은 금지되고 있죠. 어쨌든 이 '프리미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푸르지오 광고에서 고급의 이미지로 전유되는 모습이 당시 일어난 변화들을 압축하고 있다고 봤어요.

"저금리를 앞세운 은행의 영업 방침, 금융 자본의 지원사격을 받는 건설사의 사업 전략, 그리고 경제적 불확실성에 노출된 중산층의 재테크 전략, 이 삼각관계의 역동적인 흐름 안에 바로 "그녀의 프리미엄"이 자리 잡고 있었고, K씨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중산층 소비자들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게임>, 93쪽)

이렇듯 제도적 과도기에 금융 자본과 손잡은 토건업체들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책으로 브랜드 광고에 매달렸고, 여기에 고도성장기에 보장되었던 풍요로운 소비 생활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대중의 무의식적 불안이 맞물리면서 많은 이들로 하여금 아파트 분양 시장으로 뛰어들게 했습니다. <아파트 게임>의 K씨의 경우 노후를 위해 평수를 확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게임에 참가했던 거고요. 실제로 그때는 사람들에게 각종 펀드 투자와 함께 아파트를 '재테크'의 가시적인 돌파구로 생각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아파트, 공공을 몰아내는 공통의 경험

정혜윤 : 제가 매년 방문하는, 노을이 무척 아름다운 도서관이 있어요. 그곳에서 책 읽고 글 쓰는 모임을 갖는 일곱 명의 고등학생들과 인연을 맺게 됐죠. 그 친구들은 '자발적 왕따'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예전에는 다 친하게 지냈던 애들이 아파트로 이사 가고 난 뒤 예전에 약속했던 삶의 방식을 버리는 것을 보고 우리는 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대요.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같은 동선으로 통학하고, 심지어 꿈마저 같아지는 걸 보고 '우리는 그러기 싫다!'고 생각한 거죠.

선생님들 책 속에서도 그런 부분들을 관심 있게 봤어요. '그래, 아파트에 살게 된 것까지는 좋아' 그런데, 아파트 생활이 사람들의 경험을 획일화하거나 생각을 전과는 다르게 바꿔놓는 거죠.

박인석 : 아파트 단지라는 생활공간이 우리 삶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 놓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데,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선 아파트 단지는 단지가 아닌 일반 주택지와 그 조직 구조가 다릅니다. 제 책에도 나오지만 일반 주택지가 '그물망 구조'라고 한다면 아파트 단지는 '나무 구조'입니다.

만약 제 집이 OO아파트 203동 1203호라면, 집에 갈 때 동선은 203동으로 가는 출입구 하나-203동의 3,4호 라인-승강기 탑승 후 12층이라는 한 가지 길을 순서에 따라 가야만 합니다. 순서를 벗어나면 203동 1203호에 다다를 수도, 되돌아 올 수도 없죠. 이를 나무뿌리에서부터 가지 끄트머리에 달린 잎에 이르는 영양을 공급받는 경로가 단 한 가지뿐이라는 점과 닮아서 '나무 구조'라고 부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다른 풍경, 다른 사람을 만날 기회가 굉장히 제한적입니다. 늘 같은 루트로 다니고, 같은 라인에 사는 사람들만 만나게 되니까요. 이에 비해 단독주택은 집에 이르는 경로가 한 가지로 정해져 있지 않죠. 다른 골목으로 돌아서 가거나 근처에 있는 친구 집에 들렀다 가는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동선 구조를 그물망 구조라고 합니다.

▲ <아파트 한국 사회>(박인석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그물망 구조에 있는 집들은 골목이라는 공공 공간(Public space)과 맞닿아 있습니다. 그런데 단지에서는 공공 공간과 개인 공간이 절대로 직접 접촉하지 않아요. 저는 이것이 '자신의 희망과 욕구를 누구에게 말하느냐'의 문제와 연관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물망 구조에 사는 사람들은 일상의 욕구를 전부 다 '퍼블릭'을 통해 해결해야만 해요. 골목의 가로등이 꺼졌다면, 쓰레기가 넘친다면 그것과 관련된 요구나 항의는 공동 민원으로 접수되거나 구청, 지방 정부로 가겠죠. 즉 소원 수리의 대상이 정치의 영역인 겁니다.

