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많고 많은 여행 중 웬만하면 가지 말아야 할 여행이 있다. 그것은 가족여행. 가족여행을 떠난 자들은 길 위에서 되뇌게 된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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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낯선 곳을 여행하고 싶은 마음은 부모님도 동일하다. 더 강렬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젊은 시절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왔을 부모님이니, 웬만큼 장성한 자식을 둔 이제는 마음 놓고 즐기고 싶을 테니까. 어느 명절, 또는 부모님의 결혼 30주년이라거나 환갑이 다가올 때 누군가 – 엄마 또는 아빠가 – 말을 꺼낸다. “우리 가족여행 한번 갈까?” 아, 친구분 중에 가족여행을 다녀오신 분이 있나보다. 거절할 명분이 없으니 가야만 한다. 갈등은 자식들의 몫이다. 패키지가 편하긴 해. 하지만 패키지는 재미가 없고, 낯선 사람들과 우르르 다니는 것도 별로다. 자유여행이 좋긴 좋지. 하지만 준비할 게 너무 많아, 엄마아빠가 좋아할까? 자유로운 여행이라는 달콤함을 아는 자식들은 역시 패키지가 끌리지 않는다. 그러고는 결국 자유여행의 손을 들게 되면서 가족여행이라는 이름의 ‘헬 게이트’가 활짝 열린다. 그렇게 가족여행을 네 번 떠나며 터득한 가족여행의 진실.

엄마아빠는 거짓말을 한다

“우리는 다 좋아”라고 분명 말씀하셨을 것이다. 거짓말이다. 가족여행의 첫 갈등은 아마 이 점에서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거나 잘 먹어” “아무거나 괜찮아” “아무 데나 가자”라는 식으로 얘기하지만 다 거짓부렁이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는 정말 괜찮고, 정말 다 좋아하는 부모님도 있긴 할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니었고, 다른 부모님도 아닌 것 같다. 첫 가족여행도 그랬다. 고급스러운 한옥을 예약했는데, 엄마가 원한 건 호텔이었다는 거다. 여행 마지막 날 그랬다. 한옥이나 호텔이나 비용은 그게 그거였는데! 그 이후론 엄마아빠의 말은 절반만 믿는다. 때문에 첨예한 두뇌 싸움을 펼쳐야 한다. 떠보는 질문을 하거나, 구체적인 선택지를 내미는 게 좋다. 대만이 좋아요, 홍콩이 좋아요? 딤섬 드실래요, 북경오리 드실래요? 객실과 전망 중에 뭐가 더 중요하세요…?특히 자유여행으로 처음 떠나는 가족여행이라면 엄마아빠는 자식을 못미더워한다. 사사건건 패키지와 비교할 수도 있다. “패키지는 가이드가 다 설명해주는데” “여기가 좋은 데니?” 등등 의심의 눈초리를 보낼 테지만, 이런 불신은 한 번의 여행만 성공하면 사라지니 너무 스트레스는 받지 말기로. 나는 지금까지 모든 가족여행을 적어도 한 번 이상 내가 방문했던 곳으로 정했다. 기본적인 사항은 알고 있어 계획을 짜기도 편하고, “언니가 가봤대”, “언니는 홍콩을 스무 번이나 갔잖아”라는 말만으로도 부모님이 어느 정도 안심하기 때문.

엄마아빠는 자랑하기 위해 떠난다

엄마아빠의 단톡방은 다양한 친구들의 자랑과 나라 걱정으로 북적댈 것이고, 자랑 레퍼토리 중에 하나는 가족여행임이 분명하다. 특히 무슨 날이라 여행을 가야 한다면 더욱 그렇다. ‘아들이’, ‘딸이’로 시작하는 여행 자랑은 어쩐지 우리가 가자고 한 걸로 뒤바뀌어 있다. 자식들이 준비한 자유여행이 그렇게 좋았더라. 음식도 맛있고 호텔도 좋고 내 자식들이 너무 총명하더라는 ‘뻥과자’ 같은 자랑을 하시기 위해서는 사진이 필수다. 멋진 사진을 남겨드리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같이 찍자고 할 때 빼지 말고 함께 찍으며 화사하게 웃을 것. 사진이 잘 나오는 곳을 방문할 것. 사진이 잘 나오는 옷을 골라드리면 더욱 기뻐한다. 부모님의 사진을 찍어드릴 때에는 인스타그램은 잊을 것. 무조건 배경 안에 인물이 조화되게 찍어야 한다. 이후 포토 앨범을 만들어 선물해도 좋다.