그러나 단지는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경비원 혹은 관리사무소에 이야기하면 됩니다. 시민들의 일상적 욕구와 희망이 공통의 목소리로 결집되지 못하고 자기 단지 단위로 소화되는 거죠.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단점으로 이야기되는 시민사회의 약체화는 짧은 근대화 경험 때문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을 보내는 이러한 생활공간의 구조와도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 단지는 우리가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 나가는 행동을 결집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거죠. 자기 재산인 내 단지가 불편하지 않도록 고치면 그걸로 끝이고, 도시공간에 대한 더 이상의 희망과 욕구를 가질 필요가 없으니까요. 아파트 단지의 가장 큰 비판거리는 바로 이 지점, 즉 소집단 이기주의적인 가치관과 욕망을 강요하고 거기에 머무르게 만드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혜윤 : '아파트 결사체'라는 표현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오는 것 같은데요. 그런데 요즘 그 문제를 역으로 전유해 아파트 단지에서도 공동체 운동이 가능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어요. 어떻게 보시나요?

박인석 : 아파트 단지가 오히려 마을 공동체 운동에 호조건을 갖고 있다고 보고 접근하는 분들이 있죠. 요즘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요. 여러 아름다운 에피소드들이 있긴 하지만, 저는 한계가 빤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영구 임대 아파트를 제외하고, 아파트 입주자는 각자가 자기 지분을 갖는 공동 소유자 집단이잖아요. 아름다운 공동체 활동을 하는 듯 보이지만,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 하나라도 터지면 그런 경험 따위 아무 것도 필요 없게 되죠. 자기 재산이라는 생각이 투영될 테니 바로 현수막 내걸고 돌아설 수밖에 없겠죠.

저는 아파트 숫자 자체가 늘어나는 건 별로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파리 같은 유럽의 대도시도 주거지 대부분은 5,6층짜리 아파트예요. 다만 단지가 아닐 뿐이죠. 전부 다 공공 공간과 직접 맞닿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한국의 대규모 단지는 그렇지 않아요. 자기의 재산 가치를 중심에 두고, 단지별로 결사체화되게끔 하는 구조를 갖고 있어요. 이건 개인을 나무랄 수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재산목록 1호가 왔다 갔다 하는 문제이니 무심할 수 없겠죠.

결국 문제는 우리의 욕망을 그렇게 만든 단지화 '전략' 아닐까요. 게다가 아파트 단지는 일단 들어서고 나면 변신이 거의 불가능한, 도시 공간을 비가역적으로 바꾸어 놓는 대작업이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한 접근이 더욱 복잡합니다.

"아파트 단지는 -아파트가 아니라 아파트 단지는- 안으로만 도는 폐쇄회로다. 아파트 단지가 일반적인 도시 공간과 다른 유별난 교환 가치를 갖는 상품으로 거래되는 한 입주자들은 모든 것이 교환가치로 환원되는 폐쇄회로를 벗어날 수 없다. 주민들의 시민정신만으로 극복될 일이 아니다. …

일반적인 도시 공간의 환경 수준을 아파트 단지와 별 차이 없는 수준으로 개선하는 것도 중차대한 과제다. (…) 동네에 공원을 늘리고 도서관을 늘리는 일, 보육 시설, 노인 복지 시설, 생활 체육 시설을 늘리는 일은 시민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공화국에 공동체를 복원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아파트 한국 사회> 302~303쪽)

큐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 세대인가, 계층인가

정혜윤 : 오늘 자리에 오신 대부분이 2~30대 젊은 분들이에요. 주거에 관한 새로운 전망을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할 세대니까요. 박해천 선생님이 <아파트 게임> 곳곳에 인용한,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에 나오는 '방'의 이미지가 생각나요. 선생님의 예상을 요약하는 것은 책 5장의 주제인 '큐브'일 텐데, 이 얘기를 좀 더 해보죠.

박해천 : 사실 집값이 개인의 계층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보통 고도성장기라 부르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기죠. 한국의 경우 그 시기가 67년부터 97년까지였던 것이고요. 외환위기 이후 2007년까지는 사실상 지난 30년 동안의 관성의 힘으로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서울과 수도권에 건설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이 30년 동안 일종의 시스템처럼 작동하면서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체제 친화적인 중산층을 양산해내는 물적 토대로 기능했다고 보고 있어요.