엄마아빠는 쉬는 걸 싫어한다

유적지 탐방을 좋아하는 부모님은 휴양여행을 곤혹스러워하고, 쓸데없는 낭비라고 생각한다. 쉬는 건 집에서 쉬라고 말씀하는 타입이라면 자식이 아무리 휴양여행을 좋아해도 이번 여행에서 휴식은 글렀다. 여행지 선정부터 부모님의 취향을 고려해야 한다. 명소를 돌아보는 걸 좋아하는 부모님은 유럽, 터키 등을 좋아하고 자연 환경을 좋아하는 부모님은 그랜드캐니언, 호주 등을 좋아한다. 장거리 여행이 힘든 상황이라면 주변 국가에서 적절한 곳을 찾아낼 것. 내 부모님의 여행 취향은 유적지 탐방이라,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을 선택한 적이 있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000곳’ 등에 집착하는 엄마는 선선히 동의했다. 고궁박물관이 있는 대만이나, 미식에 관심이 있는 부모님이라면 홍콩과 마카오도 좋다. 베트남 다낭 및 호이안 지역은 부모님과 자식들의 취향이 그나마 절충될 수 있는 곳이었는데, 베트남 같은 곳에서 쉬지 않으면 대체 무엇을 하지? 굳이 다낭 여행책을 구해보고 “유네스코 세계 유산은 다 보고 싶어”라고 말하는 엄마. 때문에 우리 가족은 다낭이 아닌 호이안의 호텔을 선택했다. 호이안의 자랑이자 유네스코 유산인 올드타운에서 도보 15분 정도 떨어진 리조트는 엄마가 원하면 언제든 관광을 할 수 있기 때문. 이 경우에는 날씨가 변수였는데, 동남아 특유의 스콜로 낮에 한두 시간을 쉴 수밖에 없었고 – 이때 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 1시간만 걸어도 땀이 비 오듯 흘렀기에 수영장에 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십여 년 만에 엄마도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겼고, 엄마의 입에서도 “동남아 여행은 이렇게 하나보다”라는 말이 나오고야 말았으니, 결국 네 번의 가족여행 끝에 거둔 자식들의 작은 승리였다.

엄마아빠는 항상 일찍 일어난다

부모님이 나이 들어갈수록 자식들과 활동 시간이 달라진다. 딸과 아들은 늦게까지 놀고 늦게 일어나지만, 부모님은 일찍 일어나고 일찍 하루를 끝낸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간다고 하면, 아무리 늦잠이 체질화되었더라도 적어도 8시에는 아침을 먹는 것이 좋고, 밤 9시 전에는 호텔로 돌아오는 것이 좋다.
문제는 부모님은 이미 아침 6시 전에 일어나 있다는 거다. “언제 일어날 거니?” 소리가 나오지 않게, 다음 날 만날 시간을 미리 정해놓는다. 먼저 일어나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요소가 있는 호텔을 선택하는 것을 추천한다. 공원이 가깝거나 강가에 있는 호텔 등이라면 부모님끼리 손잡고 산책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아침 시간을 보낸다. 간단한 새벽 투어를 잡는 것도 방법이다. 동남아 리조트에서는 새벽 시장 투어나, 새벽 하이킹, 무료 요가 같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캄보디아 씨엠립을 갔을 때, 부모님은 일출을 꼭 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매일 뜨는 해인데 왜 꼭 일출을 봐야 한다는 것일까. 어차피 일몰을 볼 것인데 일출이나 똑같은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부모님은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보기를 원했고, 아침 5시에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던 자식들은 옥신각신하다 파업을 선언. ‘여기까지 와서’, ‘언제 또 온다고’가 한참 오고 간 후에 부모님만을 위해 일출 투어를 예약하는 선에서 합의를 봤다. 일어나서 조식당에 가자, 일출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말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표정의 부모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너희가 놓친 앙코르와트의 일출”은 아직도 레퍼토리 중 하나다.