약간 도식적이긴 합니다만, 7,80년대 중산층 진입 경로는 대충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93,40년대 출생자로서 공교육의 형식으로 한글로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지방의 명문고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을 진학합니다. 졸업과 함께 산업화 물결을 타고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내 집 마련이란 목표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질주를 시작하지요.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으며 성실하게 전월세를 전전하다 보면, 여러 가지 정부의 우대 정책에 편승해 6~7년 정도 지나 목돈을 손에 쥐게 됩니다. 나이로 치면 삼십대 중반 쯤, 이 시기에 새로 분양되는 단지를 쫓아다니는 거죠.

또 다른 경로 하나는 고등 교육을 받지 못한 경우 국내 노동 시장의 열악한 임금 조건을 우회하는 것입니다. 60년대 중반의 베트남 전쟁 참전이라든지 아니면 7,80년대의 중동 건설이라든지, 해외에 나가서 이른바 '달러'를 벌어와 중산층으로 도약할 밑천으로 삼는 것이지요. 70년대 후반의 주공아파트 분양 광고를 보면 "영구 불임 시술을 받은 해외 파견 근로자 가족"을 분양 1순위로 공고해놓았는데, 바로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렇게 목돈을 모으고 운이 따라서 아파트를 분양받고 나면, 아니면 웃돈을 주고 분양권을 구입하고 나면, 특정 시기를 거치면서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책에서는 이것을 두고 '복지 제도를 대신하여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고도성장의 성과급을 배분하는 사회적 시스템'이라 표현했는데요. 역사적으로 보면 아파트 가격의 폭등은, 10퍼센트를 넘나드는 경제 성장률을 기록한 70년대 중후반, 80년대 3저 호황, 그리고 소위 자산 시장의 이상 과열 시기였던 2000년대 중반 이렇게 세 차례 정도에 걸쳐 일어났습니다. 고도성장이 만들어낸 버블의 기운이 바로 아파트로 직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바로 이런 시기를 몇 차례 경험했느냐에 따라, 그리고 어떻게 대응했느냐에 따라, 중산층을 꿈꾸던 사람들의 사회적 계층이 어느 정도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고요.

이런 과정을 4.19세대, 유신 세대, 386세대 10년 단위의 세대론과 결합시켜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70년대의 강남, 80년대의 과천·목동·상계·중계, 90년대의 수도권 신도시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그 아파트들은 당시 이제 막 내 집 마련을 하려고 나섰던 4.19세대, 유신 세대, 386세대가 중산층 아버지로 발돋움하려는 과정과 짝을 이루고 있으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내 집 마련을 하고 나면, 개별 세대의 중산층들은 이제 '근로소득자'로서의 정체성을 청산하고, 아파트 시세 상승이 가져다준 경제적 여유를 바탕으로 '중산층 소비자'의 일상을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대규모 단지 주변의 교회, 쇼핑시설, 학원가 등이 입주 첫 세대의 생애주기에 맞춰 세를 확장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 시스템은 고도성장이 멈춘 97년 이후부터 오작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 이후로 약 10년간 아파트 가격이 이전보다 더 큰 폭으로 상승했습니다만, 그건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남아 있던 '또 오르겠지'라는 기대와 관성, 거기에 국제적인 저금리 추세, 정부의 규제 완화와 부동산 정책 실패, 건설사들의 시장 경쟁 같은 요인이 합쳐졌기 때문이지, 고도성장이 만들어낸 거품은 아니었던 것이지요. 이런 이상 과열 현상 덕분에, 앞서 언급했던 반포 주공아파트 같은 경우는 이 시기를 통과하면서 재건축을 통해 50평형대의 새 아파트로 변신해, 가격 고점기에 20억 대에 육박하는 자산으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이 시기의 자산 시장이 일생일대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 또래들 중 많은 이들이 내 집 마련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그리고 아이들의 대학 입학 후 집을 조금 넓혀야겠다고 생각한 베이비부머들이 이 가격 폭등의 시장에 뛰어들어 속된 말로 '상투'를 잡게 되었죠. 그들 중 상당수가 소위 말하는 '하우스 푸어'가 된 것이지요.

이처럼 고도 성장기의 기형적인 자산 분배 시스템이 작동을 멈춘 상태에서, 그런데 근로 소득의 계층 간 불평등은 일정하게 고착화된 상태에서, 지금 젊은 세대에게 과연 과거와 같이 중산층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을까요? 이런 맥락에서 '내 집 마련'의 시대는 지나갔고, 방의 시대, 즉 '큐브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책에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맞춰 중산층의 소비 수준에 영점이 맞춰져 있는 욕망의 구조 조정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한 것이고요.