음식은 중요하고, 엄마아빠의 입맛은 까다롭다

‘음식이 안 맞아서 힘들었다’거나 ‘이상한 냄새가 난다’라는 얘기는 여행 커뮤니티에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온다. 대표적인 예가 홍콩이다. 홍콩은 모두가 인정하는 미식의 도시인 동시에, 음식을 전혀 못 먹겠다라는 후기가 공존하는 곳이니까. 부모님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를 미리 파악할 것. 까다로운 나의 부모님은 ‘다양한 음식을 경험하길 원하면서도 너무 특이한 건 싫어하는 입맛’. 그래서 매번 지역 음식이면서도 외국인이 먹어도 무난한 음식점을 찾아야 했다. 부모님과 설 연휴기간 홍콩에 갔을 때 내가 선택한 딤섬 레스토랑은 전통 방식인 수레를 이용하면서도 특유의 돼지 및 향신료 냄새가 과하지 않은 곳이었다. 그 외에 고급스러운 북경 오리, 얼큰한 맛의 운남국수, 홍콩식 차찬탱, 사천 요리 식당을 배치했다. 이때에는 내가 하루 먼저 출발했다. 설 연휴 기간에는 많은 식당이 연휴로 쉬기 때문에, 먼저 도착해 호텔의 컨시어지 및 유심 폰을 활용해 체류 기간 동안 식당의 휴무일을 확인하고 언제 무엇을 먹을지와 후보군까지 완벽하게 짜두었다. 맛있기로 유명한 로컬 식당이 많이 닫았지만, 당황하지 않고 매끼 식도락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럴 가치는 충분했다.

엄마아빠도 좋은 것을 좋아한다

비싼 곳이 싫다고 하신다. 낭비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나 평소 검소한 부모님이라도 여행만큼은 특별한 경험을 좋아하고, 좀 더 사치스러운 것에 기뻐하기도 한다. 부모님과 홍콩을 여행했을 때 가장 좋아하셨던 건 ‘하버뷰’를 볼 수 있던 객실과(자식들의 방보다 두 배 비싼),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예약했던 페닌슐라 호텔의 우아한 애프터눈 티였다. 콜로니얼 양식이 멋진 리조트라거나,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도 그랬다. 씨엠립에서는 앙코르 유적지를 설명하는 개인 가이드를 쉽게 고용할 수 있는데, 그런 것도 부모님이 생각할 수 없는 ‘좋은 것’ 중 하나다. 그러니 사정이 허락한다면 기억에 남는 특별한 이벤트를 경험하게 해드릴 것. 남사스러운 로맨틱 디너라거나, 홍콩의 불꽃놀이라거나(설과 12월 31일에만 볼 수 있다), 작은 배를 빌려 떠난 한두 시간의 뱃놀이라거나.

싸우게 된다 하지만 모든 게 추억이 된다

가족여행을 가면 필시 한 번은 싸우게 된다. 사소한 일들이지만 그 사소함이 참을 수 없어 싸우게 된다. 엄마가 용과를 억지로 먹이려고 해서 싸우게 되고, 조식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왜 또 커피를 마시냐고 해서 싸우고, 공원에 갈까 동물원에 갈까 하다가 싸우게 되고, 엄마가 딴 말을 해서 싸우게 되고, GDP가 높네 낮네 하다가 싸우게 되고, 과거의 일을 얘기하다가 싸우게 된다. ‘다신 가족여행 오나봐라’를 열 번 되뇔쯤 여행이 끝난다.
정말이지 가족여행은 너무 피곤한 일이다. 왜일까? 가족이기에 조금의 가식도 부리지 않고, 가족이라 참을성이 없고, 가족이라 이미 쌓인 게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을 남기는 걸 싫어하는 엄마의 성향은 내게 늘 스트레스다. 일찍 일어나지 않는 자식들의 성향은 부모님에게 스트레스다.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고 하는 까다롭고 직설적인 가족의 성향은 모든 걸 예약하고 준비한 사람에게 억울함을 자아내기 십상이라 싸우게 된다. 그럼에도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는 건, 반박할 수 없이 소중한 추억이 된다. 동시에 점점 체력이 떨어지는 부모님을 느낄 때 슬프다. 누구보다 빠르게 걷던 부모님의 걸음은 매 여행마다 느려진다. 아빠가 “너무 행복한 여행이라서, 아빠는 죽을 때까지 기억할 거야”라고 말했을 때, 못 들은 척했지만 눈물이 고였다. 정글을 달린 툭툭 드라이브는 지금도 회자된다. 출장도 여행도 할 만큼 하셨음에도 자식과의 여행은 그만큼 특별한 일인 거다. 우리가 가족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식당, 이 호텔, 이 코스를 고민하고 짜듯이 어린 우리를 위해 부모님도 그랬을 거라는 걸 안다. 그 모든 순간이 추억으로 남았다. 그래서 다시, 가족여행을 떠난다.