물론 부모의 자산을 안정적으로 증여받는 경우, 봉급 수준이 높은 재벌 대기업이나 전문직에 진출해 치솟은 집값을 지불할 능력이 있는 경우는 제외해야겠지요. 많은 부모님들이 삼성 타령하시는 데엔 다 이유가 있죠. (웃음) 어쨌든 이들을 제외한 젊은 세대 상당수가 남의 집에서 혹은 방을 빌려서 전세나 월세로 살 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아파트를 통한 자본 소득 획득이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상황에서 근로소득만으로 이전과 같은 중산층의 소비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경제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운 경제지들은 벌써부터 이런 변화를 두고 '혼자 사는 삶'이나 '1인 가구'라는 이름을 붙여 그럴싸하게 포장하는데, 실상은 개인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과거와 같은 '중산층의 양산'이 불가능해진 사회경제적 조건 변화의 문제라고 봐요.

ⓒ프레시안(최형락)

질문1 : 저는 80년대 후반에 태어났고 아파트 대단지에서 쭉 자라다가 20대가 되어서 단지 바깥에서 살게 된 사람입니다. 아파트 살 때는 인식을 못 했는데, 벗어나고 나니까 내가 아파트에서 겪은 남들과 비슷한 경험이나 생활양식, 욕망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또 내가 아파트적 취향이나 편의에 굉장히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됐고, 지리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다른 단지에 살던 친구들도 이런 성장 배경이 너무 똑같아서 놀란 경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단지 안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저나 제 아래 세대가 이제 사회에 진출하게 될 텐데, 박해천 선생님 말처럼 이제 방에서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이들이 주거 형태 말고 정치적으로 혹은 문화적으로 어떤 공통의 경향을 가지게 될지 궁금합니다.

질문2 : 지금 2~30대는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성장했고 그 문화를 깊이 경험했지만 정작 자기가 아파트를 소유할 거라는 전망을 갖기 어렵습니다. 저는 자가를 여럿 소유한 50대 이상과 가진 것이 없는 젊은 세대 사이의 격차가 고착화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10년쯤 지나면 이 상황이 어떻게 될까요. 이 격차가 해소될 수 있을까요?

박해천 : 10년 뒤의 상황은 사실 알 수 없죠. 그런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저는 두 가지를 되묻게 됩니다. 10년 뒤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요? 8~90년대 같은 호황이 다시 올 것 같은가요? 또 만일 호황이 온다면 그 열매가 여러분에게도 균등하게 배분될 것 같은지요. 이에 대한 대답에 따라 제 대답도 달라지겠죠.

한 가지 주의해서 들여다볼 수치는 출산율입니다. 2차 베이비붐 세대(68~74년생), 특히 70년대 초중반생들이 2000년대의 버블기를 통과하면서 보여주는 중요한 사회적 경향 중 하나가 바로 저출산이에요. 이들은 자력으로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진 첫 세대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태어난 1971년은 한국 출생 인구수가 1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많았는데, 그들이 삼십대에 들어서자 저출산 1세대의 부모로 돌변한 것이죠. 대략 2002년부터 출생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월드컵 베이비'가 늘었다는 속설도 있었지만 통계상으로는 현저히 낮았어요. 이 시점은 바로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2020년대부터 그 저출산 1세대들이 20대가 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질문 주신 80년대생들이 본격적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3,40대로서 자기 인생의 전성기를 누려야 할 시점에, 그 저출산 1세대들이 내수 시장의 주요 소비자로 등장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그 규모 자체가 3분의 2 정도로 확 줄어든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문제를 함께 고려한다면, 10년 뒤 자기나 자기 주변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나마 시뮬레이션 해볼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대학들의 경우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면서 2020년대 초반이라는 시점에 맞춰 이미 구조 조정 작업에 착수한 모양새이고요.

박인석 : 이 문제에 대해 저는 좀 다른 각도로 접근하고 싶습니다. 먼저 사례 하나를 말씀드릴게요. 여러 면에서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30년 앞선 현상들을 보인다고 이야기되죠. 그런데 최근 10년 전부터 일본 주거 시장에서 소위 '디자이너스 맨션'이라 불리는 것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공들여 설계한 예쁘장한 부티크 다가구 주택이지요. 일반 다세대 주택에 비해 임대료가 상당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수요가 많고, 주 수요층은 2~30대 독신남녀라고 합니다.

저성장 사회의 젊은이인 그들이, 대체 어떻게 높은 임대료를 기꺼이 지불하면서 고급스러운 주거 생활을 만끽할 수 있을까요? 이 현상의 배경은, 이 젊은이들이 굳이 저축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에겐 10~20년 후에 물려받을 부모님 집이라는 '미래 에셋'이 있기 때문이죠. 내 집 마련을 위한 게임을 전개할 내적 동기가 거의 없다는 겁니다.

이건 물론 일부 중산층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전 같은 이야기를 한국에 대해서도 하고 싶어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자기 집을 마련해 중산층에 진입한 가구 비율이 60퍼센트가 채 안 됩니다. 세대를 막론하고 아직 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기 집을 갖고 있지 않지요. 50대라고 해서 다 자가를 소유한 것이 아니고, 20대라고 해서 모두가 큐브에 살지는 않죠. 즉 이건 점점 더 양극화되는 계층 문제라고 봅니다. 지금은 큐브에 사는 2~30대라도 미래 에셋이 확보된 계층이라면 이야기가 전혀 다르고요.

한국은 이미 1500만 가구, 주택 1500만 채라는 주택 보급률 100퍼센트를 넘은 상황입니다. 이처럼 과거와 같은 신규 주택에 대한 수요가 더 늘어날 이유가 없는 시점이라면, 일부는 아파트 물결에 올라타 성공하고 일부는 탈락하는 양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계층의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게임의 양상이 바뀌었다고 봅니다.

박해천 : 몇 가지 수치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가계 부채가 1000조 원이라 이야기되는데 그 중 50대 이상의 부채가 400조 원대를 넘어섭니다. 그리고 모 은행의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최소 노후생활 필요 자금이 3억 6000만 원 정도라고 하는데, 현재 자산으로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가구는 전체 24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죠. 이런 예측을 금융 산업의 '공포 마케팅'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의미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상황을 알려주는 지표 같은 것이니까요. 이런 조건을 변수로 놓고 풀어보면, 부모의 자산을 증여받아서 예전과 같은 중산층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수는 굉장히 줄어들게 되죠.

또한 베이비붐 세대는 사교육 열풍, 대학 진학률 증가, 등록금 폭등 등으로 인해 자녀들의 교육비로 이전 세대에 비해 상당히 많은 비용을 지불한 세대이기도 합니다. 사실상 노후 준비 자금을 미리 당겨서 지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 중 중산층에 속해 있는 분들 중 상당수가 퇴직해서 자영업에 도전하는데, 흥미로운 건 그들이 여는 가게가 카페나 프랜차이즈 음식점 등 대개가 2~30대를 대상으로 하는 업종이라는 사실이에요. 서울의 대학가 주변이나 1인 가구 집중 거주 지역에 널리 분포되어 있죠. 그리고 거기서 대학생들이 저임금으로 아르바이트를 뛰어요. 이런 상황도 변수로 넣고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여기서 여러분들의 미래가 이렇게 될 거라고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예언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죠. 다만 이미 명백히 드러나 있는 변수와 지표들이 있으니까,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자기와 자기 부모님 상황 속에 문제를 풀다보면 어느 정도 각각의 답변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문제를 계층 간, 세대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면서 사회적으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이겠고요.

ⓒ프레시안(최형락)

함께 더 잘 살기 위한 복잡한 그림

박철수 : 저도 20대 중반인 두 딸의 부모입니다. 박해천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역시 앞으로 큐브에서 살게 될까라는 부모로서의 고민이 있죠. 그래서 그 함수에 대한 제 한 가지 답은, 결혼을 강요하지 않는 겁니다. (웃음) 제가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만큼, 그들의 삶의 방식을 강요하거나 채근하는 건 옳지 않다고 봐요. 다만 서른 살에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길 바라고, 그래서 5년의 유예 기간을 줬어요. 같이 살고 밥숟가락 얹게 하는 건 문제 없지만, 자기가 쓰는 돈은 알아서 벌어야 하겠죠.

하지만 이건 제 개인이 찾은 하나의 방법이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공공 임대주택의 확대 공급이 아닐까 싶어요. 서구의 복지 국가가 대략 17~19퍼센트를 확보하고 있는 공공 임대주택 비율이 한국에는 5.3퍼센트에 불과합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가정의 경제 규모와 집 평수를 동일 관계로 이해했지만, 그 관점을 복지적 차원에서 실질적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 필요해요.

박인석 : 그 일을 누가 하는지가 제 관심사입니다. 국회의원이 나서서 해주기를 바라면 되는 일일까요. 이건 근본적으로 시민 사회, 여론의 일이라 생각해요. 그리고 시민 사회를 진정으로 건강하게 만들어가려면, 그 중요한 기제인 우리 개개인의 일상생활을 감싸는 공간 정치를 잘 살펴봐야 한다고 봅니다. 단지가 시민들을 결집시키는 것을, 이 북 토크의 제목 "우리 더 잘 살아요"를 방해하고 있다는 것, 그게 제 이야기의 요지입니다.

박철수 : <아파트>의 부제를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달았는데, 전북대학교 강준만 교수의 글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그 글에서 강준만 교수는 한국인들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면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을 뒤집는 일이라고 했어요. 공적인 사안에는 조금 더 정열을 갖고, 사적으로는 조금 더 침착해야 한다고요. 한편 서울대학교의 전상인 교수는 한국 사회를 '평등 사회'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평은 흙 토 자가 붙은 평, 즉 아파트 평수를 말할 때의 평(坪)입니다. 또 등은 같은 한자이지만 반 석차를 말할 때의 등(等)이고요. 한국은 아파트 평수와 자녀 석차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사회라는 뜻이죠.

저는 그렇지 않은 사회를 염원하는 게 우리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내 집' '내 자식' 등 사적인 것에는 덜 집착하고 공적인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길밖에는 없어요. 가령 여러분이 봄에 예쁜 꽃을 산다면 어디에 두려고 생각하시죠? 발코니를 확장해 얻은 거실 끄트머리에, 나와 내 가족만 보려고 사는 거겠죠. 그런데 일본에 가면 허름한 단독주택 창틀 바깥에, 행인들이 마주치는 곳에 계절 꽃이 꽂혀져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돈을 들여서 공적인 공간을 풍요롭게 만드는 데 쓰는 거죠. 아주 사소한 차이지만, 이런 생각을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을 때 사회도 조금씩 변화할 거라고 봐요.

예전에 제가 살던 아파트에서는 중요한 사안을 앞두고 입주자대표가 8개월째 안 뽑힌 적이 있었습니다. 누구도 수고스러운 대표자를 맡을 생각은 없고, 단지 그 결정이 내게 이익이 되기만을 바라죠. 오랜 시간 한국 사회에서 아파트는 '공적 냉소와 사적 정열'의 집합체였어요. 오늘 이야기가 아파트를 넘어 이런 태도 자체를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혜윤 CBS PD. ⓒ프레시안(최형락)
정혜윤 :
지난 해 일본에서 프리터들을 취재한 적이 있었어요. 그들은 대부분 아버지처럼 평생 회사 인간으로 살기 싫어서 비정규 노동을 선택했죠. 한국에 있는 사람들은 "최저임금이 일본 정도만 되어도 나도 그렇게 살 텐데"라고들 해요. 그런데 실제로 가보니까 그렇지가 않은 거예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프리터가 되었는데, 그들도 방을 벗어날 수 없는데다가 한 줌 얻은 자유는 너무나 불안한 거예요.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주거 형태를 말할 때 결국 향후의 노동조건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에요. 세 분 모두 사람들이 사적 열정만을 불태우고 각자도생하는 미래를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해 두루두루, 또 다 같이 고민하지 않으면 어려운 문제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늘로서 '우리 더 잘 살아요'는 1년간의 만남을 마치게 되었어요. 마치면서 이 장면을 떠올렸어요. 제 친구가 얼마 전 포르투갈의 한 도시로 떠났는데, 오랜만에 전화가 와서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더니 창밖에 갈매기 소리가 들리고 바다가 펼쳐져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눈 감고 이 얘기를 듣는데 제게도 새소리가 들리고 바다 냄새가 나는 것 같았어요.

이 행사가 이 친구의 전화처럼, 내가 있는 곳과 조금이라도 다른 풍경과 다른 세상을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세 분 선생님과 그동안 참석해 주신 여러분 모두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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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별 기자 (mal@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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